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부여 여행을 다녀와서

2019 가족여행

by 낭만민네이션


혼자 여러곳을 다녔다.


교회 수련회며 친구들하고 엠티며, 출장이며 세상의 여러곳, 한국의 여러곳을 다녔지만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작은 집에서 꽉막히 경치만 보셨던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그래서 시간을 언제 낼까 하다가 2년전부터 아버지께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시던 '공주와 부여'를 다녀오기로 했다. 오랜만에 가는 것이기도 하고 오래 걸리기도 해서 좋은 차를 빌려서 아침 6시부터 출발했다. 전날 부터 어머니는 다음날 소풍가는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이것저것 준비하시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연신 친구들에게 내일 있을 일들을 자랑하시기 시작했다. 짠한게~ 이게 머라고 이렇게 좋아하시나 했다.


인간이 태어나서 부모님의 은혜와 헌신으로 성인으로 자라서 부모님 없이도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많은 이들이 그러한 자신의 시작을 잃어 버리는 듯하다. 나도 아마 일찍 결혼을 했다면 그랬겠지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부모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는 어떤 인류의 기원을 본다. 나름대로 사명감과 문화인류학적인 가족애의 진수를 맛보면서 공주와 부여로~ 백제문화의 향기를 맡으로 출발했다.




1. 무령왕릉


요즘들어 핫해진 무령왕릉. 박찬호 선수가 공주중학교 당시 뒷산넘어서 놀러 다녔다던 무령왕릉에 9시도 못되어서 도착했다. 따뜻한 따로 국밥을 한 그릇 들이키고 나니 9시 개장시간이 되었다. 아침에 꽤 힘들게 출발을 했지만 그래도 9시 개장 시간에 가니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1시간에 1번 정도 해설을 해주는데 운좋게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무령왕릉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다. 송산리 고분군이 공식 명칭인데 송시열과 그의 후손들의 땅이라고 해서 아마도 소송을 했거나 소유권을 주장해서 이름이 이렇게 된 것 같다. 무령왕릉은 총 7개인데 6번째 무령왕릉의 내실이 발견되기 전까지 일본사람들이 도굴을 해 갔다고 한다. 60대를 지나서 능 주변의 관계수로를 정리하다가 6번째 묘가 깊이 묻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결국은 무령왕릉이 깊숙히 존재하는 것을 발견해 냈다고 한다. 부모님께 들어보니 70년대 매우 큰 일이었다고 한다. 최근들어서 방송을 타면서 우리가 나오는 시기에는 거의 인산인해로 못들어갈 지경이었다.



공주에 도착해서 아침식사로 따로 국밥을 먹었다.
총 7개 중에 6호가 무령왕릉이다.
송준기가 속한 가문의 조상들이 묻힌 산이라 하여 '송산'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송산리 고분이 되었다. 아무래도 '송산리 고분'이라는 이름에 엄청 정치적 힘을 쓴 듯하다.
백제문화가 일본에 전해 준 다양한 고분의 스타일이 있었다.
한성기와 사비기, 그리고 웅진기까지 백제의 찬란한 시대를 돌아보았다.
무령왕릉 내부를 재현해 놓았다. 실제로 무령왕릉 내부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박테리아가 서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형으로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7개 중에 모두 일제시대에 도굴당하고 깊숙히 묻혀 있던 무령왕릉만 발굴되었다고 한다. 너무 깊어서 있는지도 모르다가 1970년대에 배수로를 파면서 발견했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무령왕릉을 돌아나오면서 인생의 여정이 덧 없음과 욕심보다는 사람을 중요시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의 태양이 석양을 향해 갈 수록 사람의 지혜는 하늘과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무령왕의 기개와 용맹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백제문화권이 문화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징과 기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를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일한 땅의 다른 시간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공시적 위치에서 통시적 관점을 가지기에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콧노래는 계속해서 더 커 나갔다.




2. 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다녀와서 산넘에 바로 국립공주박물관으로 향했다. 백제 문화가 꽃을 피우던 23대~ 의자왕까지의 유물과 왕실의 귀중품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령왕릉을 너무 깊이 있께 들여다 봤던 탓인지 여러 내용들이 겹치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3. 부여 고란사


공주여행을 가뿐하게 마치고 부여로 향했다. 아버지가 어렴풋이 기억하고 계신 고란사를 찾아가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 맛집을 만났다. 떡갈비와 연잎찰밥으로 점심을 즐겁게 마치고 아버지는 소주 한잔까지 한잔 하시고 ‘오늘이 내 생일이다’라고 이야기하셨다. 아들이라서 해야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내가 부모님이 정성스레 해주신 식탁을 맞이했던 것처럼 부모님께 나도 대접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일찍 고생이 많았지만 부모님의 여유와 행복감들이 피부로 전해져서 참 값진 시간이었다.


고란사를 가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걸어서 갈려면 산을 타고 1시간정도 올라가는 길이 있고, 배를 타면 7000원 정도를 지불하고 강으로 건너가는 방법이 있다. 어머니의 무릎이 안 좋은 관계로 우리는 고란사로 가는 배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바람과 함께 한껏 낭만적인 여행을 이어갔다.


고란사 정상에는 의자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했던 백제의 마지막 숨결이 서려 있었다. 낙화암에서 3천궁녀가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 후손들은 그것이 슬픈일인지 기쁜일인지도 모른체 사진찍기 바빴다. 잠시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국가의 흥망성쇠와 백성들의 삶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떤 시점에서 ‘역사’로 만나게 되는 ‘역사의 역사’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4. 미암사 쌀바위


다음 여행지는 사실 대천항에서의 저녁식사였다. 그런데 가는 길에 이정표에 신기하게 ‘세계에서 가장 큰 와불’이라고 적혀져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래서 처음 가보지만 한번 호기심으로 미암사를 찾아가보았다.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불상이 몇백개는 세워져 있었고 이윽고 고개를 올라가자 정말로 엄청나게 큰 불상이 누워 있었다. 옆에는 쌀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유명한 쌀바위가 있었다. 쌀바위 뒤에는 여러가지의 장독대에서 맛있는 장들이 무르익고 있었다.


이상하게 어머니와 나는 전국의 절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신나고 잼있다. 종교라기 보다는 역사로서 지형이 주는 어떤 인사이트 갔다.




5. 무량사


신라시대에 지어졌다가 임지왜란 때 소실되고 다시 조선 중기에 재건된 무량사에 다녀갔다. 부여에서 대천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무량사가 위치한 지점은 풍수리지 상으로도 너무 안정적이고 여유로웠다. 우리가 오후 4시를 넘어서 도착해서 그런지 이미 몇십대의 관광버스가 지나간 후였다. 조금 걸어가보니 경내에 도착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들어가는 사이에 넓은 나무기둥을 팔로 재어보이면서 재료와 건축방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셨다.


국보로 지정된 극란전과 오층보탑을 보면서 경이로운 감탄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반득한 5층보탑 뒤에 은은하게 빛나는 무량사의 극락전은 은은하게 빛나면서도 천년의 신라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것과도 같았다. 물론 백제의 문화 위에 세워진 통일신라의 보물들이 조선에서 재현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 여행을 특성상 통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끊임없는 대화가 단연 돋보이는 장소였다.


어머니의 호기심이 몸으로 표현되고 있따.



산세도 좋지만 정밀한 규격의 건축물로서 극란전과 오층보전도 볼만했다.




6. 대천항


드디어 5시가 넘어서 대천항에 도착했다. 삼천포항에서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대천항도 나름대로 다양한 생선들과 갑각류들이 즐비했다. 특히 대하가 아주 많이 나왔다. 우리 가족은 새우를 그렇게 즐겨하지 않는 편이라서 대하구이보다는 우력과 광어를 샀는데 3만5천원 밖에 하지 않았다. 싱싱하고 살집 많은 광어와 우력이 이 정도의 가격이라니!! 1층에서 구매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여행의 끝자락을 즐겼다.





7. 대천해수욕장


말로만 들었던 대천해수욕장.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가는지 몰랐지만, 역시 소문은 진짜였다. 화 넓혀진 대천해수욕장 위의 하늘과 바닷물결의 흐름들은 낭만을 여기저기에서 자아내고 있었다. 나중에 꼭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오고 싶은 장소였다. 와!! 탄성만 지르면서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우리는 대천해수욕장이 훤희 보이는 타워에 올라가서 아름다운 저녁이 다 흘러가기까지 시간을 보냈다.





물론 서울에 돌아왔을 때는 저녁 12시가 다 되었다. 차도 많이 밀리고 오는 길에 짜증도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추억과 아련한 감정들의 실타래가 남아 있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너 결혼하면 이런것도 없으니깐 지금 이렇게 우리가 좀 누려야 겠다!” 하시지만, 결혼을 해서도 아이들과도 함께 같이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함께 어울리며 웃고 떠들고 바람의 흐름은 느꼈던 공주와 부여의 여행은 아름다운 마무리로 가슴속에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