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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13. 2024

시간 시장(Time Market)-7

추적

“뭐 찾은 거 있냐?”

고급 룸살롱 VIP룸에서 석우가 석주에게 물었다. 

“아직. DNA는 일치하는 게 없고, 차영철이가 김철훈의 입을 여는 중인데 별 반응이 없네. 개새끼.”

석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위스키 잔을 들어 입에 쏟아 부었다. 

“차영철을 좀더 조져야 하지 않겠어?”

석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형. 그 인간 좀 더 푸쉬하다간 골 때릴 수 있어. 괜히 사무실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다고. 그 인간은 내가 잘 알아. 약간 내 스타일이거든. 칭찬해 주면 고래처럼 춤추면서 잠재력까지 꺼내 올리지만 비난하면 거의 자폐증 환자로 변해. 주눅들면 말부터 더듬잖아? 고객 관리와 대외 업무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야. 그러니까 형은 쪼고 나는 좀 풀어 주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야지.”

“그래, 알았다. 근데 좀 답답하긴 하다. 왜 하필이면 1971년인가 말이야. 하,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아. 그 새끼가 원한 게 그것일까? 안개 속으로 숨어 버리는 것. 우리를 안개 속에서 헤매게 하는 것.”

“그 자식의 목표는 우리와 우리 사업을 쓰러뜨리는 것이 분명해. 접근 방법을 완전히 다르게 가져가야 할 지도 모르겠어. 형 말대로 우리가 안개 속으로 들어간 거라면,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전부 버려야 해. 그것들은 오시우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남긴 것뿐일 테니까.”

“무슨 말이야?”

“오시우를 뒤쫓을 것이 아니라 1971년에서 오시우가 만났을 법한 사람들을 쫓아야 한다는 거야. 기계 손상 때문에 바이 때 어떤 금속도 소지할 수 없잖아? 그 시절 지폐들을 그 놈이 챙겨갔을 리도 만무하고. 무일푼인 그 놈은 틀림없이 자신에게 힘이 될 사람을 미리 선정해 두었을 거야. 그를 도우며 힘을 길렀겠지. 지금 돈 있고 힘 있는 인물들 중에서 오시우가 돌아가기 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사람을 찾아야 해.”

“그걸 찾는 게 가능해?”

“일단 김철훈의 입을 열어야지. 분명히 아는 게 있을 테니까. 눈앞에서 자식새끼가 죽어 나가도 입을 다물겠어? 정 안 되면 우리에겐 최후의 수단이 있으니까 결국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어.”

“최후의 수단?”

“호랑이를 잡으러 가는 것. 보내야지 터미네이터들을.”

“그래, 그 방법 밖에는 없을 수도. 말 나온 김에 미루지 말고 박승준이 시켜서 미리 물색해서 준비시켜 둬.”

“어. 그래도 그 수단까지는 안 쓰도록 해봐야지. 그건 좀 위험해. 우리가 보낼 놈들이 진짜 로봇은 아니니까. 제대로 된 놈들이 아니라면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겨 복잡해질 수 있어. 괜히 우리 약점만 잡힐 수도 있고.”

“시발. 그 새끼 회춘약이라도 만들어 놓고 갔으면 내가 쫓아가는 건데.”

“진심이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사실 뭐 우리 머릿속에 든 것 가지고 과거로 가면 식은 죽 먹기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되지 않겠냐?”

“그런 놈이 70년 전으로 돌아가 있어, 형. 우리의 기억 속 팩트들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지금 이 순간 각본대로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을 지도 몰라. 위험하긴 하지만 어쩌면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유일한 수단일 지도 모르겠어.”

석우가 천장을 보며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자, 한 잔 받아라. 석주야, 우린 말야. 시간을 지배한 사람들이다. 돈? 그 따위 장난감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저 한심한 것들이 인간이라는 말종이야. 딱 하나 불멸의 약만이 필요했을 때 오시우 그 놈이 영악하게 우리를 찾아왔던 거고 우린 순진하게 그 놈에게 놀아났던 거지. 오시우가 우리에게 접근한다면 우리는 그걸 기회로 삼아야 해. 그 놈을 이용해서 신의 지위에 올라서야지. 안 그래?”

석우와 석주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며 술을 마셨다. 일이 여의치 않으면 직접 과거로 가서 오시우가 이직하여 벌이려는 일을 미리 알리면 그만이라고 석우는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로 가기 전의 오시우를 제거하면 골치 아픈 일 따윈 모두 사라질 터였다. 관건은 신약에 대한 오시우의 연구 자료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모든 자료를 폐기하고 간 오시우로부터 그것을 입수하기 위해서는 결국 과거의 오시우를 만나야만 했다. 그 약만 있으면 세상을 지배하는 일도 가능할 터였다. 그것은 단순히 자본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지 못할 일을 없게 만드는 힘을 선사할 터였다. 

석우가 테이블 위의 버튼을 누르자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면서 섹시하게 차려 입은 네 명의 여자들이 웃음을 흘리며 들어왔다. 


빈 양주 병이 늘어날수록 취기가 올라와야 했지만 석우는 정신이 오히려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석주는 양쪽의 파트너들과 연신 스킨십을 하며 맘껏 취기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오빠는 술이 센 모양이네?”

오른쪽 아가씨가 새로 들어온 과일 안주를 작은 접시들에 옮겨 담는 동안 왼쪽 아기씨가 석우의 멀쩡한 얼굴이 신기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지은이요.”

“작가야?”

“깔깔깔. 그런 드립은 또 처음 들어보네. 오빠 좀 치는데?”

“본명은 아닐 거 아냐?”

“술집에서 누가 본명을 써요?”

“그럼 본명이 뭔데?”

석우가 정색한 표정으로 지은을 바라보았다. 

“아이, 오빠. 제가 한 잔 드릴게요. 저는 하은이랍니다.”

안주 배분을 마친 하은이 석우 앞의 스트레이트 잔에 위스키를 따르며 엉덩이를 움직여 석우의 몸에 달라붙었다. 석우가 곁눈질로 하은을 힐끗 보고 나서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래서 본명이 뭐냐고?”

석우의 눈이 지은의 눈을 잡아먹을 듯이 압박하자 뭐라 대꾸하지 못한 채 지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이 우리 회장 오빠. 오늘 왜 이러실까?”

하은이 석우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듯 지은에게 살짝 윙크하며 석우에게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하은이, 오빠 안주머니에서 지갑 꺼내와. 얼른.”

하은이 일어나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석우의 수트 상의에서 장지갑을 꺼내 가져와 석우에게 건넸다. 석우는 지갑을 벌려 5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꺼내 하은의 드러난 가슴 위에 꽂았다. 그리고 다시 5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꺼내 지은의 앞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맞은 편의 상황을 석주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 시작했고, 석주 옆의 두 아가씨가 두려움과 부러움이 섞인 듯한 묘한 표정으로 지은의 반응을 살폈다. 

“본명이 뭐라고?”

“저 마음에 안 드시면 아가씨 바꿔달라고 얘기할 게요.”

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석우가 수표 두 장을 더 얹었다. 

“본명이 뭐라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석우의 치켜뜬 눈을 받았다가 이내 피하며 지은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은지요.”

“은지! 아, 난 또 이름에 금칠이라도 한 줄 알았네. 너 니 이름 사랑하는구나, 응? 그래, 사랑 좋지. 사람이 자기 이름에 프라이드가 있어야지.”

석우는 수표 3장을 집어 두 손으로 테이블 위에 톡톡 내려치며 가지런히 한 다음 은지의 가슴에 거칠게 쑤셔넣었다. 

“은지야?”

“네.”

“은지야!”

석우가 스트레이트 잔을 들어 테이블을 꽝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다. 

“네.”

“돈 벌고 싶지?”

“…….”

“대답 안 하네? 돈 벌기 싫어?”

“벌고 싶습니다.”

은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 벌고 싶잖아. 벌고 싶으니까 여기 있는 거잖아. 그렇잖아. 그럼, 돈을 벌겠다는 태도를 가지란 말야! 니 가슴 속의 사연, 자존심, 그런 거 티 내지 말고, 반항하지 말고! 응? 돈을 죽어라 벌겠다는 의지를 보이란 말이다. 니 이름 그 까짓 게 뭔데 내가 여러 번 묻게 하는데? 니가 은지든 금지든 그게 중요해? 중요하냐?”

“아니요.”

“뭐라고? 중요하다고?”

“아니요. 안 중요합니다.”

은지의 두 눈에서 눈물 방울이 뚝 떨어졌다.

“자, 금지야. 신나는 노래 한 곡 해봐라. 100점 나올 때마다 이거 한 장씩 붙는다. 니들도 잘들 불러.”

석우의 말에 나머지 세 아가씨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오빠를 연호했다. 오빠 오빠 오빠! 은지가 티슈로 눈물을 닦고 손거울을 들어 얼굴을 단장하는 동안 하은이 노래를 골랐다. 음악이 연주되자 은지가 환한 표정으로 일어나 정열적으로 몸을 흔들며 빠른 템포의 최신 댄스곡을 열창했다. 석우와 석주, 아가씨들이 모두 일어나 함께 어우러져 현란한 조명 아래에서 광란의 춤을 추었다. 석우와 석주가 하이 파이브를 하며 비열한 웃음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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