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호댁
저녁 7시. 어둠에 잠긴 평화시장은 평화로워 보였다. 2주만의 휴일을 맞은 어린 여공들의 피곤에 찌든 얼굴에도 작은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봄꽃보다 싱싱할 한창 나이에 햇빛을 받지 못한 그녀들의 하얀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언니들 조심히 들어가시고 내일 푹 쉬세요.”
현미가 대표로 인사한 한 무리의 여공들이 고개를 꾸벅하고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연희도 손을 흔들어 화답해 주었다.
“언니, 무슨 생각해요?”
희숙이 연희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동대문으로 흘러 들어왔던 앳된 희숙의 얼굴에도 이젠 제법 숙녀 티가 나고 있었다.
“그냥. 평화롭다는 생각?”
“평화롭긴 뭐가 평화로워? 2주 동안 전쟁하고 하루 휴전하는 건데. 어떤 시버럴놈이 지었나 몰라도 이름 참 드럽게 지었지. 평화는 옘병. 어떤 년은 부모 잘 만나 자가용 타고 대학 댕긴다던디 우리 팔자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겨, 도대체?”
입이 걸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영순이가 연희의 나머지 팔 하나를 잡고 몸을 붙여왔다.
“아따, 뭐 이리 춥다냐? 쐬주 잘 들어가겠다 언니, 그치?”
그래. 어느덧 또 겨울이구나. 영순을 향해 미소 지으며 연희는 속으로 말했다. 연희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더는 묻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저 하루하루 숨이 붙어 있는 육신을 끌고 살아남아 있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 어서들 와.”
마침 입구를 주목하고 있었던지 영순이 여닫이 유리 출입문을 열기 무섭게 안쪽에서 영철이 손을 들고 소리쳤다.
“아따, 견우님도 오셨네?”
영철 옆에 앉아 있는 진호를 보고 영순이 어깨로 연희의 몸을 툭 치며 말했다.
“어여들 앉아서 불들 좀 쬐거라.”
“뭔 노인네여? 쬐거라가 뭐여 쬐거라가. 불 쬘 시간이 으디 있간디? 요렇게 괴기가 잘 익었는디 말여.”
영순이가 젓가락을 들어 불판 가장자리에 놓인 주먹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시원하게 씹어 대자 영철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희숙이 많이 이뻐졌다 야. 시집가도 되겄네.”
“어디 백마 탄 왕자 하나 있으면 소개나 해주고 그딴 소리혀.”
“돈 벌어서 나중에 백마 한 마리 사 줄라니까 이 오빠는 워떻게 안 되겄냐?”
“정신 차리고 술이나 한 잔 받으시이송. 오라버니들 간만이여라.”
넉살 좋은 영순이가 소주병을 들고 영철과 진호의 잔을 채웠다. 며칠 전의 언쟁 때문이었는지 연희와 진호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영순의 술을 받았다.
“니들 전쟁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냉전이고? 날도 추분데 니들 땜시 더 추운 것 같다. 자, 한 잔 하자.”
“냅둬라 오빠야. 얼라들은 다 싸우며 크는 기다.”
영철이 두 사람에게 은근히 핀잔을 주자 영순이 톡 쏘면서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캬, 술맛 지기네. 희숙이 니도 붕어맨키로 뻐끔거리지 말고 션하게 원샷해 봐라.”
“나 그렇게 마시면 죽는다, 언니야.”
“가스나야, 원래 술은 죽을라고 마시는 기다. 살라고 마시면 암 맛도 안 난다.”
“그래 영순이 말이 맞다. 마시고 죽자. 자, 건배.”
“오빠야 그럼 내 죽을 때까지 마셔도 되나? 돈 있나?”
“마 인생 뭐 있노? 그래 영순아 이 오빠가 쏠라니까 맘껏 마시고 죽어라. 내 관은 짜주께.”
“고맙습니다, 오라버니. 고기 더 시키도 되겠습니까?”
“그래, 시키라.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 좋다 안 하나? 실컷 묵고 요단강 확 건너뿔자.”
남매처럼 이름의 글자 하나를 공유한 영철과 영순은 언제나 죽이 잘 맞았다.
“이모, 여기 주먹고기 3인분 추가요. 소주도 두 병.”
몸이 좀 으슬으슬하다며 희숙이 먼저 일어났을 때 벽에 걸린 괘종 시계가 9시를 지나고 있었다. 함석 소재의 원형 탁자에 둘러앉은 네 사람 중 영철과 영순은 거나하게 취한 채로 연신 박장대소하며 수다를 떨었다. 연희는 빈 소주잔을 만지작거렸고 진호는 가끔 혼자 술을 따라 홀짝거렸다.
“그날 미안했다.”
긴 침묵을 깨고 진호가 먼저 입을 뗐다.
“뭐가 미안한 데요?”
연희가 식당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진호의 시선을 받으며 물었다.
“그냥 다. 나 대학생인 거 속인 것도, 바보회 들어간다고 했던 것도.”
“한 잔 줄래요?”
진호가 잔을 채우자 단숨에 잔을 비운 연희의 두 눈에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고였다.
“오빠 대학생인 건 눈치채고 있었어요. 오빠 손, 오빠 글이 다 말해 주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모르겠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오빠. 나도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건 알거든요? 나도 태일이 말 들으면 막 가슴이 뜨거워져요. 그런데 난 무서워요.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는 거잖아요. 우리 아빠 전쟁 통에 월북하고 나 자라는 동안 사람 대접 받은 적 없어요. 날마다 빨갱이 자식 소리 듣는 게 얼마나 지겨웠는지 알아요? 난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다 싫어요. 그냥 허리 아픈 우리 엄마 고생 좀 그만했으면 좋겠고, 세상 어쩌든 간에 오빠하고 오손도손 살고 싶어져서 자꾸 두려워요. 오빠는 새장 속의 새가 아닌 걸 아니까. 나하고 살아봐야 오빠 인생에 방해만 될 거 뻔한데.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오빠한테 문제 생기면 나 혼자 살 수 있을까, 맨날 이런 생각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 줄 알아요?”
연희의 눈에서 그렁거리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니들 사랑싸움 할라믄 집에 가서 해라. 여관가서 하든가. 니는 좋은 날에 왜 여자 울리고 지랄이고?”
취한 영순의 손이 진호의 등짝을 짝 소리 나게 내리쳤다. 영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희가 가방과 목도리를 들고 일어서 바삐 자리를 떠나갔다. 뒤따라 일어난 진호는 옷을 챙겨 부리나케 출입문으로 향하다가 돌아와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미안하다, 영철아. 먼저 갈게. 통금 시간 늦지 않게들 들어가. 모레 보자.”
“연희야, 연희야!”
뛰다시피 종종걸음으로 순대국집 앞을 지나가고 있는 연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가게 앞에서 젊은 남자들 몇이 모여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연희야.”
좋을 때다, 좋을 때여. 진호가 남자들 앞을 지나칠 때 뒤에서 누군가 떠들었다. 갈비뼈 없는 놈 서러워서 살겄나. 거울에 니 상판때기 좀 비춰 보구 그딴 소리 혀라는 객쩍은 소리들이 등 뒤를 따라왔다. 연희를 따라잡은 진호가 연희 앞을 가로막아 세웠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얼굴로 연희가 진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연희의 눈빛을 받으며 진호는 평소와 다르게 심장이 고동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여자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인생은 의미 있는 것일까? 지난 몇 일간의 고민에 온몸이 생생하게 답을 내려주는 것 같았다.
“연희야, 우리 시골 가서 살자.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농사 지으며 오손도손 살자.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 굶어 죽으면 또 어때? 그 어떤 것도 너 없이는 무의미해. 널 잃고 싶지 않아. 니가 내 삶의 의미야.”
연희는 대답 없이 진호의 품을 쑥 파고 들었다. 그래, 이 남자라면 어디에서 뭘 하고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연희의 눈앞에 아들딸과 함께 들판을 달리며 웃는 두 사람의 미래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눈이 내렸다. 첫눈이었다. 눈은 점점 더 굵어지더니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 불빛 앞으로 쏟아지는 눈이 가끔 일어난 바람에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의사인 부친은 대학교를 중퇴하고 결혼하여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아들의 말에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빨갱이 사상에 물들어 집안을 말아먹을 지도 모를 시한폭탄 같은 막내 아들의 선택이 그는 내심 반가웠다. 병원을 물려 받을 큰 아들이 실력 있는 의사로 자리잡고 있었고, 둘째 아들은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한 상황이었다. 돈으로 밀어 주기만 하면 합격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똘똘한 자식이었다. 막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식이었다.
계모와 이복형제 둘 역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붙일 정이 없었던 존재가 볼품 없는 여자를 만나 스스로 하층민의 세계로 걸어 내려간다는 데야 속이 다 시원할 따름이었다.
진호와의 신혼 생활은 행복했다. 인생의 방향을 사랑으로 정한 진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로 밭에서 일할 때면 영락없는 농사꾼의 모습이었다. 늘 세심하게 주위 사람들을 챙겼으나 말수가 적고 붙임성이 적었던 진호가 동네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모습은 새로운 것이었다. 그의 미소는 아내는 물론 청학리 사람들 모두를 향해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연희는 세상을 걱정하던 심각한 얼굴의 진호보다 들과 산, 그리고 순박한 사람들과 어우러진 그의 밝은 표정이 더 좋았다. 일상은 행복했고, 인생의 희망은 살이 올랐다. 연희야, 셰익스피어가 말한 인생이라는 나의 무대는 바로 이곳이었어. 이 위에서 너와 함께 맘껏 춤추며 살고 싶어.
밤을 주워 오겠다며 산을 오른 진호는 돌아오지 못하고 산에서 죽었다.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독이 잔뜩 오른 가을 뱀에게 물려 세상을 떠난 진호의 죽음은 너무도 가벼워서 현실감이 없었다. 영혼을 비우고 차갑게 식어 버린 진호의 시신은 자신을 절대로 행복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밑도 끝도 없는 적개심의 결과처럼 느껴졌다. 산을 오르던 진호와 산에서 내려오지 못한 진호 사이의 시간을 만들어 둔 신의 뜻을 연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이란 연대한 인간들의 의지로 반드시 바뀌기 마련인 대상에 불과하다고 부르짖었던 진호의 허망한 죽음은 삶이 그렇듯 죽음도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작동하는 신의 장난 같은 것처럼 느끼게 했다. 자신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진호는 다른 방향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연희는 혼자 남은 밤마다 질문을 던졌다.
목숨 붙어 있는 동안은 살아야 하는 벱이여. 목을 메지 못하고 통곡하던 날 홍식이네 할머니는 연희를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살다 보면 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기더라구. 그럴까, 이유라는 게 내게도 생길까? 등을 쓰다듬는 홍식이네 할머니의 굳은살 박힌 손바닥이 조금 더 살아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다 보면 너도 누군가의 등을 어루만질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될 수 있다고.
이듬해 겨울 멀리서 태일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날 밤 꿈에서 연희는 불길에 타 들어가는 남편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태우게 만드는 인간의 의지를 연희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어렴풋이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신념을 위해 죽는 죽음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 남편을 뜨겁게 만들었던 것은 그런 죽음이라면 살아 있는 목숨을 충분히 가치 있게 쓰는 일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었다. 그 믿음에서 멀어져 자신과의 시간을 선택한 것은 자신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것보다 컸기 때문일 것이었다. 자리에 누운 연희의 감은 두 눈 위로 멀리서 새 우는 소리가 날아와 떠돌아다녔다. 오빠, 새는 웃지 않는 걸까요? 무슨 말이야? 새가 소리 내는 것을 운다고 표현했잖아요. 자유롭게 날아 다니는 새들이 웃기까지 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 슬펐던 것일까요? 연희야. 그럼 우리는 앞으로 새가 웃는다라고 말하자. 새소리가 들릴 때마다 우리도 웃자. 혹시라도 웃는 거 까먹지 않게 매일 하늘을 올려다보자. 멀리서 새들이 자주 웃었고, 미소를 머금은 연희의 눈가로 눈물이 미끄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