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클라이언트
약 2년 전이었던 것 같다. 한 항공사의 마케팅 부서 임원이 광고 대행을 맡고 있는 에이전시와의 회의 도중 그 회사의 팀장에게 음료수 병을 던지고 얼굴에 물을 뿌렸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던 일이. 21세기에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냐며 다들 현실 같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는 드라마 같다고 웃기도 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같은 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화도 나고 어이도 없었다. 그리고는 가장 처음 입사했던 마케팅사에서 만난 최악의 클라이언트를 떠올렸다. 월간 미팅을 갔을 때 당시 클라이언트였던 한 성형외과 의사가 던진 휴지를 얼굴에 맞았던 기억. 매출이 안 나온다고 당장 어떻게 해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 같은 행위를 서슴지 않던 그는 본인에게 돈을 주는 환자들에게는 세상 더없이 천사 같던 의사였다. 하지만 그가 돈을 주는 입장이 되었다고 해서 함께 협력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대우를 해도 좋다는 권리는 누가 부여해 줬을까. 그는 우리 또한 외부에 입소문을 내줄 수 있는 또 다른 내부 고객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회사 내에서도 악명 높은 클라이언트여서 모두가 '그 사람은 원래 그래.'라며 위로해 줬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던 나는 그 당시 '그 사람이 원래 그렇다는 사실' 하나로 쉽게 위로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그땐 그랬었지, 세상엔 별 사람이 다 있는 법이지 하며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것은 그저 시간의 흐름이라는 잔인한 약이 주고 간 망각 덕분이다.
이 일을 시작하고 광고, 홍보 에이전시에 있으면서 수많은 클라이언트를 겪어 왔다. 에이전시에 있으면 특히 섬겨야 할 이들이 많다. 내부 고객이라 불리는 사내 상사들, (광고) 주님이라 불리는 클라이언트, 그리고 언론사 및 기자단. 일하는 사람마다 가장 대하기 어려운 섬김의 대상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가장 긴장되는 관계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 생각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클라이언트들도 물론 존재했다. 저렇게 대놓고 악명 높으면 차라리 괜찮다. 말은 세상 예의 바르게 하면서 나를 수행 대기조처럼 여기고 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에이전시의 숙명이다. 물론 그런 경험들을 통해 더 단단해지기는 했다. 물을 뿌리거나 얼굴에 휴지를 던지는 등 극한의 갑질을 하는 고객사는 분명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클라이언트가 결코 이런 형태로 에이전시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협력 파트너 관계로서 존중하고 의지해오는 좋은 클라이언트도 많다는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다.
아쉬워요.
대리님이랑 오래 일하고 싶었는데.
이른 아침 그녀의 메시지를 받고 연거푸 발신인을 재확인하고 수신인은 내가 맞는가 생각했다. 홍보 일을 처음 맡았던 클라이언트였던 미술 전시 기업 담당 대리님이었다. 입사 후 8개월을 내가 담당하다가 더 큰 프로젝트로 가게 되어 다른 담당자에게 인수인계해야 했던 고객사였다. 개인적으로 그 전시 기업의 언론 홍보에 정말 열과 성을 쏟았다. 홍보 일에 아직 미숙한 상태라 실수도 많았고 고생도 많았지만 미술과 전시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그 전시를 홍보하는 일이 좋았다. 월마다 다니는 기자 미팅도 즐거웠고 만나는 기자분들이 어떤 부분을 물어보실지 예상해 공부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고객사 홍보 담당 대리님은 처음엔 다소 사무적이고 빈틈없는 차도녀 스타일이었으나 빠른 상황 판단력이나 스마트함, 합리적인 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매달 있던 기자 미팅과 월간 미팅, 그리고 매일 수시로 그녀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알게 모르게 나 혼자 정이 들었다. 그녀가 간담회 이후, 그리고 명절 전 빠르게 적응해 주어 고맙다는 사무적이고도 짧은 메시지를 보내주었을 땐 뛸 듯이 기뻤다. 이전부터 홍보 일을 해왔고 워낙 꼼꼼한 성격이었기에 오탈 자나 띄어쓰기도 철저히 확인하는 담당자였다. 적응 기간에 내가 미숙하고 실수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녀는 언제부턴가 그런 작은 부분들은 나를 믿어주고 꼭 필요한 부분만 재요청했다.
담당자가 변경되어 함께 인사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그녀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전시를 정말 좋아하고 열심히 일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 홍보 담당자였다고. 너무 고생하셨다는 말과 함께. 그때도 나는 예상치 못한 뭉클함에 하루 온종일 생각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 진심을 알아줬던 그 감사함에 대해.
다른 곳으로의 새 출근을 준비하던 무렵 이른 아침 그녀의 문자가 와있었다. 뒤늦게 나의 퇴사 소식을 듣고 보낸 연락이었다. 잘 지냈는지, 좋은 곳으로 간 건지, 그간 함께 일했을 때 좋았던 점을 기억하고 있어 아쉽다고. 더 좋은 곳에서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란다는 너무도 다정한 메시지. 그 한마디 한마디 속엔 더 이상 사무적인 딱딱함은 없었다. 진심이 담긴 다정한 문자에 마음이 몽글몽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간간이 웃던 그녀의 예쁜 눈웃음이 떠올랐다. 문자를 이어가는 내내 뭉클했다. 온갖 일을 다 겪어내면서도 그 전시가, 함께 일하는 나의 고객사 담당자였던 그녀의 빠른 피드백과 합리적인 결정이 좋았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쌓여가며 고객사가 그 일에서 고민되는 지점들을 진정으로 공감하기 시작했고 빠르게 해결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가 나를 믿어주고 있음이 암묵적으로 느껴졌을 때, 나는 일이 내게 줄 수 있는 어떤 충족감을 채워가는 법을 처음으로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그곳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순간에 먼저 나를 떠올리고 연락해 준 나의 클라이언트. 아니 이제는 어디에선가 암묵적으로 서로를 응원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사회적 동료가 생겨서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기쁘다. 그녀와 나는 앞으로도 이따금씩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걷다가, 서로와 힘든 순간을 겪어내며 함께 일했던 경험을 소중한 추억으로 담아두고 한 번씩 꺼내보며 웃음 지을 것이다.
사회에 나가 오랜 시간 동안을 너무 생각 없이 보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지, 뭐가 부족한지, 그 부족함을 채우려면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일을 하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 중요한 고민들을 오래도록 놓친 채 살아왔다. 물론 아직도 물음표 투성이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더미처럼 이 목표만큼은 정해졌다. 나는 일을 하면서 '또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많았기에 앞으로 채워가 보고 싶다. 함께 기분 좋게 일할 때 나올 수 있는 시너지가 모여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 그 일, 그리고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좋아했던 나의 진심을 알아주어서 고맙습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언젠가 더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