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arecord Sep 15. 2019

디자이너일기_디자이너, 어떻게 회의할까

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 디자이너, 어떻게 회의할까


 디자이너는 어떻게 회의할까. 디자이너가 아니라도 모든 직장인은 회의가 싫다. 의미 있고 생산적인 회의도 많지만 보통 회사 내에서 이루어지는 회의는 고리타분하고 원론적이며 그때그때의 심드렁한 보고 수준의 회의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회의가 대다수라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회의를 통해 부서 간의 잡음을 줄이고, 업무를 명확히 분담하며, 목적을 다지고, 서로를 의식하는 행위들은 분명 회사생활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다. 


 보통 타 부서가 크게 업무가 주어질 일이 없는데 미팅을 잡는다면 디자인에 대한 디자이너의 견해가 궁금한 경우가 많다. 전문성을 가진 것을 서로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그러한 견해 요청에 당황해서는 안된다. 내 할 일도 바빠 죽겠는데 뭐 이런 것까지 물어가 아니라 적어도 회사에 디자인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적절히 선을 넘는 수준의 요구가 아닌 자문은 디자이너 업무의 일환인 것이다. 

 디자이너는 그러한 미적 견해에 있어서 늘 완전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무 생각이 없는 경우도 많다. (내 경우의 한정일 수도 있지만..) 뭐 당장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그저 의욕적이지 않은 성향일 수도 있고 수년간 능동적인 인재를 길러낸 환경 탓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러한 상황들은 피할 수 없고 기왕이면 센스 있게 대처해야 향후 디자이너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답은 무엇이고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현명한 대처는 어떻게 될까.

 연차가 쌓이고 업무에 지는 책임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전에 그러한 상황이었을 때 사수님들의 처사를 곱씹으며 확실히 한 팀의 헤드를 도맡은 그들의 처세술과 훌륭한 연륜에 새삼 감탄도 하게 되었다.


 사실 회사에서 자문하는 일들은 단순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디자인이 이곳(공간/제품/상황)에 적절한지 더 나은 방향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물어올 때 여기에 아 나는 이런 스타일을 선호해요는 정답이 아니다. 보통 이러한 상황에 적용되는 디자인은 어떤 형식인지 나열하고 더 나은 방향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할 주 알아야 한다. 단적인 예시로 컬러감에 대한 의견도 단순히 여기에 이 컬러가 어울려요처럼 추상적인 답변이 아니라 어떠한 이유와 배경지식으로 이러하다가 설득력 있고 설명하기도 편하다. 기왕이면 업계 동향이나 레퍼런스를 평소에 숙지하고 있다면 그러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센스 있게 답변할 수 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곳에 가서 좋은 이미지나 화면들을 평소에 즐기는 일이 디자이너에게 얼마나 큰 양분인지 느끼게 된다.


 디자인 부서와 타 부서가 함께 협업과 지원을 위한 회의도 있지만 디자이너들 팀 내에서도 물론 회의가 다양하다. 사실 눈에 보이는 의견이 많이 필요한 부서이다 보니 디자이너 간의 서로의 견해가 늘 필요하고 작업에 있어서 미리 앞선 시선이 필요하다. 업무에 대한 경험이 쌓이다 보면 해도 되지 않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굳이 이미지를 제작해 놓아보지 않아도 실패할 안들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어떤 일이든 늘 마감기한은 빠듯하다. 언제고 넉넉한 작업을 해본 적이 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 그러다 보니 이리저리 재고 시안을 재차 검토해볼 시간은 늘 부족하다. 때문에 가장 효율적이고 앞선 시각으로 좋은 디자인을 단번에 빼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작업에 들어가기 전 컨셉과 구성에 대한 명확한 확신을 가지고 돌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제품의 구성과 퀄리티, 다양한 각도의 리서치, 디자인에 들어갈 요소들과 디테일한 스타일에 대한 세밀한 확정을 먼저 나누고 작업에 착수에 한 번에 처리해야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나머지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수정해야겠지만 처음부터 밑도 끝도 없이 작업을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세밀함에 대한 회의들을 거쳐야 확신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할 수 있고 이후 타 부서나 윗선에서 의문이나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말이 단단해진다. 


 디자이너와 회의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디자이너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커뮤니케이션이 무척이나 중요한 포지션이고 그 와중에도 꼿꼿이 자신만의 의견을 피력하고 유연하며 단단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이다. 이게 무슨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인가 싶지만 어떤 일이든 양면성과 균형, 조화가 참 중요함을 매번 느끼고 산다.



 

이전 10화 디자이너 일기 _사수의 필요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