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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에게 물었다.
사업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뭐예요?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내 대답은 이것이다.
남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은 거요.
남의 마음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어떻게 남의 마음까지 손댈 수 있겠나?
대기업 근무 시절 정해진 출근 시간은 8시 반이었다. 새벽형 인간 상무님 시절 동안은 안 그래도 이른 출근 시간이 30분이나 앞 당겨졌다. 무조건 8시까지 사무실에 출근해 있어야 했다. 당시 종로에 위치한 영어학원 새벽반에 다니던 나는 6시 30분에 시작하는 수업을 반만 듣고 정시 출근시간보다 30분 빠른 상무님 표 출근시간을 8시를 지켜야 했다.
1시간 들여 학원에 가고 30분만 수업 듣고 다시 1시간 들여 사무실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효율의 극치인데 당시에는 그렇게라도 머무르지 않고 소모되지 않고 성장하도록 나를 몰아붙였다. 하루는 상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새벽 영어학원에 다니노라고. 상무님이 일일이 체크하는 게 아니니 원래 출근 시간인 8시 반까지 오면 안 되겠냐고. 수업을 반만 듣는 게 너무 아깝다고. 하지만 직속상관은 생각하고 생각해서 꺼낸 나의 고민을 단칼에 잘라 냈다.
너만 봐줄 수 없어. 상무님이 싫어할 수도 있어. (그럼 나한테 악영향이 올 수도 있잖니.)
그렇게 1년여 아침을 그토록 비효율적으로 보냈다.아침 출근 시간이란 것은 참 묘하다.빨리 감기 2배속이라도 한 듯이 저녁시간의 두 배만큼 빠르게 흐른다. 왜 이리 바쁘고 아침잠은 왜 이리 달콤한지 출근 시간은 왜 이리 밀리고 사람들이 많은지 도대체 귀도 멀쩡한 내가 왜 알람 소리만 안 들리냐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에 수건을 감고 택시에 오르고 추하게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고 채 잠그지 못한 지퍼를 저녁답이 돼서야 알고(추하다 정말)
버스를 타는 게 빠를까 택시를 타는 게 빠를까를 미치도록 고민했다.
그 1분이 뭐라고 그 5분이 뭐라고 그 10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맥심 한 잔 타 마시면 그냥 없어지는 시간)
출근 시간 안에 들어가려고 미친 듯이 뛰고 심장이 터질 듯 달리고 그러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철철 넘치는 (하지만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시 뛴다) 이 웃픈 상황이 당시에는 너무 당연했다.
치열하고
불쌍하고
애처롭다.
그렇게 사수한 출근시간인데 사장이 되고 보니 직원이 1분도 아니고 5분도 아니고 20분도 늦고, 30분도 늦고, 어쩔 때는 40분도 50분도 늦는다.
물론 큰 회사가 아니다. 퇴근 늦게 할 때도 많은데 뭐 그럴 수도 있지.(나 회사 다닐 때는 밤을 새도 8시 반이 되면 칼같이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때의 기억이 미칠 듯이 생각난다.) 하지만 이 상황이 계속되니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출근 시간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긴 한데…
회사 다닐 때는 그렇게 상사 눈치를 봤었다. 분명 나는 일이 끝났는데 상사보다 먼저 가도 되나, 기다렸다 팀장님 퇴근하고 갈까? 상무님은 퇴근하셨나? 일 다 해서 가는 건데 요즘 일 없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사장되고 상사 눈치 안 봐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직원 눈치가 보인다.
먼저 퇴근해도 되나? 사장은 열심히 안 하고 자기만 고생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내가 먼저 퇴근하면 동기부여가 안 되지 않을까? 내가 끝까지 있어야 그도 열심히 하지 않을까? 나 정말 오늘 일 마무리한 건가?
상사 눈치 보다 한 결 더 깊고 어려운 고민이 시작된다.
우리 회사 출근 시간은 일부러 10시로 했다.지옥철에서 직원들이 시달리는 게 싫었다. 워킹맘들은 아이 유치원 버스 태우고 나올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다. 아빠들도 출근길에 아이 초등학교 들려올 수 있다. 밀려오는 아침잠을 넉넉지는 않지만 조금 더 사수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 1시간이 뭐라고 그런데 그 1시간으로 인해 우리 삶의 질은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정한 시간인데 여기에서 더 늦어지면 일한 것도 없는데 밥시간이 된다. 앞 장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오전에 한 거 없이 점심때가 되면 직원은 가뿐하고 개운하겠지만 사장은 이런 기분이 든다.
난 밥 먹을 자격이 없어~. 난 굶어도 싸.
그래서 난 꾀를 내었다. 고민 끝에 비동기식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그 날은 나도 일이 있어 10시를 넘겨야 했다. 돌려서 말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저는 차가 정비 등이 들어와서 10시 15분쯤 도착할 것 같아요. 우리 회사가 그렇게 빡빡한 곳이 아니니 늦으면 언제쯤 도착한다고 서로 알려 주기로 해요.
생각하고 생각한 짜내고 짜낸 아주 완곡하고 미화된 미사여구 가득한
우리 출근시간 좀 지키자~ 늦으면 늦는다고 말이라도 좀 해주겠니~~라는 표현의 일환이었다.
카톡을 보내면서도
혹시 기분 나쁘면 어쩌지? 나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면 어쩌지? (사실 그 의도로 보낸 것이면 서도 괜히~)라는 불안함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흘렀지만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근태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작은 회사지만 사장은 미래 회사의 상을 그린다. 나중에 들어온 인원은 기존 회사의 문화를 그대로 흡수한다. 기존 멤버의 문화와 회사 규칙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근태는 기본이다. 상호 합의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고민은 깊어졌다.
하지만 이내 다음번엔 좋아지겠지~ 한다. 사람은 원래 스트레스를 느끼면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본능이니까. 그러던 중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출장 콘텐츠 및 스케줄을 발표하는 PT 날이다. 멤버들에게 오더를 2주 전에 내렸고 당일이 되었다. 발표 수준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디즈니랜드와 온천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 일본 편의점에서 꼭 먹어야 하는 베스트 음식. 사업과 아무 연광성을 찾을 수 없는 장소와 스토리들.
도쿄 그랜드 투어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지만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는 여행 딱 그 수준이었다.
남의 마음이 정말 내 마음 같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정말 싫은 소리 한마디 해야겠다.’면서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이리 말할지 저리 말할지 혹시나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지 어제 아파서 출근 못했는데 컨디션 안 좋은 사람한테 이래도 되나
오만 생각이 다 떠오르는 날 보며 혹시 내가 착한 상사병에 오염된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었다. 리더가 착한 병에 빠지는 것은 조직에 있어 매우 위험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은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좋은 이미지, 착한 사람, 인기투표 1위 이런 것들.
하지만 리더가 그런 착한 상사병에 걸리면 조직과 구성원들이 병든다.
예전 상사가 그랬다. 자기는 좋은 사람. 정작 자신의 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싫은 소리를 남에게 넘겼다.
좋은 이미지는 자기 것
나쁜 이미지는 남의 것.
하지만 수많은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사람은 모두가 자기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칭찬을 좋아한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 칭찬이 거짓임을 알 때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당신을 좋아해요.”라는 말의 파워는 정작 그것이 가식일지라도 큰 힘을 가진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자신에게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좋다.
예전 왕들이 왜 충신에게 사약을 내렸겠는가? 아마 왕들도 알았을 것이다.
그가 충신이라는 것을. 하지만 충신의 충정 어린 말이 싫은 소리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사람은 그 사람이 싫다. 그것이 옳고 바른 싫은 소리라도 싫다.
그럼 왕들은 왜 그렇게 간신들을 가까이했을까? 왕이라고 몰랐을까. 그가 간신이라는 것을. 하지만 간신의 말을 달콤하고 듣기 좋다. 좋은 소리를 들으면 사람은 그 사람이 좋게 되어 있다. 연구 결과처럼 설령 그것이 진심이 아닐지라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싫은 소리는 자칫 상대의 감정을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손상시킬 수 있다. 그동안 차곡차곡 잘 쌓아온 신뢰의 탑에 금이 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싫은 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전체 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우리가 꼭 지켰으면 하는 가치와 규칙을 함께 정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 회사의 문화를 규정하고 지키고자 하는 바를 잘 보이는 것에 붙여놓고 자연스럽게 그 문구나 이미지에 노출되는 것은 실제 효과가 좋다.
무의식적이지만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주 잠시라도 노인과 관련된 단어에 노출된 사람과 청년에 대한 단어에 노출된 사람은 실제 발걸음의 빠르기에 영향을 받는다. 그들이 자신이 어떤 단어에 노출되었는지 몰랐음에도 말이다. 황혼, 죽음, 노을 등에 노출된 사람보다 열정, 청춘, 도전과 같은 단어에 노출된 사람의 발걸음 속도가 훨씬 빨랐다.
내가 준비해 간 우리의 가치는 아래 세 가지였다.
10시 1분은 10시가 아니다. 그 어떤 작은 일이라도 매 순간 우리는 프로다. 최고의 복리후생은 최고의 동료다. 스스로가 최고의 복리후생이 돼라.
사실 그 날의 프레젠테이션 후의 실망감은 구성원에 대한 실망감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
인프라의 부재
인력풀의 부재
자원의 부재
무엇보다 부재한 내 사장의 리더십을 직면한 순간이었으니까.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하긴 아직 그때는 법인인감증명서 잉크가 채 4개월이 안 되던 시점. 그렇게 리더는 커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소집된 전체 회의에서 나는 이런 나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즉 분명 옳고 좋고 마땅한 상대에 대한 싫은 소리가 아닌 리더인 내가 직면한 내가 잘못한 나에 대한 싫은 소리를 한 것이다.
구성원에게 요청한 것은 우리가 지켰으면 하는 회사의 가치, 우리의 문화. 그래서 모두가 공통으로 약속한 룰이다. 똑같이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싫은 소리 대신 다른 것으로 대체한 것이다.
싫은 소리는 언제나 사람들의 감정을 싫음으로 만든다. 왕이 누가 충신인지 누가 간신인지 다 알면서도 충신은 유배를 보내고 간신에게는 벼슬을 내리는 것처럼 싫은 소리란 것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
싫은 소리가 목 까지 차오르더라도 잠시만 시간을 갖자. 아주 잠시만 그 찰나의 순간을 견딘 후 그 사건의 관점을 나(Self)에서 타인(Other)으로 가져오자. 그리고 그 싫은 소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생각하자.
결국 싫은 소리를 하려던 이유는 그 목적의 달성이지 싫은 소리 자체가 아니다.
싫은 소리는 결국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 그래서 그것의 옳음과 상관없이 원래의 목적이 상실되기 쉽다. 싫은 소리의 궁극적 목적을 생각하고
반드시 그것을 싫지 않은 소리로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싫은 소리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고 서로 감정도 상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구성원 전체 회의 후 우리는 그 날 정해진 세 가지 우리가 가치를 지금까지 아주 잘 지키고 있다. 싫은 소리로 했으면 절대 지켜지지 않았을 것임에 분명하다.
10시 1분은 10시가 아니다. 그 어떤 작은 일이라도 매 순간 우리는 프로다.
최고의 복리후생은 최고의 동료다. 스스로가 최고의 복리후생이 돼라.
여러분의 할까, 말까는 무엇인가요? 그 고민을 댓글로 알려주셔도 좋아요.
선택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의 수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게 선택이겠지요. 다만 다른 사람의 선택을 들여다보면서 나만의 선택을 기준을 찾는데 참고가 되는 것, 그게 선택 작가의 몫이 아닐가 합니다.^^
julie@uniquegood.biz 작가 이메일 주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