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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Nov 07. 2024

완벽한 조건을 갖춘 부업

회사 대신 두 시간 포장알바


[네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대표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리고 꺼림칙한 마음을 애써 무시한 채,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 나 옷포장 알바 하기로 했어.]


언니의 과보호가 발동할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오! 그런 게 있어? 당근으로 다져진 옷포장 ㅋㅋㅋ그런 건 어디서 보고 또 구했대]


나는 별생각 없이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당근에서 구함ㅋㅋ근데 나중에 안 건데, 지원자 만족도가 안 좋네...^^ 안 그래도 면접 갔더니 남자 둘만 있는 작은 오피스텔이라 첨엔 찝찝했음 ㅠㅠ]


실수였다. 언니가 조심스럽고 섬세하면서도, 아주 아주 신중한 사람이란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언니로부터 답장이 왔다.


[괜찮은 곳 맞아? 오피스텔 찝찝하다. 하지 마.]


그렇게 언니의 걱정이 시작됐다. 사실 과보호는 아니었다. 나 같아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혈육이 신원확인도 되지 않은 남자 두 명과 일한다면 우려부터 할 것이다. 장소가 폐쇄된 원룸이라면 쌍수 들고 말릴 것이고. 심지어 후기도 전부 구리다고?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문이 통유리로 되어있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곳을 안전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폐쇄되지 않고 개방된 공간으로 여겼다. 그렇다. 언니가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내가 대가리꽃밭이었다. 포장이 안 그래도 재밌어 죽겠건만, 이 걸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신이 나 있었다.


[아냐 아냐. 가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더라고! 신축 건물에 문도 통유리로 되어있 ]


한참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던 중, 언니의 메시지가 선수를 쳤다.


[하지 마.]


단호했다. 부모님보다 언니를 설득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마저 나는 잊고 있었다. 언니에게 황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아 언니 끝까지 들어야지~하여튼 당근으로 알바를 구한 거라, 중고거래한 내역이랑 그 후기도 볼 수 있더라고? 이것 봐봐.]


사진까지 첨부해서 전송. 하지만 이 정도에 넘어가는 언니가 아니었다.


[저런 후기를 곧이곧대로 믿냐. 만족도 다시 봐봐 너. 왜 저래 저거? 그리고 처음에 찝찝했다며. 그러면 그 촉이 맞는 거야. 이상한 곳 아니더라도 앞으로 이상해질 수도 있어. 너 씨씨티비 있는지 확인은 했어?]


봤을 리가. 하지만 그렇게 대답할 순 없지. 나는 다급하게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근데 내 촉이 이제 안 찝찝하다는데~~?ㅎㅎㅎㅎ 실제로 보고 난 촉이 더 맞지 않을까~?ㅎㅎㅎ]


[됐고. 씨씨티비 확인 안 했지? 하지 마. 난 니가 포장 알바라길래 쿠팡 같은 큰 기업에서 여러 명이랑 같이 포장하는 줄 알았지. 근데 뭐? 남자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그냥 못하겠다고 보내.]


[좋은 사람들 같던데... 그리고 사무실도 쾌적해 보였어! 나 그러면 내가 면접본 사람한테 지원자 만족도 왜 그런지 한번 물어볼게.]


나는 어느새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변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논리로 떼쓰기 시작했다.


[진심 그게 의미가 있다 생각해? 그걸 솔직하게 말하겠냐]


[그래도... 뭐라 하나 보게.... 혹시 기분 엄청 나빠하면서 막 화내면 진짜 이상한 데니까! 그 핑계로 안 하면 되지. 지금은 인수인계까지 약속해놔 가지고... ㅠㅠ 우선 보낼게]


[기분 나빠하지 않고 술술 그럴싸하게 말하면 난 그것도 싫어. 그래서 씨씨티비 있는지 봤어 안 봤어?]


답장은 우선 보류. 그 대신 당근 어플을 열었다. 사실 나 역시 만족도가 의아했으니 뭐, 이참에 깔끔히 알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대표에게 보낼 구구절절한 메시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진작 묻지 그랬냐'는 말을 듣을까 봐 우선 치사하게 언니를 걸고넘어졌다.


[대표님 저희 언니가 걱정해서 그런데... 지원자 만족도 세 분은 왜 저런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문득 대표 팔에 있던 큼지막한 문신이 생각났다. 나는 황급히 '저런 건지'를 '그런 건지'로 변경하고는,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전송. 3분가량 지났을까. 생각보다 빨리 답장이 왔다. 대표는 공고를 올린 사람만 볼 수 있는 알바 후기를 캡처해서 보내며 물었다.




[이거요? 저런 후기가 있는지 지금 알았네요. 알바 하셨던 분은 두 분이신데 왜 네 개가 달렸는지 모르겠는데요. 급여가 다르다는 후기는 저희는 어차피 주급이어서 짜투리 시간을 다 더하는데, 그전에 하셨던 분은 반올림해서 생각하셨나 봐요. 예를 들어 오늘 두 시간 반 내일 두 시간 반 이면 다섯 시간이잖아요? 근데 6시간으로 잡으신 분이 계셨어요.]


생각보다 훨씬 양호한 반응과 수긍 가는 답변이었다. 채팅에 답이 없어서 안 좋은 평가를 받았다니!! 나머지 급여 부분도 명쾌하게 설명해 준 덕에 마음이 놓였다.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음... 저희가 사실 사무실에서 대화가 거의 없어요. 그게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으세요.]


진짜로? 왕복 3시간 출퇴근했던 시절과 달리 집 앞 거리에, 하루 두 시간만 일하고, 주 업무는 포장에다가, 최저시급보다 높은 13,000원을 시급으로 받는데, 사회성도 짜낼 필요 없다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에게 비현실적으로 적합한 아르바이트가 아닐까. 문득 이전 회사에서 억지로 스몰토크를 짜내던 숱한 날들이 스쳤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애써 생각을 지우곤, 조용한 곳에서 사부작사부작 포장하고 있는 앞으로의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현실이 보란 듯 찬물을 끼얹었다.


잊고 있었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돈을 받으며 즐거움까지 바라는 건, 무직인 내가 명품백을 사는 일만큼의 사치라는 걸. 언니의 걱정을 볼모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애초에 욕심이었다는 것도.


언니는 "정말 괜찮아 보였냐"라고 몇 번 되묻더니 마지못해 허락을 해줬다. 그리고 나는 언니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주소, 구글맵 로드뷰, 그리고 사업자등록 번호를 전달했다.


조금 지나니 핸드폰에 알람이 떴다. 당근 챗봇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알바 합격을 축하드려요.'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말 끝엔 눈치 없는 빵빠레 이모티콘이 아주 명랑하게 붙어 있었다.




바로 다음 날 부터였다.


출근해도 인사 한 마디 없이 쌩-지나가는 두 대표에 황당하고 (셋만 일하는데 굳이 투명인간?)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고가에 또 당황하고 (3천 원짜리 옷 포장해 왔는데...)


싸웠는지 서로 말도 안 하는 대표들의 사이를 눈치 보고 (인수인계 알바생 왈 안 싸웠단다.) 늘 틀어놓는 90년도 소몰이창법 발라드에 찌푸리다, (저런거 틀어놓으니 맨날 표정 구리지) 농담하는 족족 정색, 웃는 족족 무표정 일관하는 대표들에 적응 불가한


포장 늦게 한다 욕 먹고, (시범을 보여주는데, 완전 대충하네. 명품포장이 이래도 돼?) 혼잣말인 척 잔소리하는 대표에 화가 나다가, (아니 어디보고 말하냐고) 내가 한 포장 “쓰레기 같다”고 말해서 받아치니, (네~쓰레기같음 다시해야죠뭐~ㅎㅎ) 또 문자로 [쓰레기 아니었다고 오해하신 것 같다]고 구구절절 사과해서 의아한


그래서 '아, 괜찮은 사람인가보다' 생각하면 또, 자기들 “원래 택배하는 사람들이랑은 얘기 안 한다“라며 다시 한 방을 날리는,


하루 딱 두 시간.

나의 세상 황당하고 어이없는 알바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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