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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13. 2024

시간 시장(Time Market)-6

두 할머니


“뭘 설거지까지 다 해주고 그랴?”

시우가 떠난 후 상을 들고 부엌에 들어간 홍식이네 할머니가 개수대에 그릇을 넣고 수세미를 들자마자 입구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미연이네 할머니가 톡 쏘아붙였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어. 우리 같은 아이여.”

“휴우, 사람 목숨이란 거 개볍기가 춘삼월 벚꽃 같구마이. 그렇게 갈 거 뭣 허러 오는 길까?”

“그래도 니랑 내랑은 이렇게 질기게 붙어 있잖냐?”

“내 말이 그 말여. 자식 새끼덜 목숨 앞세우고 뭔 영화 볼라고 이러코롬 질긴 것인가? 콧구멍이 두 개라 내가 숨쉬고 살지. 하이구 참말로.”

“애들 있잖여? 미연이, 홍식이 시집 장가 다 보내고 가는 거, 그게 우리 할 일이다.”


떠나는 여름이 서럽다고 나무마다 매달린 매미들이 아침부터 악을 썼다. 떠나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였다. 그 징한 이치는 어긋나는 법이 없었기에 필시 서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둘러 떠나는 자가 하필 자신의 피붙이요 낭군이면 통곡이 저절로 악에 받쳐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연희네 대문을 걸어 잠그고 좁은 골목길을 걸어 밭으로 향하는 동안 매미의 울음이 두 할머니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었다. 그 놈의 인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아서 같이 밥 먹던 시절의 기억은 불쑥불쑥 현재로 소환되어 내장을 후비며 돌아다녔다. 

“아따, 저 썩을 놈의 매미 아침부터 환장하게 지랄했쌌네.”

미연이네 할머니가 괜히 나무들을 휘이 둘러보며 한마디 했다. 그 덕분인지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도 싶었다. 

“왜 가만 있는 매미헌티 시비냐? 쟈도 쟈의 일을 허야지.”

“우리 복장 터지는 건 입도 뻥긋 못허고 사는 디 저것들은 지들 좋을 대로 내지르는 거이 심통나서 그런다 왜?”

“니가 그런 말 허믄 매미가 웃겄다.”

“내가 뭐?”

홍식이네 할머니가 대답 대신 친구의 등을 살며시 두드리고 나서 파란 하늘 아래로 떠가는 구름을 올려다 보았다. 

“매미가 하늘 가기 싫은 갑다.”

이 말에 미연이네 할머니가 입을 삐죽거리며 친구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미연아?”

“왜?”

“우리 둘은 그래도 참 좋았지?”

“비싼 밥 먹고 뭔 실없는 소리여?”

“니가 없었으믄 나도 참 외로웠을 것이다. 내 짝 되어 줘서 고맙다.”

홍식이네 할머니가 슬며시 미연이네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다. 

“아따 노망 들었나 안 하던 짓을 하구 그려?”

그래도 싫지 않았다. 미연이네 할머니에게 홍식이네 할머니는 언제나 푸근한 언니 같고, 인정 깊은 선생님 같아 의지가 되는 친구였다. 친구가 없었다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몇 배는 더 고달플 것이라고 생각하며 미연이네 할머니는 친구의 손을 꼭 쥐었다. 


읍네에 공단이 조성되고 처음 들어선 것이 비료 공장이었다. 두 할머니는 자식 마저도 똑같이 아들 하나씩을 낳았는데, 국민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인 두 아들은 벌이가 시원찮은 농사일을 모친들에게 맡기고 비료 공장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아들들은 주 6일을 바지런히 일하고 맞는 휴일에도 쉬지 않고 남정네의 힘을 필요로 하는 집안일과 농사일로 시간을 썼다. 비료 공장에 다니며 장가도 들고 자식 새끼도 낳았으니 고마운 세월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눈곱 만큼씩 살림이 피고 웃음이 쌓이면 충분한 것이 인생이었다. 사람 사는 동안 앞으로 나아가려다 뒤로 나자빠지는 일은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났다. 흙을 만지고 사는 일은 고되면서도 돈이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밭에서 손에 흙을 묻히는 한 어느 날 갑자기 뒤로 넘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혹여 자식들이 뒷걸음치는 일이 생겨도 자신들을 밟고 다시 앞을 향할 수 있도록 두 할머니는 날마다 흙을 묻히며 살았다. 

남쪽 하늘에 시커먼 연기가 무섭게 치고 오르던 날, 두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비료 공장에서 난 화재는 많은 직원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인간으로 태어나 살았던 두 아들의 흔적도 세상에서 증발했다. 한. 살아가는 동안 한 맺히는 일만 없어도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임을 두 할머니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남편을 잃은 것으로 전생의 죄업을 씻었다고 믿었다. 그런 게 있다면,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죽음의 값이라는 것이 남아 있던 것이라면, 그것으로 끝내 주기를, 다음 번엔 반드시 자신들의 목숨을 거두어가기를 기도하며 두 할머니는 살아남았다. 삶의 궤적이 지독히도 닮아서 두 할머니는 남이 아니라 한 몸처럼 살았다. 

끝내 자식들의 목숨마저 집어삼키는 하늘의 무심함은 진공처럼 담담해서 맞서 소리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늘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너희들의 복이야, 너희나 길가의 풀이나 다를 게 있나? 발인이 끝나고 올려다 본 하늘빛은 너무도 푸르러 마음이 놓였다. 자식들이 좋은 곳에 갔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좋은 곳. 땅에 그런 곳이 존재할 리 없었다. 죽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그곳에 이르기에는 손주들이 눈에 밟혔다. 떠난 자들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은 자들의 입에 밥을 넣어 주는 일이었다. 손주들은 많이 먹었고 씩씩하게 학교를 다녔다. 늙어 쭈그러진 할매들이라도 아이들에겐 거대한 바람막이였다. 두 할머니가 살아 있는 한 착한 아이들은 잘 먹고 쑥쑥 잘도 컸다. 그것이 두 할머니가 시간을 견디는 힘이었다. 


“니도 마이 늙었구나. 니 어릴 적 참말로 이뻤는디. 안 그냐, 순심아?”

홍식이네 할머니가 친구의 손을 조몰락거리며 말했다.

“야가 야가 죽을 때가 되었나 자꾸 안 허던 짓을 허는 겨? 그거이 내 이름인 것도 다 잊고 살았는디 니는 여태 안 까묵고 있었냐?”

“니는 까묵었냐?”

“그거 뭐 까서 묵을 기 있다고 까묵겄냐?”

“그라믄 함 불러 봐라.”

“치아라. 남사시럽고로.”

“나도 듣고 자퍼서 그란다 왜.”

홍식이네 할머니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친구를 보챘다.

“하이고마 알았다, 점순아. 이제 됐나?”

“됐다.”

“무신 딸내미 이름덜을 요로코롬 촌시럽게들 지어 뿌렀는지. 좀 신식으루다가 지어 줬으면 좀 좋아?”

“그땐 그르키 하는 건 줄 아셨을 테니께.”

햇살이 조금씩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배부르고 등 따신 시절이 손에 꼽을 만큼이었어도 가을 햇빛으로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봄 햇빛으로는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온 시절이었다. 두 할머니는 잡은 손을 더 꼭 쥐었다.


“올해 농사는 실허게 잘 되었어.”

잡풀을 치우고 있는 연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홍식이네 할머니가 말했다. 

“올해는 눈물 흘릴 일이 없었응게.”

“3년만이구먼. 난 사람은 없고 든 사람만 있는 게.”

“그 양복쟁이 말하는 겨? 실없기는. 하루짜리 뜨내긴디 무슨.”

“아니다, 미연아. 그 젊은이 평범한 사람 아이다. 진호댁 쟈가 말하더구나. 생전 처음 보는 양복이라고. 세상에 우연이 있더냐?”허리를 펴고 이마에 땀을 닦던 연희가 두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꾸벅 인사했다. 오야, 오야. 두 할머니가 손을 들어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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