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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Jun 06. 2023

지망생(志望生), 백수를 곱게 꾸며 말하기

시선 22화 [직업] by 선장

주간 <시선> 스물두 번째 주제는 '직업'입니다.



나이 서른넷. 아니 6월 28일부터는 당당히 서른셋.


회사 동기들은 이제 과장이 되었고, 동갑내기 지인은 연봉 억을 찍었으며, 제일 친한 친구가 대표로 있는 사업은 탄탄하게 자리를 잡아 직원 수만 열댓 명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오랜만에 만날  “요즘  하고 지내냐 질문을 받으면 어김없이 작아진다. 나는 백수다.




3년 전 나는 별 탈 없이 다니던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였지만 퇴사하는 데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모아둔 돈도 충분했으며, 성과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고, 관련 업계 선배들이 자신감을 심어줬다. 오랜 꿈이었다. 그리고 꿈만이 아닌, 곧 현실이 될 미래라 믿었다.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심리학과 출신인 내가 퇴사 후 맨몸으로 부딪히기에는 막막한 분야였지만 작법서 공부, 단편영화 연출, 기성 작가들과의 합평을 하며 겨우 ‘작가 지망생’이라 불릴 수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슬슬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찍었던 영화는 독립영화제작사의 후원을 받아 OTT 플랫폼에 유료 배급을 시작했다. 작가들과의 스터디에서 썼던 느와르 기획안은 웹툰 제작사와 계약을 했고, 작가님들의 시나리오 피드백도 언제나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무의미했다. 영상물 작가로 입봉하는 가장 확실한 길인 제작사 공모전에는 번번이 탈락했다. 본선에 진출하고 최종심에 올라도 그뿐. 놀라울 정도로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고,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다잡기-글쓰기-탈락-좌절-마음 다잡기>의 무수한 굴레를 겪으며 시간이 흘렀다.





해가 바뀌고 몇 차례 공모전을 지나니 만년 고시생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냉정한 현실과 타협하기도, 그렇다고 미련을 저버리기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태 해온 노력이 아까워 돌아갈 수도 없다. 결국 ‘이번이 마지막이다. 올해까지만 해보자.’는 다짐으로 회귀하고 만다.


회사를 다니며 모아둔 돈은 점점 소박해져 갔다. 소비를 대폭 줄이는 건 쉬웠으나 쏠쏠하게 용돈벌이를 하던 블로그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오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얼마 전, 카드 승인 거절 문자가 왔다. 미납 요금이 크지 않은데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급한 불을 끄려면 역시 엄마 외에는 연락할 사람이 없었는데, 또 무슨 자존심일까. 제일 가까운 가족인데도 통장 잔고가 바닥나니 스스로의 바닥까지 드러난 기분이었다. 자신 있다며 큰소리치고 퇴사했던 터라 더욱이 그랬다.


엄마에게 보낼 카톡을 썼다, 지웠다 수차례 반복했다.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전체 보기’를 눌러야만 볼 수 있는 장문의 카톡을 전송했다. “~~ 까지 꼭 갚을 거다." 라며, 또 “올해는 생필품도 다 사서 더 이상 돈 쓸 일이 절대 절대 없어.”라며. 구구절절 덧붙이자 괜히 초라했다. 엄마에게 그 정도 여유는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미안했다. 나는 낡은 어미 캥거루 주머니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고 있는 캥거루족이 되어있었다.





지칠 대로 지치자 어느 순간 이렇게 ‘지망’만 하고 있는 스스로가 뻔뻔하게 느껴졌다. 어떨 땐 오히려 ‘작가 지망생’ 보다 ‘백수’라 소개하는 것이 담백하고, 간단하고, 마음이 편하다. 물론 지금의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 도전하고 있음을 티 내고 싶을 때에는 ‘지망생’만 한 단어가 또 없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단어가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다.


특히, 얼마 전 아버지를 통해 소개받은 그 사람에게는 지망생이란 백수라는 단어를 덜 한심해 보이게끔 꾸민 단어에 불과했을 것이다. ‘소개팅’이 아닌 ‘선’ 임을 재차 확인시켜 주듯, 그는 처음 만난 날부터 소비 패턴과 더불어 남녀의 집안일 분배에 대한 견해를 물어왔다. 아침을 먹지 않는 우리 가족에 익숙한 나는 “왜요, 혹시 아침에 9첩 반상 차려 드셔야 되고 그래요?” 라며 장난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가 “어... 9첩 반상까진 아니라도 당연히...” 하고 얼버무리며 횡설수설하는 것이다. “네...?” 나는 예상과 다른 반응에 당황했고 일순 정적이 흘렀다. 애써 유예해 온 고민이 때가 됐다며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일 안 하는 사람이 집안일을 다 하는 게 맞지 않나요?” 그가 물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꽤 긴 시간을 할애하여 작가가 되기 위한 나의 계획과 목표를 말한 뒤였다. 나는 쑥스러울 정도로 진지했는데 그에게는 초등학생이 장래희망을 꿈꾸는 양 비친 듯했다. 그 까진 아니라도 지망생으로서 수입이 없는 내가 집에서 글을 쓰는 일은 그에게 그저 백수의 취미생활일 뿐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고된 일을 하는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십분 이해가 간다. ‘선’ 자리에 나온 이상 굳이 밑지는 장사를 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하지만 나는 그가 내 꿈을 가벼이 여기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당장 그 어떤 성과도 기대치 않는 티가 나도 너무 났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집에 가는 길 내내 생각해 본 끝에 요상한 결론이 나왔다. <결혼하고 싶은데 아침을 기깔나게 차릴 자신이 없다면, 일단 나는 최대한 빨리 등단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희박한 확률이므로. 결혼하려면 재취업만이 답이다.>


? 이 무슨?


마음에 썩 드는 결론이 아니었다. 어떻게 도망쳐 나온 회사인데 재취업을 고려하고 있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물론 인륜지대사에도 다 때가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업을 위한 타이밍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급급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연애와 결혼을 미뤄뒀다.





상상력과 기술보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이 용기라고 한다. 거부, 비웃음, 그리고 실패를 무릅쓸 수 있는 용기. 하여 자신감과 의욕이 저점을 찍어도 계속 주문을 외워본다. ‘저점이 아니고 전환점이다.’


가끔, 아니 자주 의심이 들긴 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정해져 있다고도 생각해 본다. 그 큰 보상을 받기까지 여러 장애물들이 있겠지만, 세심히 설계된 이야기의 필수 요소라 여길 거다. 성공에 대한 복선 역시 하~도 은밀하게 깔려 있어 눈에 띄지 않을 뿐이라 치자. 괜찮다. 그럴수록 극은 막바지에 임팩트 있는 반전과 카타르시스를 줄 테니.


일단 아직은 포기할 수가 없다.




추천영화: <라라랜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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