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인장 Nov 17. 2024

어쩌면 내가 부담스러운 알바인지도...

회사 대신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인수인계 이틀차이자 마지막 날.


출근 전 나는 커피를 사기 위해 회사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전 날 고작 두 시간 일하면서 대표들의 한숨, 담배릴레이, 구슬픈 음악소리에 집중이 힘들었던 것이다.


편의점 커피의 금액은 대충 2500원. 회사 다닐 때 죄책감 없이 마시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의 반 정도.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비싸게 느껴졌다. 나는 하나만 필요한데도 굳이 2+1, 1+1 커피들을 스캔해 봤다. 그리고는 나머지 한 두 개의 쓸모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알아보기 시작했다.


세 개까진 오버고 두 개로 결정. 그렇게 나는 오천 원을 지불하고 커피 두 병을 얻었다. 물론 편의점 바로 옆에 투썸플레이스가 있었고, 그곳에서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면 결론적으로 커피에 500원을 덜 쓴 셈이었지만...여기까진 생각하지 말자. 괜찮다. 나만 마시면 정 없다. 어제 선임자의 인수인계는 친절했고 훌륭했다. 지극히 합리적인 소비였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니 선임자, 그리고 20대로 보였던 대표가 먼저 와 있었다. 바닥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큰 박스 두어 개가 보였다. "오늘도 포장할 의류가 별로 없다"는 말을 하며 선임자는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포장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선임자에게 커피 하나를 내밀었다. 부담이 될까 1+1였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선임자는 커피를 못 마신다며 거절했고, 이에 나는 "그럼 저기 계신 대표님 드려야겠다"라는 혼잣말을 뇌까렸다. 그런데 선임자가 갑자기 당황하더니 "굳이..."라는 말과 함께 "아... 그럼 줘보세요"라는 뜻 모를 말을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인상 쓰고 있던 대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1+1 행사상품이었다는 말과 함께 커피를 건넸다. 남는 커피 하나 주는 일이 뭐 별거라고. 하지만 대표는 마치 엄청난 별거인 양 얼굴이 시뻘게졌고, 나는 그제야 선임자의 반응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대표는 한참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커피를 받았다. 그리곤 보는 내가 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웃었으니 됐지 뭐. 좋은게 좋은거지. 작업대로 돌아온 나는 간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단돈 500원으로 희귀한 (억지)웃음을 사다니, 역시나 합리적인 소비였다. 뿌듯해진 나는 ‘조금씩 농담하며 편해져야겠다'라는 다짐까지 하고 있었다.



포장은 한 시간 만에 끝이 났다. 선임자는 노트북에 알바-친화적으로 업무 종료 시간을 입력한 뒤에도 한참을 머뭇거리다 대표의 자리에 찾아갔다. 대표는 웬일로 벌떡 일어서더니, 예의 그 심각한 표정으로 그간 잘해줘서 감사했다며, 여태 알바 중 제일 잘해줬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선임자는 낯선 소리라도 들은 양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나는 훈훈한 분위기에 괜히 덩달아 훈훈해졌다.


선임자는 마지막으로 그날의 불량품들을 대표에게 브리핑했다. 그중에는 실수로 두 개가 오배송된 토리버치 팔찌가 포함돼 있었다. 대표는 신경 쓰지 말라며, 작업대 위에 두고 가라 말했고, 나는 이에 장난으로 물었다.


"앗 그거 ㅇㅇ님(선임자) 퇴사선물 아니었어요?"


그러자 대표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아뇨. 아닌데요."


장난으로 던진 말에 선임자만 웃었고, 대표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리고는 행여 진짜 퇴사선물로 가져갈까 단호하게 덧붙였다.


"죄송한데 이건 판매가가 ㅇㅇ만 원이라 그건 안돼요. 대신 (두리번)...이 5% 할인 쿠폰드릴게요."


아무래도 대표는 장난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사실,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 내가 섣불렀다. 그걸 아는데도 나는 계좌번호를 묻는 대표에게 또 다시 아무말을 던졌다.


"주급은 금요일 저녁마다 보내드릴거예요. 계좌번호 여기에 적어주시면 됩니다."


"앗. 당근페이로 매주 보내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자 대표는 다시금 궁서체로 대답했다.


"아닌데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당근페이 그걸로 보내드려요? 아직 한 번도 안 해봐서요... 우선 알겠습니다. 방법을 한 번 찾아볼게요."


대표는 받아줄 의향이 없었다. 어쩌면 철벽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표의 진지한 반응에 선임자만 혼자 빵 터져 웃었고, 당황한 나는 아니라며 손사레를 쳤다. 그리곤 그냥 해본 말이라며 황급히 은행 계좌를 읊었다.



퇴근길, 나는 만에 하나를 위해 선임자에게 번호를 알려달라고 정중히 물었지만, 선임자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는 황급히 작별인사를 한 뒤 사라졌다. 나는 전 날과 달리 홀로 버스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틀 치의 인수인계는 끝이 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