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2화 [직업] by 색시
주간 <시선> 스물두 번째 주제는 '직업'입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유행하던 직업은 과학자와 선생님. 내가 되고 싶던 건 만화가.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엄마의 타자기로 타닥타닥 나름의 각본도 써보고 A4용지에 칸 나누어 그림도 그려보고, 만화 그리기 책도 어디서 구해다가 몇 번이고 정독했다. 가장 소중한 취미이자 특기였어. 허구한 날 책상에서 머리 박고 그림만 그리다 안경잡이가 되는 바람에 몇 해 전 라식수술을 받고 나서야 광명을 찾았지만, 나름 강남구, 서울시에서 만화로 상도 타고 교내 그리기 대회에서 입상도 하여 초등학교 복도에는 꽤 오랫동안 내 그림이 걸려 있었다. 내 손끝에서 무언가 슥삭 그려져 보여지는 게 재밌었다. 종이 위의 페르소나는 실존하는 나보다 예뻤고.
중고등학생 시절 다수의 부모님들처럼, 우리 엄마의 ‘딸 의대 보내기’에 대한 열망 역시 꽤 뜨거웠다. 의사라, 지금이야 외과의에 대한 경외심이 상당하지만 교복 입던 시절의 나는 정신과의 가 가장 멋지다 생각했다. 전체적으론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음에도 물리화학에 대한 싹은 일찍이 노랬기에 문과를 고집해 부모님과 대립했던 기억. 그럼 의대는 갈 수 없으니 심리학자는 어떨까, 하며 과(학)포(기)자의 도피를 합리화했다. 정신, 심리, 인과관계- 유치한 소설과 각본을 끄적이던 어린 시절부터 항상 ‘사람, 인식’에 대한 호기심이 늘 차고 넘쳤다.
이 시기 즈음하여 그간 성당과 고등학교 동아리로 속해있던 밴드부에선 어깨너머 열심히 세트 드럼을 배우고 있었다. (아마 고1 가을까지만 해도 내가 뭘 해 먹고 살지에 대한 인식은 아예 없었다. 하던 공부 더 열심히 해서 심리학과 진학하면 되겠다 정도였으나 이 생각의 농도는 매우 옅었지, 가정용 물탱크에 스포이트 한두 방울 떨어뜨린 수준.) 세트 드럼의 매력은 사지가 전부 따로 놀면서 하나의 그럴듯한 비트를 완성해낸다는 데에 있다. (‘직업’에 대한 생각은커녕 ‘대학 진학’에 대한 생각도 두리뭉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럼 치는 오빠들이 외모 불문하고 제일 멋있었다. 우직하게 무대 중심에 앉아 어깨 아래로 밴드 전체를 지휘하는.
그러다 대뜸 어떤 모던록밴드의 뮤직비디오에 제대로 꽂혀서 엄마한테 나 음악 하고 싶다고 선전포고한 뒤 거진 1년의 기간을 투쟁하였다. (단지 그 뮤직비디오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이 이야기는 매우 장황하므로 스킵하고) 의사 딸을 원하셨던 엄마의 타협점에 딴따라는 없던지라 투쟁 기간 동안 집안 분위기는 절망적이었고, 와중에 철판 깔고 삼수하여 그토록 원하던 바늘구멍에 입성한 늦둥이는 초중고 통틀어 잘한 적 한 번 없는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다. 앞서 문단 내내 드럼을 찬양했으나 피아노를 전공했다. 내 첫사랑 왈, 너는 피아노 칠 때가 제일 예쁘다고 했었다. (단지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이 이야기 역시 꽤 장황하므로 스킵하고)
대학교 1학년 때 가세가 살짝 기울었던 적이 있다. 여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아르바이트에 이응도 모르고 곱게 자랐던 탓에 당최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입시 시절 24시 연습실을 못 구하여 지인들 연습실을 전전하다, 어떤 술자리에서 딱 한 번 봤던 동갑 남자아이 연습실에서 하루 신세 진 적이 있었는데 웬걸 갑자기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는 자기가 출강 중인 음악 학원에 나올 수 있냐는 거다. 지금 뭐 가릴 때냐 한 푼이라도 벌 수 있다면 그게 어디야 하고 냉큼 물었지.
고작 스무 살 신입생이 서울 시내 학원에 출강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비록 월급 12만 원 남짓의 내 자아실현 따위는 절대 불가능한 ‘새끼 강사’ 였지만. 그 위치에서 열과 성을 다해 취미생, 중2(병) 친구들, 예고 입시생들을 가르쳤고, 해를 거듭할수록 강력해지던 나의 ‘아이들 원하는 학교 보내주세요’ 기도에 주님께서 열혈 호응해주십사 합격률이 높아졌다. 물론 새끼 강사도 진작에 탈출했고 스물셋에는 학원도 탈출했다. 그렇게 10년 남짓 흐른 지금은 매년 꾸준히 합격생을 배출하며 대학교, 대학원 입시 개인 레슨을 진행 중에 있다.
처음 레슨을 시작한 시점부터 스물일곱 살까지는 일주일도 쉬지 않고 달리다가 이제는 2월에 한 주 정도 자체 휴가를 갖고 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예체능 레슨 바닥에서 아직 살아 숨 쉴 수 있는 건 주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드리고 있는 내 기도와 어렸을 때부터 지대하던 타인의 심리에 대한 집착과 관심 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
클래스 수업이 아닌 1:1 입시 레슨은 상당한 체력전이다. 학생 개개인의 성향, 장단점, 당장의 한계, 나와의 거리 조절, 기싸움, 효율적인 정보 전달을 위한 나의 발성과 발음, 나의 음악성과 직위, 불합격 부담 전부를 계산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관심, 속 좁아지지 말고 사랑하기 이 사항들은 계산도 안될뿐더러 난이도 극악이다. 다행히 세월이 흐르며 익숙해진 탓인지, 체질에 맞는 탓인지 내게 레슨은 아직까진 즐거운(그리고 부담스러워서 짜릿한) 하나의 활동. 현시점 가장 자리 잡은 ‘업’을 ‘활동’ 따위로 표현하는 게 우습지만 실상이 그렇다.
- 사실 ‘예술’을 ‘직업’으로 갖는 것에 대하여,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차고 넘치지만…
판을 세 장 냈다. 싱글 앨범 하나, 정규 앨범 하나, 소품집 미니 앨범 하나.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들 판에 작편곡 및 녹음으로 참여한 것들 모두 더하여 아직 민망할 정도의 소액이지만 매월 저작권료와 실연료가 입금된다. 내 판들은 대중음악이 아닌 순수음악으로 분류되어 더욱이 수요가 적다. 물론 수익으론 환산 불가능한 궁극의 재미 덕에 모든 음악가들이 아티스트의 범주에서 재즈 거지 타이틀 달고 생존 중이겠지만. 철없는 이야기 같겠지만 알 사람은 알 거라 믿는다, 창작에서 오는 희열은 지구상 현존하는 여러 재미들 중 단언 으뜸이라는걸. 어렸을 적 지면 위에 끄적이던 점, 선, 면들이 이제는 공기 중에서 살랑살랑 춤을 추며 청각 신경계를 자극한다. 투명 망토를 쓰는 바람에 형체는 안 보인다. 멋지지 않은가?
다른 아티스트들 작품의 작편곡, 녹음 세션 작업 시에도 페이를 받는다. 물론 공연이나 행사, 클럽 연주 시 퍼포머로서 발생하는 페이도 있다. 잠깐 뮤지컬 조감독 일을 했을 때엔 학원 출강 이후 첫 ‘월급’이란 걸 몇 개월 받아보았는데, 몇 날 며칠을 밤낮으로 악보 프로그램만 돌리다가 비문증을 얻어버려서 이후 모기를 잘 못 잡는다.
음악 외의 흥미로운 수익들도 간간이 있다. 책상 위 오타쿠 습성 못 버리고 손으로 쓴 기록물들 올리는 SNS 계정을 하나 만들었는데 어쩌다 팔로워가 급증하여 각종 문구류 및 책, 통신사, 전자기기 신제품 등의 광고가 들어온다. 최근에는 어떤 다이어리 브랜드와 협업하여 속지 제작을 하고 있는데 이벤트 오픈 시 내게도 수익 배분이 된다. 이 이벤트 시즌마다 ‘장사’의 매력 - ‘인류애 상승’을 느끼게 되더라. 또 글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 간헐적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 수업의 학생들은 내가 존경하는 다른 음악가들이었다. 생활 속 유쾌한 구석이 많다.
글쎄, 나는 좋게 말해 프리랜서이다.
휴일이 딱히 없고 꾸준히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으며 나날이 처참한 수요의 음악을 오로지 내 재미를 위한 이기심으로 매달려 좋은 소리 하나 더 내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내 카타르시스와 대중의 입맛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을 확장시켜 비주류 음악으로도 저작권료를 적잖이 벌 수 있는 아티스트가 죽기 전엔 될 수 있겠지 꿈꾸면서. 내 소리를 찾는 곳엔 언제나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고, 항상 고개가 숙여진다. 천재들의 놀이터다 보니 나 같은 무재능 평민에게 겸손의 미덕은 필수 덕목이다.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기도에 가끔 응답하사 통장이 다채로운 달의 수익은, 연이어 좇아오는 적자의 달을 위한 보험금일 뿐.
나는 고작 한국 나이로 서른둘이니까.
‘고작, 서른둘이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긍정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신 음악 그 자체와 하느님 아버지, 지금도 골방에서 연습 중일 내 학생들과 이 글을 마치면 식사 후 피아노 앞으로 슬금슬금 기어가 볼까 하는 나 자신, 그리고 이런 나를 찾아주는 이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며칠 전 남편과의 대화에서, 가족과 직업은 인간의 선택이 아닌 신의 영역이라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 역시,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 참고로 내 남편의 어렸을 적 꿈도 만화가로 나와 같다.
그는 만화가에서 건축가로,
나는 만화가에서 음악가로.
추천 음반 : Herbie Hancock [River: The Joni Letters]
(Grammy awards에서 올해의 앨범상과 최고의 컨템포러리 재즈 음반 등 여러 상을 휩쓴 명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