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 어떤 공부를 해야할까
디자인학부를 다니면서 교양을 제외하고 책을 들고 다닌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도 디자인 수업에 교과서적인 책은 필요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교육 실정을 고려하여 비슷한 주입식 교육이었긴 하겠지만 확실히 좀 더 자유롭고 흥미로웠다. 기본적이게도 수업 와중에 전시를 자주 참관할 수 있었고 주제 혹은 내용도 무척이나 난해한 듯 흥미로우며, 아무래도 예술적인 단면을 놓치지 않아야 했기에 회화적인 수업을 경험할 수 있는 수업도 많았다. 하지만 18년 인생을 한국교육에 길들여진 내게 그러한 수업들과 교육은 즐거운 한편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다. 무언가를 외우고 반복하고 듣기만 하던 교육에 익숙했던 내게 참여하고 능동적이게 접근하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고 수월하지 않았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대한민국 디자인학부에 진학한 내가 좀 더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들이 무엇이었을지 나름대로 고민하는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무척이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 아닐까 자주 생각한다.
나는 디자인 공부에 대해 오히려 정석적으로 다가갔고 그 부분이 꽤 괜찮았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나는 다양한 디자인 서적을 많이 읽어보려고 했다. 디자인 서적은 많지는 않지만 있는 경우 매우 심화적이며 깊이가 좋은 경우가 많다. 타이포그래피, 일본/네덜란드 브랜드 서적 등 그때에 읽었던 서적들은 내게 좋은 양분이 되어 디자인을 할때 기반이 되고 모티브가 되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그동안 디자인 서적을 멀리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냥 읽고 소멸되는 것 같아도 확실히 책으로 익히는 정보들과 이야기들은 스스로를 디자이너로서 좀 더 진취적이게 하고 고양되게 만들어 자신감있게 만들어 준다. 그것은 다만 정보전달 뿐 아니라 좀더 의미있고 긍정적인 활동이었다.
디자이너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그들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 칭구는 대학생 시절 트렌드 수첩을 만들어 그때그때 칼럼이나 재미있는 정보들을 오려 붙이고 적었다고 한다. 그것은 디자이너로서 동향을 파악하게 하고 흥미와 재미를 지속시킬 수 있는 활동이었다. 또 디자인 대학을 나온 친구들이라면 익숙하겠지만 그때 당시 그림 일기라는 과제가 흔히 존재하였다. 그것은 하루하루의 일상이나 기분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과제였는데 나름대로 다양성을 추구하게하고 생각을 이미지로 트레이닝 한다는 점에서 괜찮은 활동이었던 것 같다.
뇌가 젊었던 그 시절보다 오히려 지금 이 시간들에 그러한 활동들이 더욱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만큼 지금 유지시키기에 어려운 일들이기도 하다고 여긴다. 회사에 익숙해지다보면 업무도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더 이상 디자이너는 발전하지 않는다. 연륜이나 경험은 쌓이겠지만 그것이 디자이너적인 능력으로 직결되거나 당연히 오르는 수확물이나 순식간에 얻어지는 성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