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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Aug 08. 2022

생일의 온도

시선 9화 [생일] by 색시

주간 <시선> 아홉 번째 주제는 '생일'입니다.




ㄱ.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선장, 내가 조금 냉소적인 걸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그래서 표현할 수 있는 ‘진심’과, 내가 받고 싶은 혹은 알아차릴 수 있는 ‘진심’은 어느 정도로 조화로울까. 


인위적인 다수의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그 ‘진심’이 더없이 자연스럽길 바라. 물론 그 다양성은 얼마든지 존중해. 내게 맡겨놓은 것이 중해서, 잘 보이고 싶어서, 어떤 이유에서건 내가 필요해서, 은혜를 갚으려고, 본인의 생일에도 축하가 받고 싶어서, 지난 내 축하가 고마워서, 사랑해서, 미안해서 … 모두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부담을 갖진 말아줬으면 좋겠는 거야.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데에 어떤 의무나 책임감이 앞서기보다 각각의 ‘진심’에 집중하여 그때그때의 크기만큼 자연스럽게. 물론 말은 쉬워 보이나 이게 가장 어렵다는 걸 알아. 


특히 우리 주변의 모두가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할 것 같아서’로 행하는 것들 중 ‘색시에게 생일 축하’는 들어있지 않길 바란다는 거야. 


또 하나, 지난주 공모전 마감이다 워크숍이다 강의 준비다 바쁜 L에게 내 생일이 혹여 부담으로 다가가면 어쩌나 하여 차라리 생일이 없거나 몇 개월, 1년 정도 미뤄지면 좋겠다 생각했어. 그의 세상 속에서 내 생일날만 잠깐 없어지는 거야. 왜 나는 한창 정신없을 새 학기 시즌에 태어난 거야, 싶더라니까. 





ㄴ. 생긴 대로 맞이하는 생일. 나의 모양은 무엇일까 고민해도 당장 알기 어렵다면 가만히 흘러가는 대로 하루를 맞아보는 게 방법일 수 있다. 


내 (은밀한) 취미생활 중 하나인 그룹수업이 하나 있는데, 토요일 오전부터 세 시간 동안 보강이 있었고 어쩌다 보니 우리 집과 이어져있는 한 층 아래의 사무공간을 수업 장소로 제공하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내 또래 여성 학우(한 분은 두 번째로 본 사이) 두 분과 점심 식사를 하고는 이어서 레슨이 두 시간 있었는데, 첫 타임 학생이 도착하여 문을 열어보니 내 다른 제자와 미리 모의한 깜짝 파티를 해주었던 것(심지어 이 둘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란다. sns 상에서 친해진 케이스). 


그래 기분이다 하여 레슨은 한주 미루기로 하고 앞서 식사한 학우들과 10살 어린 제자들과의 합동 케이크 파티를 열었어. 화창한 날씨가 좋아 사무실 테라스로 통하는 통유리 문을 열고, 선선한 바람맞으며,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여기저기서 모인 미니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세대 간 화합을 도모했다. 두 번째 수업의 학생도 얼떨결에 합류. 이 자리가 아니었다면 살면서 마주칠 일이나 있었을까 싶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깔깔 웃고 먹고 대화하는 풍경은 뭐랄까 선물 같았어. 내가 이런 봄날에 태어나 감사하다, 싶더라니까. 

화사하고 향기롭고 사랑스러워. 


이제 공항으로 L을 픽업하러 가야 하는 시간, 자리를 일어서는데 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자는 말을 뱉은 친구는 구석에서 내내 조용히 웃고 있던 내성적인 여학우. 난생처음 얼굴을 마주한 지 두어 시간 된 사람들끼리 오밀조밀 모여 찍은 사진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 

참고로 이 생일의 완성은 네가 보내준 커다란 생일 케이크였어 내 최고의 로맨티시스트 선장님!

그러고 보니 우리 둘 다 봄날에 태어났어. 5월의 선장 생일은 또 얼마나 햇살이 좋을까 벌써 설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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