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 디자이너들의 2차 전직
N잡 시대의 막이 오른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요즘의 시대는 한 직장에 평생을 몸 담는다고 생각지도 않고 하나의 직업으로만 인생을 올인하리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직업들이 고개를 들었고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과 1인 미디어 시대, 자체 콘텐츠 개발의 시대가 만연해 있다. 그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다른 방향, 새로운 콘텐츠 개발을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과 자기 사업을 꿈꾼다. 물론 많은 이들이 그러하겠지만 디자이너들은 그 속성상 1차적인 전문성을 지녔기에 자질구레한 일을 조금은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어 더욱더 목마르다.
앞서 이야기였던 디자이너들은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카테고리에도 걸맞은 주제로 디자이너들의 2차 활동들에 대한 이야기도 뜨겁다. 물망에 오른 지 오래되었고 생각하고 고려한지도 오래되었지만 실행하고 정진하기에는 절대적 시간도 능력도 부족한 것이 사실. 하지만 오늘도 디자이너들은 자기 사업을 꿈꾼다.
여러 가지 사회적인 흐름에 맞춰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디자이너들이 더욱더 관심을 두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자신만의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메리트 일 것이다. 또한 자체 콘텐츠는 말 그대로 나 자신으로 이루어진 사업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크다. 그것이 브랜딩일 수도 웹툰일 수도 있고 책일수도 유튜브 혹은 카페 오너이든 어떠한 것이든 그러하다. 디자이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디자인은 지극히 상업미술이며 창작활동이 아니고 디자인의 결정권자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슬프게도 어디에 가서 내가 한 디자인을 숨기고픈 디자이너들이 무수할 것이다. 때때로 내가 했지만 너무나도 조악한 작업들을 보고 지나갈 때면 마음이 아플 지경이다. 하지만 어떤 사업이든 내 사업으로 전향되면 디자이너의 취향, 디자이너의 스타일, 디자이너 스스로의 센스를 발휘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소 희망적이고 이상적인 모양새이긴 하지만 충분히 롤 모델들은 다양하고 많다. 또한 요즘 시대는 작게 혹은 간단하게 시도하고 도전해 볼 수 있는 채널과 영역이 많이 열려있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고 고민해 볼 수 있다.
종종 디자이너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거창한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직장 생활을 고려한다면 그보다는 훨씬 성공적이고 건사한 삶으로 전환된 케이스들. 늘 가능성은 열려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쉽다거나 만만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했고 지금에서조차 큰 결과물을 내지 못하였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직장과 그 다음의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방식을 고민하며 삶의 반경이 많이 넓어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직장이라는 1차적인 삶의 목표가 좀 더 넓고 깊게 새롭고 다양한 목표로 변화하면서 인생은 좀 더 능동적으로 변화하였다.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 속에서 자라나면서 굉장히 수동적인 모습으로 성장했다. 주어진 일과 성과는 열심히 내려하고 성실하지만 무엇인가를 스스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고 게을렀다. 하지만 N잡 시대와 자체 콘텐츠 세대를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오히려 이전에 꿈꾸었던 개인적인 예술과 철학에 대한 작은 신념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러한 계기를 많이 독려하게 해 주었던 것은 이전 직장동료였는데 그분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함께 성장하는 것을 가장 독려하는 사람이었다. 보통의 사람, 지극히 이기적인(여기서 이기적이다는 것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그저 혼자 열심히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저 겉치레만 할 뿐일 테지만 그분은 그 관계에서 연대를 찾으려고 했었다. 덕분에 나도 동화될 수 있었고,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도 고민해보고 시도해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그런 연대가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기 계발과 2차 창작활동은 디자이너가 간절히 원하면서도 잘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도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완성도를 고려하다 보니 엉뚱한 완벽주의자가 되어 아예 시작조차 못하는 이유도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하나 제작하려 해도 이것저것 따지고 하다 보면 지나치게 에너지 소비가 들어서 꾸준히 이어갈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완전한 콘텐츠들만이 성공하는 시대가 분명히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작업에 있어서 결벽하게 진행하려고 하면 스스로 지쳐버린다. 즐길 수 있는 범위에 노력을 투자하는 정도가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