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Mar 22. 2020

성숙한 사랑과 삼각형 이론

 연애와 결혼에 관한 낭만적인 생각 #2

성숙한 사랑은 과연 가능할까?


0. 들어가기


될 수 있다면 결혼과 연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결혼관, 연애관도 정리하고 앞으로 이루게 될 가정의 모습들도 그려보는 차원에서 끄적이는 중이다. 낮은 관계와 깊은 관계를 고민하면서 내가 정말 부족하고 준비되어야 하는 게 많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글을 쓰기전에 여러가지 사건과 고민과 이야기들을 곱씹어 보면서 더더욱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계속 배우고, 돌이키고, 되돌아보고, 생각해보아도 모자르다는 것을. 오늘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아야 겠다. 이번에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통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Triangular theory of love)은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가 개발한 사랑에 관련된 이론으로 사랑은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는 요소로 구성된다고 주장된다.


https://brunch.co.kr/@minnation/1699


사랑의 삼각형 이론(Triangular theory of love)은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가 개발함.


1. 낭만적 사랑


여유가 있는 사랑이 좋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에 꽃이 피어나게 하니까. 낭만이라는 것은 현실과 이상의 중간 어디쯤에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현실에만 집중하거나 혹은 꿈만 쫓아가서는 낭만이 나올 수가 없다. 원래 희극이라는 것도 처절한 현실에서부터 피어나와야 진정한 희극이 되듯이, 치열한 현장에서부터 영원을 향한 꿈이 있어야만 낭만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러한 낭만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하는 것은 싱그러운 휴양지에서 나른하게 보내는 여름휴가의 느낌이 아니라 피곤한 회사일을 끝내고 지친몸을 이끌고 나서는 사이에 꽃 한송이 들고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겠다. 혹은, 비오는날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어떻게 하나 했는데, 저 바깥에 어렴풋이 보이는 익숙한 미소가 바로 당신이라는 것이 마음 속에 사뿐히 내려 앉을 때일 것이다. 낭만적 사랑은 정열과 친밀감의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니 서로에 대한 정열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서로의 매력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가꾸어 가는 것도 필요하고 함께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우리'가 있다는 것을 재잘재잘대는 친밀함도 필요하겠다.


비오는 어느 오후 당신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창밖에 드리운 낭만.


2. 우애적 사랑


그런 사람이 있다. 몇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다양한 주제를 말해도 지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어떤 이야기라도 다 꺼내놓고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수긍하고. 손을 잡고 있지 않아도 굳이 포옹을 하지 않아도 한 없는 사랑이 흘러 넘치는 관계. 이런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의 5가지 언어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나 상대방에 대한 헌신이 제 1의 사랑의 언어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상대방에서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그 사람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시간, 이렇게나 힘든 것들을 버텨주고 이해해주고 있었구나!'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사람에 대해서 그 만큼의 헌신과 배려와 이해를 해 주겠다고 다짐하는 시간들이 많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마음을 열고 나 자신을 떼어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넣어주고, 그 사람의 행동 하나, 말하나를 가슴 깊숙히 담아서 내일을 위한 희망의 속삼임으로 간직하는 그런 관계이다. 시간이 늦어서 급하게 뛰어 들어와서 커피숍 문을 열었는데 아주 여유롭게 앉아서 자기의 시간, 자신의 책을 읽으면서 "아 어서와~ 오는 길에 무슨 일 없었어? 이렇게 뛰어오지 않아도 괜찮은데~"라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마음이 한 없이 깊어지는 그런 관계 말이다. 힘들 때 아무말 없이 내 옆에 있어주고, 고민이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사람의 옆모습을 잠시 볼 때, 영원의 커튼이 이 세상의 어떤 바람이라도 다 막아주는 듯한 인상을 받을 것이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함께 있음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그런 사람 '우애적 사랑'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만으로 지속이 될까?


우애적 사랑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삶을 충분히 살 수 있다. 간혹, 친구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게 될 것이다.


3. 얼빠진 사랑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 육체가 매력의 최우선순위로 올라가 있는 사회에서는 상대방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것은 '몸'이다. 이성에 대해서 호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상대방에 대한 몸, 그것도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분이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유형이면 급속도로 호감과 매력을 느끼게 된다. 열정적인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난 당신 여기가 너무 멋있어~와 정말 모델인데? 연예인 아니야?"  이런 이야기들이 허공에 난무하고 점점 서로에 몸에 도취되어서 나누는 사랑은 급류를 타고 수 많은 단계를 건너 뛰어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줄 것처럼 알라딘의 양탄자를 타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짧으면 6개월 길면 거의 3년 안에 도취된 사랑으로서 정열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사용하고 모든 것을 다 줄 것 같았던 그 사랑도 결국은 시들시들해져 버리고, 또 다시 자신의 취향과 매력을 찾아서 떠나는 것이 허다해진다. 젊을 때는 여러 사람을 만나본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불륜이 되거나 혹은 이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다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도덕관점이 많이 작용되는 것 같다만.) 사랑의 삼각형에서도 보면 도취된 사랑은 헌신적인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곧 공허한 시간, 현자타임이 도래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들이는 시간과 아름다움이 자신에게만 친밀감의 유혹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져 진다면. 얼빠진 사랑은 그래서 매우 급박하고 열정적이고 육체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고, 후회가 많아지는 경우도 많다.


언제나 함께 붙어 있을 수 많은 없다. 그래서 얼빠진 사랑은 계속해서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어진다.


4. 성숙한 사랑


사랑의 삼각형을 다시 이야기하면 에로스, 필로스, 아가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면 누구나 다양한 종류의 사랑의 스타일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스타일이 어떤 사람을 만나면 더 발달되고, 어떤 시련을 겪으면 더 닳아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한번 성숙한 사랑을 생각해 보자. 서로에 대해서 적절한 거리감이 느껴지면서도 헌신을 하면서 배려해주고, 육체적인 관계에서의 매력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오직 저 사람이 아니면 내 마음과 몸과 정신을 공유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느낌과 실제의 삶이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60세가 넘어서도 서로 손을 잡고서 낭만적인 걸음을 걷게 되지 않을까? 적절한 정열과 서로에 대한 헌신과 깊은 친밀감을 누리는 관계. 말그대로 마르틴 부버가 이야기하는 '나와 너'의 관계로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기꺼이 초대되어서 서로의 심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관계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성숙한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과 성숙한 사랑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과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과 이상적인 이야기는 그만하라는 이야기들이 우리 속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답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목표를 잡고 끊임없이 노력해보는 것이겠다.


고갱의 '심연의 가장자리'라는 작품. 우리는 상대방의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초대받는 친구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인생에 묻혀서 무게가 깊어지면 나이가 든다. 나이가 든 만큼 묵을 배우고, 다른 사람이 점점 내게는 완전한 신비라는 것을 깨닫는 것 만큼,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아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니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내가 모른다는 것을 느끼는 만큼, 내가 잡고 있는 당신의 손이 매번 사라지는 미래라는 것과 우리가 뜨겁게 포옹하는 시간이 오직 전 우주에서, 온 역사에서 딱 한 번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 만큼, 성숙한 사랑은 도래할 것이다.


성숙한 인간에게서 성숙한 사랑이 시작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그림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는 경험해 보았다는 것이 아닐까?


0. 나오기


성숙한 사랑에서 아이들이 자라간다. 언젠가 프로이트와 라캉의 '욕망'이론을 통한 페미니즘 비판에 대해서 프랑스의 경계에선 페미니스트 줄리아크리스테바는 말한 적이 있다. "당신들 아기 낳아봤어?" 사랑을 욕망으로 치환해버린 사람들에게 크리스테바는 우리에게 '생명'이 주는 삶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이들에 대해서 부모는 남자나 여자나 할 것없이 계속해서 가장자리로 밀려 나오고 자신들의 생명을 자신의 인생에, 역사의 중심에 세워 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서히 부모님과 떨어져서(아브젝시옹) 우리의 인생의 중심으로 걸어오게 되었고, 시간과 함께 부모님은 역사의 가장자리로 밀려나서 점점 늙어간다. 오늘날 우리가 꿈꾸는 사랑은 많은 부분 '생명'이 빠져 있는 체로 '우리 자신이 중심에 서 있을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 보니 그 중심성을 방해하는 상대방이나 상대방의 부모님이나 태어나는 생명들에 대해서 냉소적이거나 거리를 두기에 바빴던 것은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결혼해서 아이들 키우면서 육아의 부담에서 아주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야! 너도 결혼해봐~너도 애 낳아봐~으이구!" 라고 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런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간혹 성숙한 사랑을 하는 선배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애 낳아봐 정말 너무너무 신비로워. 그리고 아이들이 정말 너무나 기쁨이 된다니까. 우리 부부도 더 성숙해지는 것 같고 말이야~ 그러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람부터 만나봐!" 현실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형태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는 모습들을 본다.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함께 꿈꾸고 함께 돌아보고 함께 만들어가는 '성숙한 사랑'을 기대해 보면서, 오늘도 역시 나부터 잘해야겠다. 성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숙성되는 시간 속에서 사랑의 의미들을 잘 되짚어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점점 성장한면서 중심으로 들어간다. 중심에서는 이제 성숙함이 중요해진다. 역사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이 생명은 성장한다.




덧, 혹시나 기독교인 중에서 '나의 짝'을 아직 못 만난 사람이 있다면 아래 영상을 추천한다. 결론은 하나님이 충분히 인격적이라면 우리가 혼자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다 결정해 놔서 명령에 따르게만 놓아둘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안에서 적절한 선택 하도록 유도하신다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m5ZP_VK5V8Q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