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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동기가 퇴사했다

by LBR
대포 중


군대에서 가장 무서운 장교를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뜻인즉, 대령되기를 포기한 중령의 준말이라고. 더 이상 진급에 신경 쓰지 않으므로 배짱이 두둑해진다는 뜻이란다. 신병들에게 하늘 같은 병장은 '뱀', 소대장은 '소 댐', 중대장은 '중 댐'. 그리고 같은 날 함께 입대한 동기는 '알 동기'라 부른다고, 그 친구가 가르쳐 주었다.


알 동기가 퇴사했다.


유독 많은 사람들을 보냈던 그 8월에. 어제도 한 명, 오늘도 한 명. 나의 인턴도 떠나고 계약기간이 끝나고 어차피 나갔어야 할 학생 인턴들이 대거로 나가도 뭔가 마음 한구석에 사람 정이란 참... 하는 생각에 헛헛해지곤 하는데. 그 날은 조금 다른 느낌의 이별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오늘 퇴사가 예정되어 있던 '나의 동기'에게 지난주 금요일부터 작별 인사를 해댔다. 나 스스로 했던 마음의 준비였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공간에 처음 발을 들일 때만 느낄 수 있는 낯선 공간의 무게가 있다. 숨 막히게 긴장되는데 묘한 설렘이 느껴지는. 그날도 그랬다. 햇볕이 쨍쨍했고 아직 여름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무더운 날. 하지만 금방 선선한 기운이 들이닥칠 것이 분명해 보이는 9월 초였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같은 날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가 있을 줄은. 첫 출근을 하고 나서야 입사자는 나 한 명이 아닌 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게 되자마자 말로 다 표현 못할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며 가까워져야 옳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상대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남자였다. 나이 차이 제법 나는 이성 입사 동기. 친해지기엔 영 공통분모도 없어 보이고 불편했다. 처음엔 말도 잘 걸지 않았다. 그 아인 뻔지르르한 겉모습과는 달리 행동은 어딘지 모르게 어리숙하고 순박해 보였다. 낯을 조금 가리는 것 같긴 했지만 본인을 둘러싼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는 상황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 본인의 힘이 필요해 보이는 일에는 기가 막힌 눈치로 달려왔다. 그와 나는 회사에서 하는 각종 행사에 동원되곤 했는데 입사 직후 맞이한 첫 주말부터 그 여정이 시작됐다. 내가 바삐 행사를 지원하는 장면을 그는 카메라에 담아 증빙 자료로 남기고 추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보탰다. 다음 주 그 애는 회사 공용 폴더에 그 날의 사진을 업데이트하며 내 얼굴이 들어간 사진 밑에 '요리연구가 선생님과 대리님', '현수막을 접는 대리님' 등, 이대리가 뭘 했는지 세세하게 표기해주는 친절함으로 나를 조금 빵 터지게 했다. 파일명만 봐도 이대리의 행적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조용하고 세심한 친구였다.


입사 초 나는 늘 그 아이가 퇴근한 뒤에야 나가려고 애썼다. 아무리 같이 들어왔어도 내가 나이도 많고 직급도 달고 왔는데 저 아이보단 늦게 퇴근해야지 하는 라떼 같은 생각으로. 그날도 그 아이가 퇴근 인사를 한 후 어느 정도 지나서야 퇴근길에 올랐다. 피곤함에 얼른 집에 가고 싶어 지하철 계단을 뛰쳐 내려가고 있는데 계단 저 아래에서 공손히 두 손을 모은채 허리를 숙이고 기다리고 있는 그 아이가 보였다.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나보다 한참 전에 나간 줄 알았는데 저 애는 왜 저기서 공손한 호텔리어가 되어 있는가.


" 저 위에서 '나풀나풀거리는 뭔가'가 내려오길래 바로 대리님인걸 알아봤습니다. "


그 아이는 다시 한번 공손함을 뽐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날 알게 됐다. 그 아이의 눈에 나는 항상 '나풀거리는 뭔가'를 입고 다니는 나이 미상의 대리님이었다. 먼저 나간 걸 봤는데 왜 아직 여기 있냐 하니 퇴근 후 늘 회사 앞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고 움직인다고 했다. 아 그렇군요 하고 인사하려는데 하필 가는 방향도 같다 한다. 어색하게 한 전동차에 올랐으나 이내 그가 나와 가깝게 지내는 5촌 조카와 동갑이라는 사실이 기억나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심성이 착한 그 아인 모든 질문마다 굉장히 성실한 답변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이를테면 본가가 어디냐고 물었을 때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거처의 여정을 나열해 주는 등의 깨알같은 디테일함이었다. 특히 우리 조카 얘길 해주자 가뜩이나 큰 눈이 더 크고 휘둥그레졌다.


" 조카요...? 대리님 대체 몇 살이신데요... "


궁금해하니까 재밌어서 대답해주기 싫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한 달간 내 나이를 모른 채 저 혼자 추리 게임을 시작했다. 온갖 단서를 그러모아 손가락을 접고 눈을 굴리며 수를 셌다. 그게 뭐라고. 나는 너무 재밌어서 나의 동기가 영원히 내 나이를 몰랐으면 했다. 하지만 그 추리 게임은 함께 지원 나갔던 행사에서 내 지갑에 있던 법인 카드를 건네줄 때 민증을 들키며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대리님'이라 말하며 어이없게 파이팅을 해주고는 가끔 내가 블랙커피란 단어 좀 썼다고 옛날 사람이라고 놀리곤 했다. 그 뒤로 출 퇴근길에서 자주 마주치며 점차 어색하지 않은 동기애와 나름의 독특한 우정이 쌓여갔다.


출근길, 이따금씩 지하철 계단에서 나를 발견하고 쫓아오는 그 애가 내 빠른 걸음을 따라잡지 못해 결국 뛰어와 나를 툭툭치곤 했다.


" 같이 가요, 대리님. "


그리고 또 한 가지를 알게 됐다. 그 아이에게 나는 항상 '나풀거리는 뭔가' 입고 다니고, 스칠 때마다 특정한 향수 냄새가 나는 대리님이었다. 내가 아무리 청포도 향기가 베이스라 말해줘도 그 아이는 무조건 '오이 비누향'이라고 우겼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오이 비누향 비슷한 향기를 풍기는 나풀나풀 대리님'이었다.


그 아인 출근길, 점심, 퇴근길이면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런 걸로라도 스트레스 풀어서 좋겠다고 말하면 대리님은 이런 거 알지 말라며 애 늙은이 코스프레를 할 줄 알았다. 그런 애늙은이와 함께 퇴근할 때 지하철에서 아주 가끔 빵을 하나씩 들려 보내곤 했는데 그 아이는 그게 너무 고맙다며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를 도와준답시고 새벽까지 문장을 짜오는 눈물 나는 동기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비록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만) 그 아이가 사는 거처를 내가 사는 곳의 반대 방향으로 옮긴 이후로 그런 친분은 자연스레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는 언제부턴가 점심도 굶어가며 머신처럼 일하기 시작했다. 조카처럼 살갑게 굴었던 그 아이와 멀어져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저 응원하며 지켜보았다. 하지만 딱히 내 응원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 아이는 무슨 일이 주어져도 잘 해냈고 처세술도 좋았다. 어떤 일에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쳐내는 그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보다 훨씬 어른 같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나이도 많고 직급도 있는 동기인 내가 모범이 되기는커녕 매 순간 혼나고 아등바등거리는 모습이 창피해 실수 한 번 하지 않는 그 아이가 죄 없이 얄밉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무언의 끈끈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휴직을 했을 때, 그 애는 묵묵히 내 일을 한 달간 대신 받아 주었다. 그리고 나는 점심 먹으러 나갈 때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5분씩 신발 끈을 묶느라 무리에서 뒤처지는 그 애를 엄마의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함께 걸어가곤 했다. 그렇게 소소하고도 심각한 별의별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일 년간, 폭풍처럼 냉혹했던 한 공간에서 나와 나의 동기는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많은 순간 깨지고 고생하는 서로를 짠하게 여기며 같은 시간을 보냈다.



같은 날 입대하거나 입사한 동기를
알 동기라고 한대요.
우리는 알 동기네요, 대리님.



마지막 날 그는 여느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출근했고 점심 먹으러 가는 길, 땅에 고개를 처박을 듯 공들여 신발끈을 묶었다. 지난주부터 작별 인사를 해대는 나를 보며 그런 오글거리는 것 좀 하지 말라며 연신 손사래를 친다. 그 아이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 지는 것은 왜일까.


그의 마지막 퇴근길, 배웅을 해준다며 쫓아 나서는 나를 그는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늘 같은 장소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처 다 묶지 못한 신발끈을 묶고 일어나 담배를 꺼내 물어든 그는 꼭 건강히 잘 지내고 잘 살라고 백 한 번째 작별 인사하는 나에게 제발 그만 하라며 웃어 보였다. 시간이 흐른 밤, 그에게 아주 오랜만에 장문의 작별 문자가 왔다. 매우 형식적인. 하지만 고민하고 꾹꾹 눌러 담았을 문장들. 고마웠다는. 말 예쁘게 못한 거 있으면 용서하라는.


그가 없는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출근하면 항상 그 자리에 앉아있을 것만 같았다.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제 시야의 360도 전방을 다 파악하고 있으면서 그 세심한 디테일을 숨긴 채. 그는 나의 오이 비누 향을 기억할 것이고 나는 그의 담배 냄새를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억울해하겠지만 말이다.


그가 잘 살길 빈다.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매년 9월이 오면 그가 두 손 모으고 내가 계단을 다 내려오길 기다리던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점심시간, A코스와 B코스를 고민하는 날 위해 하나씩 받아서 나눠 먹자 말해주던 섬세함과 선량함을 기억할 것이다. 커피와 함께 공짜로 받아오던 약과를 내 자리에 말없이 스윽 밀어주던 그 예쁜 마음도. 어디에서 어떤 일을 시작하던 묵묵히 잘 해낼 그를 응원한다.


내 영원한 알 동기 안녕,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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