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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11. 2024

시간 시장(Time Market)-3

반역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세계 존엄사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디그니바이(DigniBye Inc) 사장 이석우는 이른 아침 임원들을 모아놓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김철훈 팀장이 협조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석우의 쌍둥이 동생이자 부사장인 석주가 대답했다.

“이유가 뭐랍니까?”

“정확한 동기는 파악 중에 있습니다.”

“우리의 기밀을 폭로하려다 꼬리가 잡히니 살기 위해 바이를 선택하고 그것을 김철훈이 도왔다? 그것뿐입니까? 오시우는 가족도 없어요?”

“네, 양친은 사망한 걸로 나오고 미혼에 교제 중인 여성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의 행적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 일단은 철저히 의도적으로 우리 회사에 입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음…….”

석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우리를 엿 먹이기 위해 일부러? 무슨 정의의 사도쯤 되는 거요? 김철훈 이 자식은 그런 짓을 하면 어떤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지 않았을 것 아니오?!”

“각오했던 모양입니다.”

“김철훈은 입사 후에 결혼하지 않았소? 자식 돌잔치까지 우리가 가 주지 않았나?”

“맞습니다. 딸이 이제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허허 이것 참. 처자식보다 오시우가 더 중요했다는 얘긴가? 연구소 후배라고 아껴 주고 데려와서 키워 줬더니 이딴 식으로 배신해? 후. 일단 가족 신변 확보하도록 하시고. 이제 부사장은 그만 답변하세요. 다른 분들에게 좀 여쭙지요. 이번 일은 우리 사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심각한 사건입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했어요. 이건 반역입니다. 하, 이것 참. 제가 이 회사를 만들고 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일군 동안 솔직히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좀 많이 당혹스럽습니다. 김철훈 팀장, 차 전무님이 추천한 친구죠?”

“예예, 예, 사장님.”

차영철 전무가 손을 덜덜 떨면서 답했다.

“김 팀장하고는 어떤 사이시라구요?”

“예. 처조카입니다.”

“피추천인이 사고를 일으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예, 사장님. 그, 그런데 이번 건은 회사에 금전적인 손실을 끼, 끼치지도 않았고, 외, 외부에 기, 기밀이 새나갈 여, 염려도 없는 지라.”

“그래서 그냥 넘어가겠다는 말씀입니까?”

“아, 아닙니다. 제, 제가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하여간 우리 차 전무님 책임감은 알아 드려야 한다니까. 그럴 필요 있나요? 차 전무님이 지금까지 회사에 기여한 것이 얼마나 큰데 가깝지도 않은 처조카의 잘못에 책임을 지라고 하겠습니까?”

“가, 감사합니다, 사장님.”

석우가 영철 옆으로 다가와 회의 테이블에 엉덩이를 붙이며 말했다.

“대신 지금 곧바로 가서 김 팀장의 유서 직접 받으시고 검토하세요. 24시간 드리겠습니다. 24시간 안에 유서와 기획안 가지고 돌아오세요.”

“예?”

“어서요. 시간 갑니다.”

석우가 자신의 시계를 톡톡 두 번 두드리며 말했다. 

“예, 예, 사장님. 가, 감사합니다.”


영철이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갔다. 석우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자,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석우가 손뼉을 한 번 치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경호실장 박승준이 연단 위로 올라갔다. 승준이 좌중을 둘러보며 리모컨을 누르자 곧바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는 홀로그램 정보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시우. 33세. 하버드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AI와 바이오 기술을 결합한 첨단 신약 개발사 이노큐라(InnoCura)의 수석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2년 전 여름에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우리 회사에 입사 신청했습니다. 워낙 전설적인 인물이라 전직 자체가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었지요. 이노큐라에서 개발 중인 차세대 항노화 신약, 사실상 역노화 신약이 임상 2상 진행 중이었고 그가 주도해 온 일이라 이노큐라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동종 업계도 아니고 우리 회사로의 이직을 막을 방법이 없었지요. 이후 그는 이노큐라 신약의 작용 기전과는 전혀 다른 신약 물질 개발에 집중해 왔고 단기간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임상 2단계 성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처음부터 우리 회사의 본업에 대해서는 관심 없었고, 미국 기업을 떠나 전도유망한 젊은 한국 기업에서 자신의 신약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며, 이는 사장님께서 그를 필두로 신약 개발 부서를 신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승준이 내려가고 기술이사 이정민이 올라왔다.

“그가 왜 1971년을 선택했는 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저희 기술팀에서 신속히 파악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 70년 전의 시대라면 그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현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바이는 적어도 200년 전으로 보내도록 엄격히 관리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이미 오시우가 영향을 끼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을 수도 있구요. 그가 생존해 있을 확률은 희박합니다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박 실장이 보고 드린 대로 그가 최고 권위를 인정 받던 분야가 바로 노화를 멈추고 회춘을 가능하게 하는 약물이었으니까요.”

“뭔가 개운치 않아요. 기분이 아주 찝찝하단 말이야. 그가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이 시대의 기술로 추적하지 못할 정도는 아닐 거요. 안 그래요? 정부 DNA 센터, CCTV 센터 자료 다 뒤져서 과거에서 돌아온 오시우를 추적하도록 하세요. 내가 얘기는 해놓을 테니까. 괜히 우리 사업에 똥물 튀기 전에 서두릅시다.”

“예, 사장님.”

“각자들 일보고 24시간 후에 다시 모여서 차 전무가 일을 말끔히 했는지 들어보도록 합시다. 아아, 부사장님은 잠깐 남으시고. 그럼 수고들 하세요.”


직원들이 우르르 나가고 회의실 문이 닫히자 석우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석주가 다가가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 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자 천장에 설치된 공기청정 시스템이 곧바로 작동하면서 연기를 들이마셔 없앴다. 

“라이터 줘 봐.”

석우는 석주가 건넨 지포 라이터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다 불을 여러 번 켰다 껐다 했다.

“이 골동품 오랜만에 보네? 어디서 났어?”

“맘에 들어? 가져.”

“됐다. 관리 귀찮아. 쓰읍. 김철훈이를 태워 죽일까, 잘라 죽일까? 어떻게 죽여야 분이 풀릴까?”

석우가 담뱃재를 바닥에 툭툭 떨며 이를 갈았다.

“죽이려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죽이는 건 언제나 너무 간단해. 약한 인간은 이용가치가 바닥날 때까지 끝까지 써먹고 버려야 맛 아니겠어? 석주야, 내가 회사에 로봇을 안 쓰는 이유가 이거야. 아랫것들은 명령에 복종하는 법만 알면 돼. 이 담뱃재와 꽁초를 쓸고 줍고 닦는 청소부들이 말이야. 어렸을 때 꿈이 이건 아니었을 거 아냐? 그 부모들도 지 자식들 청소부 되기를 희망하지는 않았을 테고. 방법이 있기만 하다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겠지? 그런데 그냥 그렇게 청소하며 살잖아. 방법이 없으니까. 직원들도 청소부들을 보며 그걸 배우는 거야.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먹고 살 방법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거지. 천한 것들이 꿈 따위를 꾸면 안 되는 거야. 회사에 붙어 있는 게 그것들의 유일한 꿈이 되어야지. 그런데 정부에서는 인간을 고용한다고 우리한테 표창도 하고 지원금도 주네? 씨발, 골 때려서 원. 킥킥킥.” 

“저항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공포가 그 꿈의 원료였는데 김철훈이 이 새끼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단 말이지.”

“오시우의 물건을 우리가 얼마나 원하는지 아니까.”

“레벨이 다른데 우리 같은 존재들이나 천한 것들이나 동등한 기간을 살다 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시간의 가치가 염연히 다른데 그게 말이 되냐고? 그 하찮은 것들이 우리가 마실 공기를 오염시키고 더러운 숨을 내뿜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라고.”

“지당한 말씀. 하여간 석주야. 직원들 동요 안하게 겉으로는 동일하게 처벌해야 한다.”

“알았어, 형. 차영철이가 어떻게 짱구 굴리는지 한 번 보구 다시 논의해 보자구.”석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불이 붙어 있는 담배 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밟아 비볐다. 그리고 그 위에 걸쭉한 침을 뱉은 뒤 석주와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문을 열자 도구를 든 남녀 청소부 두 명이 물러나며 꾸벅 인사했다. 석우와 석주는 짐짓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여 답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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