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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Nov 14. 2024

본격 알바 인수인계의 시작

회사 말고 두 시간 포장알바


미소는 가성비가 좋다. 큰 노력이 필요치 않은데도 즉각적으로 경계를 늦추고 마음을 열게 만든다. 웃는 본인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건 덤. 아, 물론 서비스업은 예외...


하여튼 평소 "굳이 무표정일 필요가 있나" 마인드를 가지고 살던 나는 "굳이 웃을 필요 있나"는 남직원의 태도가 조금 불편했다. 처음 간 장소에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둘 만 있는 이 공간이 마냥 어색했다.


다행히 인수인계를 맡은 알바 선임자(속칭 구찌녀)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조금씩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마음 놓고 원래의 사회성 충만한 나로 돌아가, 조잘대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나 둘 시작했다. 뭐라도 배울 의욕을 되찾았다.


선임자의 태도는 짬빠에서 오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다정함이었다. 사실 영혼이 있건 없건 상관없었다. 행여 남직원은 겉과 속이 같은 투명한 사람이고, 선임자는 속으로 나를 욕하는 가식적인 사람일지라도, 나는 선임자와 일하는 게 더 편했을 거다. 내게 있어 웃으려는 노력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성의나 다름없으니까. 단순히 기계적인 리액션이 아닌, 내가 본인과 마주친 이 상황을, 그리고 함께 있는 이 공간을 편하게 느꼈으면 하는 자동적인 배려로 느껴졌다.


솔직히 일터에서 만난 사람 속내까지 들여다볼 여력도 의향도 없고... 그저 업무 할 때만은 하하 호호 사이좋게 지내는 척이라도 하다가, 너는 네 삶, 나는 내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인수인계로 돌아가서.

아르바이트 업무는 간단했다. 해외에서 수입해 온 옷이나 잡화를 검수하고 택배박스에 재포장하는 일이었다. 택배박스는 노트북에 기입된 대로 송장을 붙인 뒤 한쪽 구석에 쌓아두면 다음 날 택배기사님이 전부 수거해 가신다. 선임자는 내게 검수할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점, 그리고 빠르게 포장하는 방법 등을 알려줬다.



인수인계를 한창 받던 중 대표로 보였던 40대 오프화이트남이 들어왔다. 그런데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선임자에게 인사 한 마디 없이 쌩- 지나간다. 엥? 그리고는 그런 대표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남직원 옆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딸깍거리기 시작했다. 남직원은 이내 일어나 담배를 피우려 발코니로 향했다.


선임자는 대표와 남직원을 슬쩍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설명을 이어갔다. 빠른 담배타임 후 돌아온 남직원은 한숨을 푹푹 쉬며 다시 모니터를 노려봤다. 여전히 대표와 남직원은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대체 누가 틀었는지, 그저 M.C the MAX의 [행복하지 말아요]가 흐를 뿐이었다....



잠깐의 쉬는 시간. 선임자는 작업대에 기대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고, 나는 그 옆에서 어정쩡하게 선 채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는 눈치를 살핀 뒤 선임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 혹시 대표 두 분이 사이가 안 좋나요..?


그러자 선임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 저도 처음에 그런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원래 저래요. 두 대표님이 친구더라고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라나. 그래도 가끔 보면 서로 말도 해요.


응? 남직원도 대표라고? 그리고 둘이 동갑? 한 명은 20대로, 다른 한 명은 40대로 보였는지라 나는 조금 당황했다.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 아... 그런데 물은 어디서 마시나요?

- 아마 저거 사용하면 될걸요?


두 달 넘게 일했다는 선임자는 한 번도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 아, 화장실 비밀번호도 알려드릴게요. 여기, 이거 맞을 거예요.


노트북에 적힌 번호를 가리키며 선임자가 말했다. 화장실도 가 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 사실 잘 몰라요. 전 그냥 빨리 포장하고 집에 가고 싶어서.

- 아, 그쵸..!


선임자는 큼지막한 개인 텀블러를 홀짝거렸다. 그리고는 멀뚱히 서있는 내게 물었다.


- 어려운 건 없죠?

- 내일 더 배워봐야 알 것 같지만... 우선은 괜찮은 것 같아요.

- 잘하실 것 같던데요. 지난번 인수인계 해드렸던 분은 아주머니셨거든요. 근데 여기 분위기 적응 안 된다면서 못하겠다 하시더라고요. 다들 둘이 싸웠나 물어보데. 근데 전 사실 좋아요. 나도 뭐, 친구 사귀러 온 것도 아니고.

- 근데 저도 말 많이 거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요. 조용히 포장하고 싶어서 온 거라.

- 맞아요. 사실 뭐, 나도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다시 시작할까요?


조금의 휴식 후 선임자는 인수인계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이런저런 업무 외 정보들을 알려줬다.


- 그거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돼요. 오늘은 몇 개 없는데 포장할게 많은 날도 있거든요. 그런 날은 대충대충 해야 돼요. 요즘 점점 바빠지더라고요? (소근) 사업 잘 되나 봐요. 대표들 나랑 동갑이던데.

- 아 그래요?

- 그렇던데요. 둘 다 애아빠 일걸요. 확실하진 않아요. 뭐 저도 딱히 궁금하지 않고.


궁금하지 않다는 말과는 달리 선임자는 생각 외로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하는 얘기가 대표들에게 들릴까 조금 염려됐지만, 크게 틀어놓은 음악 소리에 대충 묻히는 모양이었다.


사업이 잘 되는데도 바쁘니까 표정이 저렇구나. 대표들은 자리에 앉은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수차례 쉬다, 번갈아가며 발코니 담배릴레이를 이어갔다. 확실히 아직은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택배박스가 몇 개 없었는데도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사무실엔 박스테이프를 붙이는 투두두둑! 하는 소리와 백지영의 서러운 통곡만이 울려 퍼졌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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