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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record Jul 30. 2023

미아가, 미아에게

미아레코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기까지



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에 대한 글을 들어가기에 앞서 미아레코드로서 하고 싶은 말이 몇 가지 있어 포문을 열어봅니다.




제가 미아가 되고 미아레코드라는 필명을 가지고 활동하게 된 데에는 모두가 그렇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나의 코어 메모리에 남게 된 이야기들.




저는 아마도 막 20대 초이자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1년간 휴학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러하였고 휴학을 하면서 어학연수 혹은 교환학생 등 좀 더 글로벌한 스펙을 쌓는 것이 만연한 현상이었죠.


저는 당시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다녀와 본 적이 없는 순수한 머글이었고 특별히 해외에 나가고 싶다는 동기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가 제가 학교에서 과제에만 매달려 있는 동안 열심히 해외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경험을 맛본 것을 보고 영향을 받아 돈을 모아 어학연수를 짧게라도 다녀오기로 합니다.


그래서 휴학에 돌입하자마자 인턴 활동으로 한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디자이너로 광고회사에 취업해 블로그나 기타 기업들의 디자인 관리를 해주는 일은 재미있었고, 소심한 저의 모습에 처음엔 달갑지(? 않아하셨던 무섭게 생긴 사장님도 날이 갈수록 들려오는 주변 평판에 저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게 되셨죠.


그러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엄마가 네가 인턴 해서 버는 돈이 어차피 얼마 되지 않을 터이니 내가 조금 보태줄 테니 차라리 빨리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저는 급하게 하던 일을 멈추고 어학연수를 가게 됩니다.


몇 달 일하지 않은 곳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아쉬워했고 또 제가 해외를 나가는 일에 굉장히 부러워들 하셨죠. 저도 막 물오른 일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번 돈으로 가는 일이 아니라 일단 금전적인 부담이 꽤나 컸고, 당시 학생에게는 상상키 어려운 금액대의 어학연수 비용을 내가며 처음으로 멀리 해외로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됩니다. 아무런 정보도, 함께하는 친구나 지인도 없이요. 준비마저 엉망으로 어학연수가 시작됩니다.


그 당시 저의 어학연수를 담당해 주시던 컨설턴트 분이 열심히 가이드를 해주셨지만 당시 저는 조그마한 대학가 원룸에 오빠와 단둘이 살고 있었고 그런 여러 가지 정보나 준비물등을 구매할 형편이나 마음의 여유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최대한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어학연수 루트인 필리핀 1개월, 벤쿠버 2개월 하여 총 3개월 정도 되는 짧은 체류시간을 목적으로 급하게 필리핀 잉글리쉬 스쿨(?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저는 미아가 됩니다. 이름이 미아가 됐냐구요? 아뇨 그냥 길을 잃어서 미아가 됩니다. 원래 지정되어 있던 레벨의 스쿨이 아닌 엉뚱한 코리아 잉글리쉬 스쿨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것을 한 티쳐가 발견하여 무사히 차로 데리고 와주십니다. 덕분에 국제 미아가 되진 않았고, 저는 그곳에서 미아라는 별명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처음 해외에서 쓰는 이름이 미아가 되게 됩니다.






미아.


참으로 흔한 이름인 것 같은데 언어학적으로 보았을 때 미아는 음률이 귀여워서 많은 외국인들이, 그리고 한국인들이 사랑스러워하는 네이밍입니다. 당장에 미아라는 영어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천지삐깔입니다. 그래서 한 번은 좀 더 특색 있는 이름으로 바꾸어야 하는 걸까 했지만 원래 이름이라는 게 한번 담당되면 바꾸기가 쉽지가 않죠. 저는 그냥 미아로 살아가기로 합니다.


한국에서도 미아 찾기라는 말이 있듯이 미아라는 말은 미국에서도 정말로 그 미아를 뜻합니다. 실종된 아이라는 뜻의 Missing Children, 우리말로 풀어보면 결국 미아가 됩니다.


네. 저는 해외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리고 어떤 무리 속에서도 항상 미아처럼 사람들과 벽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하지 못한 말을 글로 적었어요. 사실은 저에게 하고 싶은 말, 궁금한 이야기들을 스스로 묻고 답하곤 했답니다.




제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인물인 고흐가 있죠. 저는 어릴 적부터 고흐의 그림이 좋으면서도 그의 생애가 너무 싫었습니다. 너무 비참하고 너무 슬프고. 그가 죽고 나서야 그의 명예와 인간적인 모습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유명해졌다는 사실이 너무 기만적이라 외면하고만 싶었죠.


하지만 결국 그런 그의 모습마저도 저의 영감이 됩니다. 항상 테오에게 편지를 쓰는 그의 마음처럼 저는 미아에게 편지를 썼어요. 멀리 저 멀리 당장 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나의 분신이라 생각하며 편지 혹은 일기를 쓰게 됩니다.


그것이 지금의 브런치북이 되고 미아레코드라는 블로그가 됩니다.





저는 항상 그림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저에게 글 쓰는 일도 그림 그리는 일도 고통스럽지만 너무나도 즐겁고 그 고통조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성취감을 내어주거든요.


때문에 아마 저는 죽는 날까지 글도 그림도 손에서 놓지 못하겠죠. 어떤 방식으로든. 공부하고 알고자 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건 어쩌면 저를 더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저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힘겹게 해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그것은 모두 저 스스로를 위한 노력들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스스로를 얼마나 건강하게 사랑하는 지를 알아요. 후회는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미련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 같아요.


온전히 이해한다고 하지 않는 것은, 세상이 늘 그렇듯 제가 이해하는 척하면 그보다 더한 시련을 주더라구요. 그래서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건 그나마 저 자신정도. 저 자신조차 제 스스로의 모습을 보려면 우리는 거울이 필요하고, 관계가 필요하죠.



저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라는 브런치 북은 제가 한 회사를 3년 이상 다니면서 디자이너로서 그간 겪었던 일들을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지며 적었던 기록이에요. 타임라인으로는 2017-2020년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ps.



If you hear a voice within you say ‘you cannot paint’, then by all means paint,and that voice will be silenced



만약, 너는 그림을 그릴 능력이 없어 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그때는 반드시 그림을 그려라.

그러면 그 목소리는 잠잠해 질 것이다.


-빈센트 반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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