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안 덜컹거리는 진동이 하루의 피로를 더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도시의 불빛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했다. 그때 아기가 내유동 할머니 댁에서 자고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텅 비어 있을 집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도 덩달아 텅 비는 기분이었다. "야식이라도 먹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전화가 한 번 더 걸려왔다. 할머니에게 온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로 아기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현관 앞에서 아빠를 보러 가겠다며 울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거절할 수 없는 연락이었다.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아 내유동으로 향했다.
자주 가던 곳이엇지만 밤에 차를 몰고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낮에는 익숙했던 풍경들이 밤이 되자 낯설게 변해 있었다. 가로등 불빛만 드문드문 박혀 있을 뿐 길은 깜깜하고 한산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잠든 듯 적막함마저 감돌았다. 한참 어둠 속을 달리다 보니, 문득 과거 그분이 버스를 타고 홀로 내유동 집으로 돌아갔을 모습이 떠올랐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버에서 내린 뒤 가파른 언덕길을 혼자 올라갔을 뒷모습. 당시에는 평범한 일상이었을 장면이 이제는 아련한 기억이 되어 나를 덮쳤다. 작은 어깨가 밤의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 길은 언제나 그분에게 고단한 삶의 끝자락이었겠지. 혼자 언덕을 오르던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마음속을 헤집었다.
아기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예전에 찾아봤던 블랙박스 영상을 떠올렸다. 그분이 떠나고 몇 주 뒤였을까. 제정신이 아니었던 그때, 나는 홀린 사람처럼 차 안에서 마지막 운전 영상을 몇 번이고 되돌려 봤다. 그 영상 속에 마지막 음성이라도 담겨 있을까 봐. 그날도 지금처럼 어두운 밤이었고 내유동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차 안에는 아기가 좋아하던 인어공주 OST가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세상에 차 한 대만 존재하는 것처럼 고요하고 적막했다. 지금처럼. 내가 달리는 길을 영상 속 차는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빛 없는 어둠 속을 가르는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유일한 길잡이였다.
그분이 지나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나는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마지막 밤, 그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어둠 속을 통과하고 있었을까. 그분은 어떤 외로움과 싸웠을까. 그 순간 머릿속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을까. 가족과의 하루를 되짚었을까 아니면 다가올 내일을 기대했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길을 달렸을까. 알 수 없는 질문들만 끊임없이 맴돌았다. 답이 없는 질문들. 자동차 안에서 나는 그분의 마지막 감각을 더듬으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