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갈등, 반복
부모님 도움 없이, 우리끼리 해보자고 했었다.
나의 부모님도 그렇게 알고 계셨고, 상견례 자리도 무리 없이 잘 끝났다.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시댁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려는데, 어머님께서 “마음에 드는 액세서리 사라”며 봉투를 건네주셨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집에 돌아와 열어보니, 생각보다 큰 액수가 들어 있었다.
돌려드리자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 사람은 괜찮다고만 했다.
마음이 무거워서, 그 돈은 서랍에 고이 넣어두기만 했다.
몇 달 후, 퇴근하고 돌아온 나에게 그 사람이 묻는다.
“혹시 예단, 예물의 뜻 알아?”
무슨 소리냐고 하니, 몇 달 전 어머니가 나에게 건넨 그 돈이 예단의 일부였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것 없이, 우리 힘으로 결혼하자고 한 거 아니었나.
그랬더니 그 사람도 그땐 그런 뜻인지 모르고 받았는데, 어머니는 그걸 건네며
우리 집에서 어떤 액션이 있기를 몇 달 동안 기다리고 계셨다고 했다.
괜찮다던 사람은, 하루아침에
“몇 달 동안 속 끓였을 엄마 생각하니 속상하고, 우리 집안이 깡그리 무시당한 것 같다”라고 했다.
억울했다.
우리 집이 뭐가 있다고 당신네 집을 무시하겠는가.
당신과 내가 한 결혼인데, 당신이 나와 나눈 말과 약속을 잊고 나에게 따져든다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그 사람은 또다시 아빠 이야기를 꺼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때 그 말들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나 또한 다시 같은 대답을 한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그 사람은 지난 일에 무뎌지기는커녕
생각이 더 또렷해지고 견고해졌는지, 아픈 말들로 나를 찔렀다.
사이를 풀어보려던 말들은 곡해되어 되려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다음 날 출근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머님께 연락드려 오후에 혼자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으로 갔다.
그 돈이 그런 의미인지 몰랐고, 애초에 결혼할 때부터 양가 도움 없이 하기로 한 것이었다.
무시한 게 아니라, 우리 부모님은 내가 말씀드린 그대로만 알고 계셨다.
상견례 자리에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터라 나도 당황스러웠다.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하다고, 아빠의 말실수도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진심을 담아 전해드렸다.
받았던 돈도 돌려드렸다.
돌아보면, 이때 나는 우리의 결혼을 유지해 보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배우자라는 사람은 화만 냈고, 나는 소진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기분이 좋아졌는지 밝은 얼굴로 나를 맞았다.
그제야, 혼자 시댁에 다녀온 내가 그 사람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 사람이 화를 내지 않으면 다행인 하루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