처음은 무엇이든 서툴 수 밖에 없는 걸까요
나는 아직 누군가를 보내는 법을 알지 못한다.
지난여름, 기록적인 장마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질감의 공기, 말도 안 되는 날씨만큼이나 굉장히 많은 환경의 변화가 내게 들이닥쳤다. 그때의 나는 오히려 매우 묘하고 차분했다. 혼란 속에 차곡차곡 하나씩 마음에 널브러져 있던 빨랫감들을 개었다. 심란해하는 나를 보고 있던 친구가 제안했던 8월 첫날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내게 가장 먼저 찾아온 소식. 나의 '인턴'이 그다음 주까지만 근무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일주일의 시간은 예상처럼 순식간이었고 바로 그녀를 보내줘야 할 날이 다가왔다. 하필 내가 부산에 가야 하는 일정으로 서울에 없을 그 날, 그녀가 마지막으로 출근을 하는 날이며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수료증을 받고 떠난다는 사실이 못내 신경 쓰였다.
그녀는 나의 첫 인턴이었다. 입사 후 수많은 인턴들을 봐왔지만 나의 첫 인턴은 그녀였고 앞으로도 그녀는 나에게 유일무이한 그녀일 것이다. 면접을 올 수 있겠냐며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맑은 목소리로 언제든 올 수 있다고 대답했다. 아기같이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올라온 마른 몸의 그녀를 나는 회의실로 안내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그녀는 또다시 아기처럼 해사하게 웃으며 제 손에 들린 커피를 들어 보였다.
며칠 후 출근해보니 오래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아 나를 보며 해사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그 날부터 나의 짝꿍이 된 그녀는 뽀스락 뽀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매일같이 각종 젤리를 까먹곤 했다. 젤리보단 초콜릿 파였던 나는 내 자리에 오래도록 묵혀둔 하리보 젤리를 꺼내 매일 그녀가 당이 떨어질만한 시간대에 한 봉지씩 건넸고 그녀는 너무나 행복한 웃음으로 귀엽게 젤리를 까먹고는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그녀의 팔 이곳저곳에는 상큼하고 귀여운 얼굴과 대조되는 타투가 새겨져 있었는데 가녀린 팔목에는 공교롭게도 나의 세례명이, 팔뚝에는 불에 타는 장미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 반전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만 봐도 웃었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그녀는 보라색을 좋아하는 나에게 나중에 같이 유튜브를 하자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젤리 봉지를 뜯는 모습을 보며 진지하게 언젠가 오픈할지 모르는 유튜브의 콘텐츠 주제를 짰다. 그런 나를 보며 그녀는 해맑게 웃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매우 아꼈다. 그녀가 나 때문에 동네 슈퍼에 가서 일부러 사 왔다는 몰티저스 초콜릿을 내밀었을 때도. 본인을 닮은 노랗고 귀여운 오리 모양의 포스트잇에 오늘도 잘 챙겨줘서 고맙습니다 대리님~ 하는 쪽지를 내 자리에 붙여 놓고 퇴근했을 때도. 그녀가 떠나는 날의 느낌을 조금도 체감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네 명의 주인공 중 미란다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소식을 들은 캐리와 샬롯이 보통 사람들답게 펑펑 울며 그녀를 위로하는 장면에서 사만다는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무언가 거칠게 잊으려는 사람처럼 더욱더 모르는 남자들과의 의 뜨거운 데이트에 몰두했다. 하지만 아무리 미친 듯이 발버둥 쳐도 그녀를 그녀답게 만드는 남자들을 향한 열정이 끓어오르질 않았다. 그녀는 절망한다. 도대체 자기의 마음이 왜 이런지 알 수가 없다. 무엇이 자신의 모든 감정 상태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건지. 사만다의 머릿속 회로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것처럼 멈춰 버렸다. 그리고는 미란다 모친의 장례식에서, 느닷없이 사만다가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다. 미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사만다는 잊고 살던 자신의 가족과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라 너무너무 슬프고 아파서 애써 그 감정을 외면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미란다가 어머니의 관 앞에 서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감정의 수도꼭지가 터져버렸다. 사만다가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 때 막혔던 코가 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 겪어보진 못했지만 그 감정이 어떤 건지 너무 알 것 같아서 처음 봤을 때는 물론이고 다시 돌려 볼 때마다 매번 사만다를 따라 울어버리는 장면이다.
'나의 인턴'을 사무실에서 보는 마지막 날. 앞으로 계속 볼 사이라고 해도 이 공간에서는 마지막이기에 일이 아직 남아 있던 나는 그녀의 마지막 퇴근길을 배웅하기로 했다. 다음 주면 그녀가 없다. 나와 함께 카드 뉴스 카피를 짜내며 서로를 자지러지게 웃게 만들던. 그렇게 좋아하는 하트 시그널 쓰리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라며 본인의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해주던. 글의 흐름이 왜 이러냐고 정신 안 차리냐고 호되게 호통을 치며 최악의 점수를 매겨도 제가 신경 쓰이시지 않게 앞으로 잘할게요, 하며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던. 부르면 깜짝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돌아보던. 마른 다리로 휘청휘청 함께 걸어가며 점심 메뉴를 고르던. 우리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하며 마스크를 올려 쓰던. 동네에 새로운 맛집을 발견해 신이 난다던. 인상을 쓰고 혼내던 내게 스윽 초콜릿을 밀어주던.
그녀가 마지막 선물이라며 쿠키를 담은 봉투를 내밀었을 때도 잘 참아냈는데. 집에 가기 전 담배 한 대 피고 들어가겠다고 내일 잘 다녀오시고 다음 주에 놀러 오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마른 몸을 껴안는 순간, 하루 종일 미란다의 장례식장에 가기 전 사만다처럼 하하 호호 평소보다 더 많이 웃으며 잘 외면하고 있던 마음이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다른 친구들도 보고 있는 앞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녀를 나가게 만든 건 나였다. 하필 나 같은 사수를 만나서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못했는데.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오해하고 혼내고 못해줬던 것만 생각난다. 올챙잇적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감싸주지 못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8월이 시작됐을 무렵부터 미친 듯이 먹먹했던 마음이 쏟아져 내렸다. 그녀도 곧 나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늦은 퇴근길, 눅눅한 습도도 내 마음만큼 눅눅하진 않겠지 싶어 그냥 조금 걸었다. 터덜터덜 걷다가 나의 인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뭐라 뭐라 몇 줄로는 다 담지 못할 몇 달간의 우리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묻어 버린채 늘 그랬듯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고 있으며 내가 첫 상사여서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고, 많은 걸 배웠다는 대인배 같은 말을 날려줬다. 취하진 않았지만 술을 마시긴 마셨으니 술김을 빌어서 말하겠다면서 나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나의 인턴이었고 나는 그녀의 대리님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어디선가 프리랜서로 살던, 과장이 되어 살던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서툰 첫 상사였고 그녀는 나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안겨준 나의 첫 직속 인턴이었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보내는 세련된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내가 몇 살을 더 먹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아마 앞으로도 영영 모르고 살지도 모른다.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했다. 그녀는 아침부터 뽀스락 거리며 젤리 한 봉지를 까먹으며 나 없이 남은 일들을 묵묵히 처리할 것이다. 오후엔 씩씩하게 수료식을 마친 후 사람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겠지. 그 후엔 늘 그랬듯 불타는 장미와 나의 세례명이 새겨진 여린 팔을 들어 올려 퇴근길 마지막 담배를 피울 것이다. 다신 입사하지 않을 회사 앞에서.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도 나를 떠올리면서. 석 달간 그녀는 나만의 인턴이었고 나는 그녀만의 대리님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