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철훈아, 너 왜 그런 짓을 한 거냐?”
“죄송합니다, 이모부.”
철훈의 표정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포자기한 자의 것이었다.
“어쩌려구 오시우를 바이한 거야, 임마? 결과가 어찌될 줄 뻔히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이 회사가 하는 짓, 그건 미친 짓이잖아요.”
“휴우……”
영철은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그렇지가 않아. 세상은 그런 순진한 정의감으로 살면 안 되는 거야. 하아. 애초에 이 회사에 너를 들이는 게 아니었다. 다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식구들 생각은 안 한 거냐?”
“회사가 제 가족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철훈아, 잘 들어라. 네가 이번에 한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회사 문서를 빼돌려 외부에 고발하려다가 발각된 사람들은 모두 과거로 보내졌다.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회사에 이익이 되는 것들을 과거로부터 보내야 했어. 지정된 날짜에 도착하도록 말이야. 과거로 살아서 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핑계는 댈 수 없게 되었잖냐? 현재에 뭔가를 보내는데 실패한 사람의 가족은 모두 제거되었어. 알겠냐? 전부 사고로 위장되어서 말이야.”
“이 악마 같은 새끼들!”
“더 지독한 악마들이 세상을 지배한 지가 언젠데 이 녀석아. 왜 오시우 같은 이상주의자에게 넘어갔단 말이냐? 하아. 이제 23시간 내에 사장에게 기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언제,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보낼 예정인지 작성해야 해. 그리고 꼭 성공해야 네 식구들을 살릴 수 있다. 내가 돌보겠지만 나 역시 감시망을 피할 수 없고, 들키지 않게 숨길 수도 없다. 이미 회사로 끌려온 네 식구들 몸속에 나노 로봇 센서가 다 이식되었다. 네가 사장을 만족시킬 기획서를 만들지 않으면 오늘 당장 네 처자식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어.”
“이모부께서는 제가 어떻게 하시길 원하십니까?”
“가서 오시우를 찾아.”
“예?”
“어떻게든 찾아서 그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내고 기록해서 보내. 내일 날짜로 첫 번째 편지를 보내. 그리고 내용에 반드시 담아. 일주일 단위로 편지가 계속 도착할 것이라고. 우체국을 여러 개 쓰는 것이 좋을 게다. 가서 돈을 벌고 사람들을 써서 부동산과 주식 시장 위주로 오시우를 추적해. 분명 가명으로 활동할 것이니 찾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얼굴을 아니까 돈이 도는 쪽으로 파고들면 분명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저는 시우를 막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다른 시대로 가서 회사 앞으로 값 비싼 유물들을 남기면 안 되겠습니까?”
“그 정도로는 안 될 거야. 알잖냐?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것 따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란 것을. 네가 무엇을 보내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무엇도 하기 힘든 시대를 선택해서 고통 받기를 원할 뿐일 것이고, 네 식구들은 반드시 제거할 거다. 그게 사장이니까. 하지만 오시우를 추적하여 정보를 남기겠다면 받을 수밖에 없을 거다. 네가 네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 뭐든 할 거란 사실을 아니까. 현재 상태의 추적이 원활하지 않으면 결국 오시우를 제거하러 누군가를 보내려 할 거야. 하지만 심복들 중 누구도 가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아무나 보내려 하지도 않겠지. 너의 제안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오시우가 입사하여 무엇을 하려는지 사전에 알 수 있도록 하면 간단할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사장 입장에선 오시우의 최고의 무기를 허공에 날리게 돼. 오시우가 도착한 시기부터 추적해야 하는 이유로 그 약을 제시해. 이 시대까지 살아남으려면 오시우는 반드시 약을 개발할 거야. 나는 처음부터 그 다크웹의 운영자가 오시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 자는 분명 이미 약을 완성한 것이 틀림없어. 반드시 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료들을 확보하고 가지고 있어라. 적당한 시점에 맞춰 샘플을 담은 소포를 보내. 무슨 말인지 알지?”
“흐으음…….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한다. 사람 인생이라는 거 복잡하지만 그럴수록 단순하게 사는 게 정답에 가까워진다.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오래 살면서 깨달은 게 있어. 인생의 진리는 불평등이다. 사장 형제가 가진 로열 패밀리라는 배경이나 오시우의 천재성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냐. 그런 압도적 우월성을 타고 나지 못한 인간이 뭔가를 성취하기에 인생은 너무 짧고 수단은 적다. 그것이 말처럼 노력으로 넘어설 수 있는 벽이 아니라는 걸 너도 잘 알 게다.
오시우가 다크웹에서 그 약을 푼 것도 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뭐라도 기회를 만들어 볼 시간을 선사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 친구는 자신의 선의가 옳다고 믿었기에 그런 일을 했을 거야. 또한 그렇게 믿었기에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겠지. 자신의 천재성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불평등의 벽을 무너뜨리려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야. 너도 동의했기에 동참했겠지. 아이러니컬하지 않니? AI의 도움으로 만든 이 바이 머신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겠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뭐 물론 저항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더는 바위에 계란으로 맞설 수 있는 시대가 아니잖아? 꼼지락거리다가 밟혀서 터져 죽는 게 이 시대의 저항자라는 인간들에게 정해진 뻔한 운명이지. 그건 누구도 어쩌지 못해.”
“그런데 마침 바이 머신이 존재하게 되었으니 방법이 생긴 게 아닙니까?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정말 세상을 뒤엎을 수도 있는 방법이.”
“그래 맞아. 그러니까 아이러니라고 하잖아. 사람들이 누군가 불합리한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으면 세상을 장악한 자들에겐 위협이 되지. 권력자들에게 영웅은 위험한 거야. 그 위험한 영웅을 스스로 불러들여 기회를 선사했으니 사장 형제가 느끼는 분노가 어떨지 충분히 상상된다. 오시우의 영웅성은 사장 형제, 그리고 그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불평등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탁월해. 결국 보통 인간들처럼 늙고 병들어 죽어 먼지가 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존재성을 직면했을 때 그들이 느낀 공포감을 떠올려 봐. 미칠 지경이겠지.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어떤 회사의 어떤 AI도 오시우가 밝혀 낸 육체의 비밀의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했다. 인간적으로 오시우는 충분히 존경스럽다. 부럽기도 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의 성공이 네 인생을 더 보람 있게 해주지도 네 가족을 더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는다는 게 현실이잖아? 그러니 너로 태어나 살아온 이상 너는 너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너의 결핍을 채워서 네 앞에 있는 불평등의 벽을 넘어설 기회로 이번 일을 활용해야지.”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아니, 아냐. 내가 단지 너만을 위해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섭섭하다.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도 전혀 달라질 수 있어. 이해하겠니? 이 이모부도 한 번쯤은 조연에서 벗어나 주연으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냐? 철훈아. 너는 영특하다. 네가 국책연구소에 있을 때 가능성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내가 이 회사 초창기부터 합류해 고생하지도 않았을 거고 굳이 들어오지 않겠다는 너를 설득하지도 않았을 테지. 너야 사장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알았을 테니까 꺼려했던 것이겠지만 결론적으로 선택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너나 나나 그 선택 덕분에 식구들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게 해줬으니. 인간이 참 못 된 게 만족을 모른다는 거야. 너도 나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식구들 행복하니까 그걸로 위안 받고 살면 되는데 그게 안 되잖아? 하나가 안정되면 또 다른 불안정의 문을 스스로 열어젖히는 게 인간이 생겨먹은 꼬라지야. 인간의 마음 안에 자리잡은 그것의 정체가 욕망이든 본능이든 그 문을 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면 열어야지 별 수 있겠냐? 네 앞에는 이제 하나의 문밖에 없어. 하지만 문밖에는 내가 있다. 항상 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젊은 날의 나를 활용해.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정말 알겠냐?”
“예, 이모부.”
“그래.”
철훈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영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를 돌아 철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철훈은 양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고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일…….”
영철이 철훈에게 바짝 다가가 귀에 입을 붙이고 조용히 속삭였다.
“만약에 말이다. 오시우와 손잡고 디그니바이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운다면 그에 맞춰 내가 현재의 너희들을 도울 수 있도록 정보를 남겨라. 최대한 상세히. 내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야. 너희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그대로 존중하겠다. 다만 그럴 경우 리스크는 관리해야지. 모르고 무방비로 당하긴 싫다. 알겠지?”
그 다음 영철은 철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자, 여기 노트북 있다. 기획서 작성되는 대로 불러라. 내려오마.”
“알겠습니다, 이모부.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다, 아냐. 내가 미안할 따름이다.”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노트북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 철훈을 남겨두고 영철은 휙 돌아서서 출입문을 향해 움직였다. 영철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