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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Nov 03. 2024

나선욱 패션에 용문신을 한 대표님

듣도 보도 못한 알바 면접


[아 네... 추레할 것 같은데

최대한 단정히 가겠습니다.]


답장을 하고 허겁지겁 티셔츠를 갈아입었다. 지도 어플을 보니 다행히도 사무실이 매우 가까웠다. 당근마켓 특성상 집 근처 알바들만 소개하고 있어서였다. 버스 타고 약 20-30분 거리로, 왕복 3시간 소요됐던 이전 직장에 비하면 단연코 매우 만족스러운 위치였다. (이후 알아보니 당근알바 사용자들 중 나는 먼 거리에 속했다. 대부분 도보 15분 내외의 알바를 선택하더라.)


집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다시 알바 관련 정보를 훑기 시작했다. 당근을 통한 알바가 처음인 나는 뒤늦게 공고에서 '지원자 만족도'를 발견했다. 지원자는 3명 밖에 안 됐지만, 모두 ‘아쉽다’는 평이었다.  


쌔하다. 나는 그제야 다른 아르바이트 공고의 후기들을 잽싸게 뒤져보기 시작했다. 세 명뿐이어서 별거 아닌 셈 치려다가도 괜히 찝찝했다. 왜 미리 찾아보지도 않고 질러버렸을까. 행동력은 나의 큰 장점이면서도 그만큼의 단점이었다.


물론 한 줄의 자기소개 [옷 포장할 때 희열을 느낍니다]를 쓰며, 붙을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면접에 응하기 전에라도 좀 더 신중히 이런저런 정보들을 뜯어볼 것을…나는 '지원자 만족도'를 캡처한 뒤 친한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 지원자 만족도를 나중에 봄

   왜저럼 만족도


- 저기 주소 어디야

  제대로 된 건물 맞아?

  오피스텔 이런거 아니지?

  잘 알아보구가 ㅡㅡ


- ㅋㅋㅋ 오피스텔일거 같은데...

  조그만 의류사업하는데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본담 ㅜㅜ


- ㅜㅜㅜ불안한디

  밖에 친오빠 세워두고 왔다고 해


- 나 왜 이런 거 생각도 못했지

  안 그래도 전에 친구가 소개했던 알바

  갑자기 프로필사진 보내달래;


-  저 봐 저새끼 그런 알바에 프로필부터

   달라는 새끼가 어딨어. 언니 진짜 조심해야돼.

   요즘 세상 얼마나 위험한데.


내가 요즘 얼마나 포장에 빠져있는지 알고 있던 동생은 말을 이어갔다.


- 이번 알바는 들어보니 언니한테 꿀인데

  이상한 폐쇄 오피스텔 같아서 좀 불안해

  같이 갈 친구 없음? 아무나라도 ㅠㅠ


- 엄마 데려가? ㅋㅋㅜㅜ 없지...


그러던 중 당근마켓 알바의 이점을 또 하나 발견했다. 알바 공고를 낸 사용자의 중고거래 내역을 볼 수 있었던 것. 다행히도 대충 훑어보니 후기들이 호의적이었다. '너무 친절하신 분 ㅠㅠㅠ', '남친한테 전해들었는데 감동이에요', '설명 자세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작이라기엔 노력이 가상할 정도의 긴 기간에 걸쳐 작성돼 있었다. 금세 또 안심.


- 근데 당근 후기보니까 괜찮을듯??

  알바 떨어진 사람들이 별점테러한듯~ㅎㅎㅎ


- 글쎄 ㅠㅠㅠ나 의심론자라...

  당근 거래자로는 괜찮을수도...


- ㅜㅜ그럼 메시지 보내봐?

  "혹시나 해서 그런데 지원자 만족도를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줬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하면 당장탈락?


- ㅇㅇㅇ

  오지 말라 할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렴치한 세상에 넌더리가난 동생은 의심을 쉬이 거두지 않았고... 덕분에 나 역시 경계태세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카톡을 하는 동안 어느새 회사에 가까워져 있었다.


깨끗하고 정갈한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큰길에서 골목 하나를 더 지나니 동생이 예견한 대로 작은 평수로 보이는 5 층형 오피스텔이 보였다. 신축인 듯 깔끔한 건물이었다. 2층엔 분양 모집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1층엔 아기자기한 카페가 위치해 있었다. 이내 나는 '나쁘지 않은데?' 하며 경계를 조금 늦추다가도, 동생의 우려가 떠올라 만에 하나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뒀다.


- 나 이제 들어가는데 내가 카톡으로 '1' 보내면

  저 주소로 신고해줘


- ㅇㅋ


시간은 어느덧 5시에 가까워졌다. 나는 카톡창에 1을 쳐둔 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2층에 도착하니 남녀공용 화장실과 투명한 문 하나가 보였다. 층에 사무실 하나만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불안했지만, 개방감 있는 통유리문 덕에 긴장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당근마켓 거래에서 50번은 했을 법한 말로 면접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 당근..."


문을 열자 바로 왼켠에 서 있던 남자 두 명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0대 후반, 그리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사람 모두 옷 포장에 한창이었다. 나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인사도 아닌 퉁명스럽고 짧은 대답이었다.


"아 네. 알바."


그러든 말든 나는 빠르게 사무실 안을 스캔했다. 작은 스튜디오 형태의, 12평 남짓의 사무실이었다. 정면 끝쪽에 데스크 세 개와 사무용 의자 세 개가 보였다. 그리고 문 근처 바닥에는 뜯다 만 박스와 가방, 벨트, 그리고 옷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분리된 공간 따로 없이 사무와 포장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듯했다. 이 좁은 곳에서 남자 두 명이랑 나 혼자..? 동생 말을 하도 들어서인지 괜히 찝찝했다.


생경한 광경에 동공이 살짝 흔들리고 있는데, 대표로 보이는 40대 남자가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정신 차리고 두 사람에게 다시 집중.


근데... 팔뚝에 웬 큼지막한 문신...? 심지어 한 명은 오색깔 휘황찬란하다. 입은 옷도 한 명은 스톤 아일랜드 완장을 붙였고 나머지는 뭐더라, 오프화이트였나. 너무나 진부한 나선욱 패션에 반사적으로 쫄아버리기...


하지만 그래도 하던 건 마저 끝내야 하니, 애써 정신을 붙들었다. 대표가 질문을 시작했다.


"저희가 어쩔 때엔 두 시간보다 많이 일해야 될 수도 있는데 괜찮으세요?"

"아, 네 네."


그래도 여기저기 알바와 회사 다닌 짬으로 온갖 사회성을 발휘해 미소 지었다. 아주 씩씩하고 가식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대표는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갔다.


"명품 좀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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