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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Oct 16. 2024

용서는 지나치게 거룩한 단어잖아요

트라우마 극복법

(전 편에 이어)

뜬 눈으로 지새웠을 로빈의 밤들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질기고 긴 악연이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이해하지 못한,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로빈의 불면증을 지금 내가 겪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게다가 십 수년째 잠을 못 자고 있으니 언뜻 그녀와의 연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느낌까지 든다. 구역질 나게도.




한국에 돌아오자 꿈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가족과 친구가 반기는, 너무나 익숙하고 안온한 곳에 오니 온 마음이 녹아내렸다. 하루하루 즐거움에 벅찼고, 텍사스에서의 일은 잊은 채 매일 큼지막하게 웃었다. 이제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억지로 있어야 하는 곳도, 괜스레 두려울 일도 없었다. 의기소침한 자세로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바쁘지 않았다. 나는 온전히 보호받았고, 모든 면에서 안전했다.


하지만 다른 의미의 꿈들 또한 이어졌다. 행복으로 충만한 하루가 끝나고 눈을 감으면, 야속하게도 나는 매일 텍사스에 돌아가 있었다. 그렇게 귀국 후 약 한 달 동안 매일 밤 로빈의 꿈을 꿨다. 그녀가 냉소와 함께 뱉었던 마지막 인사--Ok. so good luck.--를 끝으로 로빈을 내 인생에서 완전히 도려낼 수 있을 거라 자신 했건만. 지나친 낙관이었다. 눈앞의 모습은 사라질지언정 기억 속 잔상이 너무나 맹렬했다. 지친 표정, 구부정히 움직이던 몸짓, 다 쉬어 허스키해진 목소리. 모두 불로 지진 것 마냥 각인되어 있었다.


귀국한 지 조금 지나, 텍사스에서의 엉망진창 식습관이 되풀이됐다. 아침과 저녁을 주지 않아 긴 시간 동안의 공복을 버텨야 했던 나는 이에 익숙해져 있었고, 식이장애와 더불어 극단적인 강박 증세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수면의 양과 질이 점점 줄었다. 우울증, 식이장애, 불면증의 삼각형은 끊이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과에 찾아갔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렀다.




나의 20대는 그리 무난하거나 단조롭지 않았다. 신경이 한껏 쇠약해진 나는 작은 사건에도 휘청이다 넘어지기 일쑤였고, 별 일 아닌 문제를 언제나 별 일으로 만드는 연금술에도 능했다. 이불킥 막장 에피소드들은 매번 새로이 갱신됐다. 하지만 덕분에, 텍사스에서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겨우 겨우 무의식 너머로 굴러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에게서 메일 한 통이 온 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발신인에는 낯선 영어가 적혀 있었다. McKenna Scott, 세 쌍둥이 중 나의 룸메이트였던 아이였다. 인형 같던 작은 9살 소녀가 어느덧 대학교에 입학했을 만큼의 시간이 흘러있었다.


맥케나를 많이 아끼고 사랑했음에도 메일이 반갑기보단 불쾌했다. 로빈을 언급한 문장을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텍사스에서의 기억을 지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한 번이라도 꼭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내 모든 불안의 시초였다.나는 나아가기 위해 애써 덮고 있던 나의 과거를 전부 끄집어내고, 또 헤집어 놓는 수밖엔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떡하지. 부러 떠올린 이 녹슨 과거를 어떤 식으로든 재저장해야 할텐데, 도통 감이 안 왔다. 하여 메일을 받은 후 나는 수많은 의사들과 전문가에게 진료를 받았고, 서적과 강의를 찾아봤다. 그리고는 알게 됐다. 어감에 미세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론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나는 로빈을 용서해야 했다.



내가 로빈을 용서할 수 있을까?


잠들지 못해 뒤척였을 로빈의 밤들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얼기설기 충혈되어 붉어졌을, 그 유독 파랗던 눈까지도. 그러면 나는 괜스레 더 억울해졌다. 그녀를 마음 놓고 탓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글로 담지 못 할 창의적인 저주의 말을 찾고 있었는데, 영 불편하고 찝찝해졌다. 나도 모르게 어젯밤 나의 모습과 그녀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끔찍하게도.


잠 때문에 점점 더 괴로워질수록 '이쯤이면 로빈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처럼 로빈도 불안에 취약하고 또 더없이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이라고, 그러니 용서가 정 힘들면 이해라도 해 보는 게 어떠냐고. 그렇게 하늘이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극도로 예민해진 날엔 '로빈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불면증을 겪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가 닿았다.


미쳤었나 보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감당 안 되는 수마가 덮쳐와 한껏 예민해질지언정, 불면증은 나보다 약한 상대를 학대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나는 애초에 그녀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어느 날 예고에도 없던 돌풍이 덮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리면 나는 이 천재지변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할까?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로빈은 내가 겪은 가장 악랄한 자연재해였다. 이해부터 불가능한데 더 나아가 용서라니, 지나치게 거룩한 단어다. 나에게도 그렇지만 로빈에게 더더욱이.


만약 이리 치부해 내가 불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뭐 어쩔 수 없지, 싶다.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나는 로빈이 아닌, 큰 그릇이 될 수 없는 지금의 나를 이해한다. 그리고 로빈이 아닌, 과거의 나를 용서한다. 자꾸만 나의 잘못은 진정 아니었나 되짚으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했던 열일곱의 바보 같은 이재민을. 재난에 대한 이해 대신, 용서 대신, 나는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몇 번이고 말해주기로 했다.


네 탓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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