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쿵쿵쿵.
손바닥 위 약의 색깔은 다채롭다. 연분홍, 살구색, 하늘색, 흰색. 파스텔 톤 약들의 조합이 제법 아기자기하다. 얼마 전, 곧 태어날 친구의 아기를 위해 배냇저고리를 사러 갔던 때를 회상한다. 그때 봤던 색상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눕는다.
쿵쿵쿵.
침대에 곧게 누운 채로 어김없이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는다. 귀에 이어 플러그를 꽂으면 더 생생히 들리는 맥박. 눈을 감고 템포가 잦아 들길 기다린다. 얼마나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다. 걸리는 시간은 그날 내 불안의 척도에 따라 매일 다르다. 어디에서 온 불안인지, 무엇이 날 그리 괴롭히는지 제대로 보는 일은 난이도가 높다. 고로 나조차 모른다. 매일밤 뽑기 운이 좋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지속되는 불면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지 십오 년이 됐다. 이렇게 살 필요 없는 선택을 떠올린 적은 많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는 와중에도 쿵쿵쿵. 심장은 눈치 없게도 멈출 줄을 몰랐다. 쿵쿵쿵쿵쿵! 하고, 세차게 두드린다. 마음은 다 죽어가는데 심장이 이리도 강렬히 살아있다. 억척스럽고 거추장스럽다.
문득 솜사탕같이 사랑스러운 색감의 배냇저고리를 입은 채 숙면을 취하는 친구의 아기를 상상한다. 그 옆에 구부려 누운 내 모습을 잠시 떠올리다 억지로 멈춘다. 상상의 꼬리를 애써 잘라낸다. 여전히 심장은 쿵쿵쿵.
오늘은 조금 더 걸리려나 보다.
그리고 안다.
그래도 괜찮다는 걸.
'규칙적인 생활, 수면 최소 2시간 전 블루라이트 차단, 카페인 섭취 제한, 하루 한 시간 햇빛 쬐며 걷기, 4-7-8 호흡법, 취침 전 독서 (물론 침대에서 말고), 오후 2시 전 땀나는 운동, 아니 그냥 엄청나게 빡센 막노동'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지긋지긋한 15년간의 불면 일지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