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만큼 아는게 좀 아는건데
"명품 좀 알아요? 얼만큼 알아요?"
대표가 질문했다. 그제야 그들이 포장하던 옷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익숙하게 본 로고들이 붙어 있었다. 아, 고급 의류 포장하는 곳이구나. 근데 뭐? 명품 좀 아냐고?
내가 명품 많이 아나? 처음 듣는 질문이다.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셀린느 등은 알지. 이 정도면 많이 아는 편인가? 처음 해보는 고민이다.
"어... 뭐, 그냥...유명한 데는 알죠..?"
우물쭈물 대답하곤 다시 애써 웃었다. 그런데 참 컨셉에 고집 있어 보이는 두 사람. 이만큼 씩씩하게 웃으면 노력이 가상해 조금이라도 화답해 줄 법한데, 끈질기게 고고하다. 그리고 여전히 퉁명스럽다. 하루 두 시간 알바에... 압박면접이라...?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뭐, 성격이 그런가 보다 했다. 대표는 포장 업무에 대해 브리핑을 시작했고, 나는 마지막 사회성을 짜내며 경청하는 시늉을 했다. 다른 직원과 서로 미루다 실패한 대표는 설명하는 게 어지간히 귀찮아 보였다. 나는 속으로 '어~ 나도 너 맘에 안 들어~ ' 하면서 '그니까 빨리 끝내~ 빨리 빨리 빨리...' 되뇌고 있는데,
"이제 가셔도 돼요."
... 응? 다섯 마디 정도 설명한 것 같은데... 끝? 아니…압박 면접은 확실히 아니긴 한데…
사무실을 나서며 동생한테 바로 카톡을 보냈다.
- 아무 일 없었음 ㅋㅋㅋ
글케 이상하진 않음
근데 너무 별로였다...
가까워서 망정이지. 그리고 일터와 대표가 맘에 안 들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음 얼마나 시간이 아까웠을까. 하지만 다행인 마음에 비할 바 아니었다.
동생 말대로 세상이 흉흉하기도 하거니와, 그런 험악한 인상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동생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 다행ㅠㅠ왜왜 어떤데 ㅋㅋㅋ
붙을거같?ㅋㅋㅋ
- 노노 ㅋㅋㅋ5분도 안돼서 나옴
맘에 안들어하는 듯
^^ 근데 그래서 다행...
역시 이러니저러니해도
야쿠르트 아줌마 팔자?
사실 그때쯤 친구와 야쿠르트 배달 알바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체력이 약해져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게 사실이지만, 생활비가 일단 필요했으니. 그렇게 동생과 카톡을 하며 집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5분가량 지났을까. 띵, 당근 메시지가 왔다.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야쿠르트 배달은 무슨.
망했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사이가 있다.
첫 만남.
“와, 이런 사람 태어나서 처음 보네.”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지나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미친 거 아냐?” 이해 불가.
그러다가 또,
“아 진작 말을 하지. 내가 오해했네.” 금세 풀리고.
근데 다시 또 생각해 보면,
“그러게 굳이 왜 그런대?!” 짜증 난다.
하지만 결국엔,
“근데 애는 착해.” 하고 마는, 그런 사이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이를 이미 숱하게 경험했다. 이쯤이면 넘치게 겪었다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 보는 종을 만났을 때 오는 당혹감, 불편함,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갈등은 늘 새롭더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꺼려진다. 재빨리 돌아선 뒤 두 번 다신 안 만나고 싶다. 그렇게 늘 피해왔다.
대표의 너무나 친절한 합격 발표 후. 나는 두 시간가량을 종종거리며 고민하고 있었다.
관성처럼 나와 상극인 사람을 피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궁금증이 조금씩 커져갔다. 너무나 다르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며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느덧 비슷한 색깔의 사람들만 모여있는 내 작은 테두리를 넓혀본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최대한의 긍정회로를 돌려봤다. "내가 오해했네", "근데 애는 착해."가 이번에도 적용될지 불확실한데도. 어쩌면 사람을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이번엔 피하지 않고 직면해 보기로 했다. 에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