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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Apr 23. 2023

‘김나박이’의 ‘김’이 되는 데에는

시선 19화 [성씨] by 선장

주간 <시선> 열아홉 번째 주제는 '성씨'입니다.



(1) ‘김나박이’ 


색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노래를 잘 하는 남자 가수가 누구라고 생각해? 개인적 취향과는 별개로 인터넷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들은 단연코 ‘김나박이’지. Z세대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단어인가. 가창력 4대 천왕이라 불리는 김범수, 나얼, 박효신, 그리고 이수의 성을 따 만든 철 지난 신조어 말이야.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라는 명칭도 상상하기 힘든 경지의 정점이다만 ‘김나박이’라는, ‘각각의 성씨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새삼 더 대단하고 신기해. 성씨만 이어 붙인 단어에서 누군가 바로 떠오른다니. 물론 ‘김나박이’는 지겹도록 회자된 밈이긴 한데, 이를 전혀 몰랐던 사람에게 “가창력으로 손꼽는 네 명의 남자 가수 ‘김나박이’는 누굴까? “라고 퀴즈를 내도 대부분 바로 정답을 유추하더라고. 


심지어 가수 나얼의 ‘나’씨를 제외한 ‘김’, ‘이’, ‘박’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성씨잖아. 길거리에 있는 사람 열 명 중 다섯 명을 랜덤으로 붙잡고 물으면 성이 ‘김이박’ 일 정도로. 특히 그 중 김씨는 인구의 20퍼센트나 된대. 


한때는 김씨끼리 해외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형제자매로 오해받곤 했지만 서로 일면식도 없는 무수한 ‘미스터 킴’과 ‘미즈 킴’을 겪은 이들은 알고 있지. 한국에서 김씨는 공동체 개념이 아닌 수효로 승부하는 성씨라는 걸. 이제는 많은 외국인들이 성씨 “Kim”만 봐도 그들은 한국인이고, 높은 확률로 친척이 아니라는 걸 알아. 


이리 보편적인 만큼 지루하고 특색 없는 김씨 중 한 명이 나야. 그래서인지 더더욱 '김나박이'의 '김'이 된 김범수가 존경스럽네. 





(2) 가장 불편한 성씨


'촘담롬솜석'. 

영어로 chomdangromsumsuk.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특이했던 성씨야. 고등학교 때 알게 된 태국인 친구였는데,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 사이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성이었어. 저리 후킹하고 독특한데도 워낙 생소해 외우는데 애를 많이 먹었던 기억. 발음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너무 길잖아. 한국 성씨는 아무리 독특해도 한두 음절로 떨어지는데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도 불편한 점이 오죽 많았을까 싶어. 해외에 나가면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도 드물었을걸. 수기로 직접 써야 될 때면 팔이 다 아플 거야.


하지만 길고 긴 '촘담롬섬석'보다, 흔해서 지겨운 '김'보다 내가 갖기 싫었던 성씨는 단연코 '강'씨였어. 어감이 우습고 특이한 여러 성들보다 오히려 비교적 무난한 강씨가 되기 싫었지.


강씨... 높은 확률로 출석번호 1번이 되어 나 같은 김씨들을 안심시켜 주는 존재. 학기 초에 언제나 제일 먼저 이름이 불리고, 많은 수업에서 앞사람의 시범 없이 바로 실전으로 부딪혀야 하는 선구자 강씨. 그리고 드물게 보이지만 더 큰 확신의 1번들. 감씨, 갈씨, 간씨.. 


괴롭다기 보단 귀찮고 짜증났을 것 같아. 주변에 있다면 새삼 “학창 시절에 고생했다” 말해주고 싶네. 덧붙여서 강씨는 어감이 예뻐 내가 좋아하는 성 탑 3인 ‘손, 안, 강‘ 중 하나라고. 그리고 학교를 다 졸업한 지금은, 사실 한편으로는 부럽다고.





(3) 반쪽의 역사


성씨는 나의 뿌리를 알려주는 한 종류의 지표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남자의 성만을 물려받는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역사라는 생각이 들어. 


물론 요즘엔 부부의 성을 모두 이름에 넣는 경우도 종종 보이긴 해. ‘장’씨인 아빠와 ‘이’씨인 엄마가 만나 ‘장이준’이라고 이름을 짓듯이. 누군가에겐 유난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름이다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남자의 성이 어쨌든 제일 앞이니 여전히 불공평할 수 있어. 


문득 생각난 건데, 아빠의 성만을 따르는 우리 가족의 일원인 엄마가 어느 날 장난스레 말하더라. 혼자만 성씨가 달라서 외롭다고. 나는 별생각 없이 “그렇다면 고양이 옹심이의 성은 엄마의 성을 따르자” 답했고 엄마는 아이마냥 손뼉을 치며 웃었어.





관련 작품: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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