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구
“양 계장님?”
면사무소 뒤편에서 석구가 먼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뒤에서 다가온 하 주임이 석구를 불렀다.
“아이구, 깜짝여. 야, 기척이라도 좀 내고 와라. 애 떨어질 뻔 혔잖여?”
“떨어지면 지가 받을라 했쥬.”
“왜 뭔 일 있어?”
“면장님이 찾으시네유.”
“그려? 알았어.”
석구가 자리를 벗어나려다 말고 하 주임에게 꿀밤을 먹였다.
“아, 왜유?”
“내가 그냥 계장이라고 부르랬지? 왜 또 양계장이라고 하는 겨? 일부러 그러는 거지 너?”
“아, 잘못했슈. 깜빡허네유.”
“또 한 번만 글케 부르면 니 모가지 닭 모가지 되는 겨 그 날. 알긋냐?”
“아, 알았슈. 그라믄 사과의 의미루다가 오늘 퇴근허고 닭도리탕에 소주 한 잔 워때유?”
“야, 술 좀 그만 마시구 저축 좀 혀 임마. 너도 장개 가서 애새끼 낳고 살아야 할 거 아녀?”
“누가 들으믄 결혼한지 한 20년 된 줄 알겄슈. 일 없어유. 지는 그냥 혼자가 편해유.”
“으이구, 이 화상아. 혼자 산다고 다 편한 게 아니…….”
석구는 말꼬리를 흐렸다. 부쩍 ‘그냥 혼자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어, 들어와.”
“부르셨다구유?”
“그려. 저기 미스 리, 우리 커피 두 잔만 부탁혀. 나는 설탕 둘, 프림 둘. 앙 계장은 설탕만 둘. 양 계장, 문 닫구 들와.”
눈에 띄게 올라간 면장의 넓은 이마가 기름기로 반들거렸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한 번 갈기고 나서 그만 좀 받아 처먹구 다니라고 쏘아붙이면 속이 다 시원하겄다 생각하며 석구는 소파에 앉았다.
“신혼 생활은 좀 워뗘? 깨가 쏟아져?”
면장이 의자에서 일어나 석구의 건너편 소파로 다가오며 물었다. 방 두 칸짜리 집구석에서 귀 밝은 엄니허고 사는 디 깨는 니미. 장개만 들면 맨날 딸처럼 업고 당길라니까 지발 좀 어디 가서 남의 색시라도 훔쳐 오라고 닦달하던 어머니는 막상 석구가 짝을 찾아오자 태도가 돌변했다. 어디에 그런 고약한 심술보가 감춰져 있었던 건지 석구는 휴일마다 아내를 들들 볶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고역이었다. 밖에 나가서 힘들게 일하구 모처럼 쉬는 남편헌티 반찬이 이게 뭐냐, 집구석에 먼지는 왜 이렇게 많은 거냐, 내가 너헌티 농사를 지으라구 허냐 친정 살림이라도 쌔벼 오라 하냐, 등 따시구 배 부릉게 시애미가 시애미로 보이지도 않는 거냐, 내가 확 노망이라도 나믄 좋겄지 니들 둘이 알콩달콩 살게, 자식새끼 잘 키워 봐야 다 뭔 소용여, 늙으믄 죽어야는디 죽지 못혀서 눈칫밥 묵고 살라니께 서럽다 서러워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가슴을 두드리는 엄니의 레퍼토리에 석구는 사는 게 죽을 맛이었다. 출근하는 날이면 홀로 남겨진 아내가 얼마나 고생일까 하는 생각에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을 지경이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빨리 손주 안 내놓고 뭐하냐는 트집에 님을 봐야 뽕도 따고 별도 따지 이렇게 맴이 불편헌디 애 만들 생각이 나겄슈, 애가 들어선들 그 애가 제대로 나오겄슈, 라고 참다 참다 내뱉고 나온 지라 속 시끄럽기가 명절 대목 시장통 같았다. 석구는 말수 없이 인자하기만 하던 어머니의 돌변이 이해되지 않았다.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독수공방 해온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한풀이 상대를 며느리로 삼아 버린 그 비뚤어진 심통이 절망스러웠다. 참고 지내는 것이 더는 능사가 아니었다. 석구는 홍식이네 할머니와 상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뭔 생각을 그리 혀?”
“예? 아뉴, 암 것도.”
“암 것도 아니긴. 고민이 얼굴에 써 있구만.”
똑똑. 미스 리가 노크를 하고 커피 두 잔을 내려놓고 나갔다.
“우리 사촌 동상 형식이 있잖여? 갸가 그러는디 택시 기사 죽인 놈 잡기 힘들 것 같댜. 부랄에 땀 차게 뛰댕기는디 아무래도 뜨내기헌티 당한 모양이더라구. 말세여 말세. 그런 푼돈 땜시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기 말이 되능가 말여. 우리 박통이 이 똥통 같은 나라 잘 살게 맹길어 보겄다구 밤낮으로 애쓰시는 이런 때 그런 일이 있능기 이것 참 나랏밥 먹는 처지로 불충스럽다 이 말여. 안 그려?”
능구렁이 같은 면장이 손바닥으로 이마에 맺힌 땀 방울을 훔쳤다가 커피를 홀짝거렸다 하면서 예의 그 장황설을 늘어놓았다. 면장이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를 해대기 시작하면 필시 또 돈 받아먹은 값을 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쥐벼룩 같은 자슥. 면장이 이번엔 경찰서 강력반장인 사촌 동생을 들먹이는 것은 빽 하나 없는 너 따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도리 할 수 있는 시절이니 이번에는 부디 피차 에너지 소모하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넘어가자는 으름장 같은 것이었다.
“거 왜 자네도 알지? 우리 국민핵교 14기 선배 권철웅 형님 말이여. 그 양반 회사가 거 뭐시냐, 전산군에서 젤루 큰 건설회사잖여. 지난 번 동창회에서 만났는디 넉넉잡고 한 10년이믄 전산군허구 화덕군, 글고 또 어디냐 그르치 마석군하고 해서 시로 통폐합 될 거라고 하대. 그라믄 이짝 전산면 그 중에서도 여그 전산읍이 개발 중심지가 될 것이 확실하댜. 여그 공단을 조성한 이유가 다 있더라구. 낭중에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산업단지로 확장할 계획이랴. 청와대 쪽에 줄이 있어서 긍가 정보가 아주 빠삭혀. 자기만 믿구 좀 밀어주면 자네하구 나하구 퇴직하믄 여그 지사장하구 부지사장 자리 떡 하니 준다는 구만. 자기는 이미 서울 가서 자리잡을 준비하구 있다구 말여. 나두 뭐 서울 가볼 일이 있었간디? 앞으루 한강 남쪽에 천지개벽이 일어난댜. 그래 가지구 그쪽에 땅 한 쪼가리 사 놨지 뭐. 자기가 팔라고 헐 때까정 묻어두면 열 배 아니 백 배도 가능할 거람서. 거그서 돈 벌어서 이짝 땅 사놓고 이르키 딱 두 탕만 뛰믄 평생 돈 걱정할 일 읍다고 허데 허허허.”
권철웅이라는 작자가 면장에게 자리 하나 만들어 준다는 것은 사실일 지도 몰랐다. 시골 촌구석에서도 나랏밥 먹는 놈들이 방귀깨나 뀌는 시절이었으니. 될 일도 안 되게 하고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힘이 공무원들 간의 커넥션에서 만들어지고 행사되었다. 그 절정이 지난 4월의 대선이었다. 호남에서 일어난 김대중 태풍은 충청도에도 솔찬하게 바람을 몰고 왔다. 면장은 정부에서 내려 보낸 선거 자금으로 면내를 돌며 잔치를 열고 돈봉투를 돌리며 구국의 영웅 박통을 뽑지 않으면 빨갱이 김대중이 김일성에게 남한을 갖다 바칠 거라고 위협했다. 사람들의 뼈에 각인된 전쟁의 공포를 긁어대며 전산면을 충청도에서 박정희 지지율이 가장 높은 선거구로 만드는데 성공한 면장이 두둑한 포상금을 챙겼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선거 자금을 착복하고도 그런 성과를 거둔 데다가 보너스까지 챙겼으니 면장이 꿩 먹고 알 먹는 재미에 더욱 심취할 만도 했다. 하지만 그가 껄끄러운 석구를 챙길 리는 만무했다. 사람을 이용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음흉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면장의 비열한 웃음을 보며, 이래서 사람을 죽이는 것인가, 석구는 생각했다.
“허시고자 하는 말씀이?”
“허허허 이 사람. 그려 쇠뿔도 단숨에 빼불자고. 권 선배가 읍내 삼거리를 개발허고 싶댜. 공단 사람들이 다 거그 버스 정류장 이용하잖여? 거그 싹 밀고 현대식 상가 건물들 올린댜. 병원도 들오고 뭐 술집, 밥집도 다 들오겄제. 우리 전산면 입장에서는 최고의 기회 아니겄어? 이제 이곳도 살만해진다 그 말여. 그라니께 우리가 힘을 합쳐서 팍팍 밀어 드려야지. 동창 좋다는 게 뭐여? 안 그려?”
권철웅은 지역 깡패로 사채업을 통해 세를 불리다가 건설업에 손을 덴 자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악마 같은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였지만, 관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활용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 자로 소문나 있었다. 권철웅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나라가 개발에 나서게 되어 있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쫓겨나는 신세가 될 테니 그럴 바에야 적당한 가격에 지금 팔고 나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면장은 주민들을 설득하고 다닐 터였다. 푼돈을 배분 받은 읍장과 통, 반장들이 면장의 편을 들어줄 것이었고, 사람들이 버텨봐야 경찰들이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용역 깡패들에게 시달리다 삭신만 고장 날 것이 뻔한 일이었다. 반대하고 나선 들 결국 허가는 떨어질 것이었고 석구는 먼 오지로 좌천 당하고 말 것이었다.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석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아내도, 어머니도 청학리를 떠나 연고 없는 타향에서 외롭게 살게 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혼자였으면 시원하게 쌍욕이라도 박고 멀리 떠나 버릴 수 있을 것을. 석구는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약한 놈, 핑계는. 비겁한 놈, 씨발.
“순리대로 하셔야겄쥬.”
석구의 말뜻을 알아들은 면장이 뒤로 한껏 목을 젖히며 한바탕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고는 명절 선물이라면서 소파 옆에 놓여 있었던 금색 보자기를 탁자 위에 올렸다. 석구는 그것만은 극구 사양했다. 힘이 없어서 굴복할 수는 있어도 한패가 되어 앞장설 수는 없었다.
그날 저녁 석구는 하 주임과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대취했다. 듣는 귀가 많아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어서 둘은 열린 입으로 술만 들이부었다. 준수가 맨 뒷좌석에 뻗어 버린 석구를 깨웠을 때 껌뻑껌뻑하던 가로등 전등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가자 퉁퉁 부은 눈의 아내가 석구를 맞이했다. 또 울었구나. 웃으며 살 시간도 없는데 왜 울어야 하는가? 사람을 울게 하는 세상도, 면장도, 어머니도 모두 싫었다.
“뭔 일로 애비 니가 취하도록 술을 다 묵었냐? 집 구석이 즐거워야 일허는 사람도 힘이 나는 벱인디 저 곰 같은 것이 있으니 니가 어째 술이 안 땡기겄냐?”
어머니가 열린 안방에서 나오며 며느리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가 거두며 말했다.
“엄니! 이 사람 눈에서 한 번만 더 눈물 흘리게 허믄 엄니와 내는 끝이요. 그 날 부로 우리 둘이 나가 살라니까 그런 줄 아세유. 아셨슈? 이제 좀 그만허시구 사람 숨 좀 쉬게 냅둬유. 냅두라구유!”
석구의 말에 파랗게 질린 표정의 어머니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여보, 엄니헌티 왜 그래유? 이 이가 많이 취했나 봐유. 아침이면 잘못혔다구 헐 거예유. 엄니, 들어가서 쉬세유.”
아내가 석구의 팔을 잡아 건넌방으로 이끌었다.
“아이구야, 동네 사람들. 내가 서러워서 못 살겄소. 아니다, 아녀. 내가 나가마. 내가 나가. 장개 들었다고 니 놈이 애미를 이리 괄시하니 자식새끼라도 하나 낳으믄 몽둥이라도 들겄구나. 콧구녕도 막히고 귓구녕도 막힌다. 아이구, 내 팔자야. 휴우 휴우 아이고 숨 맥혀. 휴우 휴우.”어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석구는 선 채로 눈을 감았다. 먹고 사는 일이 비굴해서 슬펐고, 슬픔의 대가로도 걷히지 않는 우울의 그림자가 슬펐다. 고통은 날마다 밥처럼 목을 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