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취미생활의 시작
“퇴사합니다.“
어렵게 붙은 회사를 그만두며 패기롭게 말했다. 입사 5년 차. 동기들이 슬슬 이직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내게 쏟아진 질문은 당연히 "어디로 이직하냐"로 시작돼, "아냐? 그럼 유학가?"에서 "그럼 뭐, 대학원 가?"로 이어지다 "결혼해?!!!!"까지 닿았다.
그렇다. 이직의 시점이었음과 동시에 또래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나는 모든 질문에 예의 그 사회적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넷플릭스에 스카우트된 거 아냐?” 하는 뜬소문에 피식 웃고는 바삐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할 일이 산더미니까. 요령이 생겨도 끝이 없다. 대본을 읽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넷플릭스? 그럴 리가.
나는 당근마켓으로 옷을 파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사람과 부딪히는 게 싫어서 직거래는 웬만해선 사양이다. 대부분이 택배거래. 그중 95퍼센트는 편의점 반값택배. 택배비는 가벼운 물건 기준 1,800원.
엄마가 오더니 옷 하나를 내 앞에 들이밀었다. 이 정도면... 2만 원? 아니 만 팔천 원 정도면 적당한가. 안타깝게도 팔만한 비싼 물건은 이미 한참 전에 팔았다. 이젠 박리다매 밖에 방법이 없다.
엄마의 옷은 16800원 정도 받게 되려나. 2만 원에 올린 옷도 계속 깎다 보면 금세 만 오천 원이 되곤 하니까. 하지만 내가 느낄 값어치는 그보다 크게 웃돈다.
왜냐하면 그저 용돈벌이를 하기 위해, 혹은 비우고 싶어서 시작한 당근마켓에 뜻밖에 힐링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무엇인고 하니...물건을 포장하는 일이 너무, 너무너무 재밌다!
퇴사 후, 해외여행도 가지 않았건만 통장 속 잔고는 지나치게 소박해졌다. 나는 생활비가 필요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지라 제 밥벌이는 해야 하지 않나, 하면서도 재취업은 생각이 없다. 내 마음을 달래는게 우선이었다. 나는 강박적인 성격을 고치고 싶었다.
하지만 30년동안 살아온 방식이 한순간에 고쳐질 리가 있을까. 이는 마치 왼손잡이인 내가 갑자기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처럼 막막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선 한 분야에만 강박을 몰빵 해볼까. 그러면 나머지 일에는 그럴 힘도 에너지도 없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헐렁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당근마켓에 옷을 팔 때 희열을 느꼈던 순간이 떠오른다. 완벽하게 각을 맞추고, 깔끔하게 포장해 마치 새 옷처럼 택배가 꾸려지면 극강의 쾌감을 느꼈다. 변태는 아니다. 어릴적부터 사부작사부작 손을 쓰는 일에 늘 흥미를 느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옷 포장에 강박몰빵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꾸만 생기는 욕심에 있었다. 옷을 두, 세벌 정도 팔고 나니 포장이 영 맘에 안드는 것이다. 뭔가 허름하고,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옷 자체는 사용감이 있을지언정 포장만큼은 제대로 하고 싶었다. 닳고 닳은 내 옷을 받는 사람이 마치 비싼 편집샵에서 산 빈티지 옷을 사는 것 마냥 느꼈으면 했다.
결국 배보다 배꼽, 쿠팡으로 옷 포장 용품-택배봉투, 폴리백, 종이포장지, 스티커—들을 대량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어느덧 나는 옷 포장에 점점 더 많은 시간, 그리고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당근마켓을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났을까. 문득 당근마켓에 '알바' 관련 탭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훑어보는데...옷포장 알바? 심지어 하루 두 시간만? 신이 난 나는 고민없이 지원서를 만들어 전송했다.
[옷 포장할 때 희열을 느낍니다.] 한 줄.
물론 큰 기대는 없었다. 반쯤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5분도 안 돼서 합격 연락?
나는 머뭇거렸다. 이게 맞나? 지원요강을 꼼꼼히 보지도 않고 너무 섣불렀나? 근데 또, 어차피 면접이지 않나. 나중에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 것까지 강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하던 중, 메시지 한 통이 왔다.
근데 뭐?...한 시간 안에 면접 보러 올 수 있냐고? 알바가 다 이런가? 뭐지 이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