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중심을 봅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만나는 '정당성'
우리 사역의 변치 않는 결심이자 중심은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한 배를 타게 합니다
그 분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의 죽음에 들어가게 하셔서
그들로 그 분의 생명과, 부활의 삶과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삶보다
훨신 나은 삶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소유나 외모로 평가히지 않는 것은
그 같은 결심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일찍이
메시아를 그런식으로 잘 못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분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중심을 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누구든지 메시아와 연합하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고
새롭게 창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 삶이 지나가고
새로운 삶이 싹트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가족관계를 맺으시고
우리 각자를 부르셔서 서로 가족 관계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통해
이 세상을 그 분과 화해시키셨고
죄를 용서하심으로 이 세상이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메시지 성경
스스로 정당성이 있는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고 항상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다
그런 사람은 기도를 드릴 때도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빳빳이 들고서
자신이 했던 일들과 해낼 일들
이루어내고 성취했던 것들을 찬양하고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태도들을 실천한다
그러한 자신감과 당당함의 출처가
사실은 자기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매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엄청난 되돌림이 필요하다 사실.
그러니 스스로의 정당성에 빠져 사는 사람이 구원받기란
낙타가 바눌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어느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당한 근거들
예를 들면 정직함, 순수함, 총명함, 순결함 등등
한 순간에 날라가거나 어떤 계기로
그것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자신이 삼았던 정당성의 기반이 흔들리기에
그 때부터 진짜 자신이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이들은 기회주의적으로 다른 정당성으로
무너져가는 자아의 댐을 구멍들을 막고
또 다른 이들은 허무하게
이 모든 것을, 생 자체를 포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는 자신감이 아니라
어떤 무감각함으로 정당성 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하기에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어떤 지점들을 지나가고 있더라고.
어떤 사람들은 정당성이 지나쳐서 살펴보니
기회주의적으로 살았기에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정당성을 만들어줄
이용대상으로 보이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허무해져버린 인생의 우울증에
앞에 있는 사람까지 전염시켜 버렸고,
어떤 이는 자기도 안 하고
다른 사람도 못하게 만드는 대충주의의 빠졌다는.
나 스스로의 정당성이 무너지는 경험은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고 위선을 자아내기도 한다
매번 넘어시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그러면서도 계속 한가지가 마음 속에서 꿈틀꿈틀 올라왔다
내가 어디서 부터 왔고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위해서 가는지?라는 질문.
그 유명한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주요한 질문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질문이
내 가슴 속에서 녹두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내가 먼지로부터 왔다는 것과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과
그리스도가 나를 새롭게 해주신다는 것과
그가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나를 인정해주신다는 것과
내 스스로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무거운 짐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과
다름 아닌 그 하나님이 나의 모든 평가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이었다
신비한 경험이든 합리적인 추론이든
어디서나 하나님은 앞에도 계시고 안에도 계셔서
나의 어둔함과 두려움과 위선들을
걷어내시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헤쳐가신다
조금씩 정말 조금씩
변화되는 마음의 모양이
하루 한 모퉁이씩 지어져가는
조그만 집과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점점 인정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함으로
이제 나는 새것이 되었고
날마다 그렇게 되어야 겠다는 것.
그러니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정당성을 가지고
당당함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천천히
사람들과 만나고
하나님과 만나려고.
이제 우리는 중심을 봅니다
이제 중심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