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선택해 드립니다, 이은영의 할까 말까 LAB
남편을 처음 만난 건 2008년 5월 18일이다. (물론 내가 기억하는 건 아니다. 맨날 자기는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고 으스댄 남편에게 원고를 쓰다 말고 문자로 물어봤다.) (원고로 썼으니 이제 나도 기억할 게 분명하다.)
종로에서 약속을 잡았는데 하필 폭우가 쏟아졌다. 문자로 실내로 장소를 옮겨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옷에 묻은 빗방울을 털고 머리 매무새를 정돈한 후 소개팅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도착했는데요, 혹시 어디 계세요?
그때였다. 저 멀리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훤칠한 키의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레이톤의 슈트를 입은 딱 봐도 키 180cm를 넘는 훈남이다. 키 큰 남자들에게만 어울린다는 그 검은색 장우산을 들고 있었다. 마치 그 긴 우산이 접이 우산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는 키가 컸다. (원래 나는 키 큰 남자를 좋아했다.)
소개팅남과 통화를 하면서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저 남자가 오늘 소개팅 상대면 얼마나 좋을까?' 자, 여기까지. 보통 이런 상황 후 다음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그 잘생긴 남자 옆 하필 오징어처럼 생긴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제발… 저 남자만 아니게 해 주세요.' 간절한 기도가 무색하게 오늘의 소개팅 상대는 안타깝게도 사람이 아니다. 바로 그 옆 오징어다.
하지만 우리 세상은 예상을 빗나가는 날도 있다. 오징어 대신 키 큰 훈남이 전화기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와 눈을 맞추고 멍하게 전화기를 귀에서 떼어 아래로 내려놨었다. 그렇게 원하던 그가 오늘의 소개팅 상대였다. 그렇게 1년여를 연애하던 중 외국에서 먼저 취직해 일하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은영아, 너 여기로 면접 보러 안 와볼래? 우리 회사에서 영어도 하고 한국말 하는 사람을 구하는데 비행기 티켓이랑 보내 줄 거니까 한 번 도전해 봐.(그는 나를 짝사랑했던 남자 사람 친구였다. 아마 그때 갔으면 그와 결혼을 했을까?)
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외국에서 직업을 얻고 싶었다. 아마도 학생 시절 가고 싶었던 어학연수에 대한 한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의 남자 친구 지금의 남편에게 난 이 사실을 말했고 남편의 반응은 단호했다.
외국 갔는데 기다리고 그런 건 절대 없어. 가면 바로 헤어지는 거야.
그리고 남편은 결혼을 밀어붙였다. (물론 남편의 기억은 나의 것과 다르다. 그는 여전히 그때 자기가 안 구해 줬으면 어디 동남아 남자를 만나 초라하게 살고 있을 거라 예측한다.) 그러던 중 강남의 웨딩박람회에서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계약금 10만 원만 걸면 그보다 훨씬 비싼 콘서트 티켓을 두 장이나 받을 수 있었다.
어차피 이익 이니깐 계약금 걸자. 콘서트 가 보게.
일찍 결혼하고 싶은 남편과 실적에 눈이 먼 웨딩플래너가 협업하면서부터 결혼은 급 추진되었다. 물론 내가 독신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단지 30대 중반을 훌쩍 넘겨 혹은 마흔 살쯤 커리어우먼의 면모를 갖춘 후 할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난 29살 3월에 그 키 훤칠한 남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할까, 말까?
왜 이 고민이 없었겠는가, 매일 목장갑 끼고 현장 일 하는 직장을 벗어나 외국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남편은 승부수를 띄웠다. 외국 가는 대신 자기와 헤어지던가, 당장 결혼하던가. 해외에서 온 면접 기회가 오히려 결혼을 밀어붙인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결혼은 이렇게 둘 중 한 명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추진되지 않는다. 현재 시점의 선택으로 적어도 미래 70여 년의 삶이 그것도 매일매일 영향을 받는 정말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결혼할까, 말까를 고민하며 당시 얻은 결론은 이것이었다. 나중에 결혼하면 이 남자보다 조건 좋은 남자는 만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은 못 만나겠다. 그래서 저돌적인 웨딩플래너와 함께 결혼은 그렇게 추진되었고 이듬해 3월 결혼식을 올렸다.
구글에 검색만 해봐도 결혼할까요 말 까요의 질문은 24만 개에 이른다. 한 번 검색한다고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결혼의 장단점 검색 결과는 거의 54만 개가 있다. 아마 54만 개를 다 읽어봐도 결론이 안 날 것이 분명하다. 아래와 같을 테니까.
안정감 있는 내 편을 만들 수 있다. VS 글쎄. 남편의 뜻이 왜 남의 편이란 말이 있을까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부모가 될 수 있다. VS 글쎄. 나로도 버거운데 정말 아이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결혼을 안 한 사람보다 평균 16년을 더 살 수 있다. VS 오래 살아 뭐하나. 난 짧고 굴게 화려하게 살랜다.
결혼을 안 한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VS 헬스클럽 열심히 다니고 잘 챙겨 먹을 수 있다고!
아플 때 챙겨줄 수 있는 함께 사는 내 식구가 생긴다. VS 이럴 줄 알고 응급실 가까이에 집을 얻었다.
왜 결혼 안 하냐는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VS 자칫 왜 결혼했냐는 잔소리를 들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
편안한 환경에서 비교적 원하면 언제나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VS 더 이상 배우자에게 성적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데이트 장소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VS 잘 생각해봐라, 데이트 장소는 로맨틱하다. 집은 그렇지 않다.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VS 결혼으로 인해 피폐한 정신상태의 사람 여럿 봤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다. VS 그 사람과 살기 싫어지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혼자만의 시간이 줄어드는 건 어쩔 거야?
결혼에 관한 수 십만 개의 결정장애를 다각도로 살펴본 결과 결혼의 결정장애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째, 나에 대한 걱정이다. ‘나 결혼생활 잘할 수 있는 사람일까?’ 혼자 산 기간이 길수록 누군가가 그 외로움을 덮어주길 원하지만 또 다른 사람과 같이 살고 자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 및 아이에 대한 책임 또 시댁 사람의 관계까지 두루 또 결혼으로 인한 여러 관계 및 생활패턴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한다. 결혼으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그 남자의 가족과도 결혼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상대에 대한 걱정이다. 상대에 대한 걱정은 사실 ‘결혼할까, 말까?’가 아닌 ‘헤어질까, 말까?’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다 좋은데 주사가 있는 사람, 다 괜찮은데 폭력성이 있는 남자 친구, 정말 오래 만났는데 이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상대, 결혼 날짜까지 잡았는데 다툼의 빈도와 강도가 거세진 사이, 매서운 시부모님, 최근 알게 된 빚이 있는 남자 친구 등.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여자의 직감이다. 예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범죄 심리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때때로 범죄가 일어날지 자신의 직감이 미리 알려준다고 말이다. 난 그 말을 믿는다. 왜냐하면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현장으로 배치받은 신입시절 일주일에 두세 번 꼴로 마감 근무를 했다. 그래서 마감 조인 날은 새벽 1시가 다 되어 퇴근을 했다. 직장과 집까지의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 12~3분여였기 때문에 늦은 시간이지만
나는 혼자 집까지 걸어갔다. 그렇게 평소 잘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멀리 가로등 아래 서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야구모자를 깊게 쓴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를 지나 코너만 돌면 바로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걸어갈수록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저 앞으로 걸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여자의 직감이다!)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이런 생각은 짙어졌고 결국 나는 그 앞을 지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곧장 몸을 돌려 가볍게 뛰었다. 이렇게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전력 질주로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여고괴담이라도 된 듯 그의 그 모습이 내게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내가 뛰는 속도 또한 빨라졌고 분명 도움을 구하고 싶었지만 ‘살려주세요’와 같은 말소리가 차마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렇게만 외쳤다.
아빠! 아빠! 아빠!
정신없이 뛰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고 마침 한 무더기의 남자들이 그곳에서 내려왔다. 상관없이 나는 무조건 뛰었다. 아빠 빼고 모든 남자가 다 무서웠으니까. 그 남자들 때문인지 더 이상 뒤통수의 인기척 없이 나는 한참을 돌아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엉엉 울며 아빠 앞에서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아빠는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난 줄 몰랐다며 연거푸 미안하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그리고 한참 밖을 도시더니 돌아오셨다. 나는 꼬박 이틀을 출근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감 조를 안 할 수는 없고 이후 애꿎은 차 있는 남자 선배들이 항상 집 앞까지 날 데려다주었다.
나는 왜 그 앞을 지나지 않았던 걸까, 그 이상한 기분은 뭐였을까? 이것이 여자의 직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직감은 옳다. 꼭 이상한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 뒤탈이 난다.
결혼에 있어서는 본인의 직감을 믿어도 좋다. 그것 빼고는 다 좋은 데의 그것이 이혼의 결정적 이유가 되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내가 나도 어찌하지 못하는데 남을 어떻게 고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직감을 믿고 여러 징후들을 절대 놓치지 말자.
연상연하 커플이 흔치 않던 당시 엄마는 가난한 집 장남인 아빠와 결혼을 결심했다. 아빠는 엄마의 호랑이 오빠들에게 매를 맞지 않기 매번 도망을 다녀야 했다 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결혼해서인지 엄마는 언니와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
“딸, 결혼은 꼭 좋아하는 사람과 해야해. 이 사람 말고 더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없겠다 싶은 그런 사람하고. 왜냐하면 살다보면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도 미워 죽겠다 싶은 순간이 와.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는 사람하고 결혼해도 그런 날이 오는데 아닌 사람하고는 오죽 힘들겠니. 그러니까 결혼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하고 해야 하는 거야. 알겠지?”
내가 결혼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나를 점검하고 자신의 직감을 믿으며 상대를 점검한 후 마지막 단계는 바로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자.
가난한 집 장남과 결혼을 결심한 엄마의 충고처럼 정말 좋아 죽겠어서 한 결혼도 반드시 후회되는 날이 온다. 그것의 기간과 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30년 넘게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산 사람인데 어떻게 내 마음에 쏙 들 수만 있겠나.
결국 결혼할까, 말까라는 결정장애 앞에 추리고 추려 최대한 심플하게 내어 놓는 답은 아래와 같다.
나, 정말 결혼 감당해 낼 수 있나? 상대, 정말 나와의 결혼 생활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때는 그리고 당신의 직감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 정말 그 사람 아니면 안 되겠나?
여러분의 할까, 말까는 무엇인가요? 그 고민을 댓글로 알려주셔도 좋아요.
선택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의 수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게 선택이겠지요. 다만 다른 사람의 선택을 들여다보면서 나만의 선택을 기준을 찾는데 참고가 되는 것, 그게 선택 작가의 몫이 아닐가 합니다.^^
julie@uniquegood.biz 작가 이메일 주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