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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Sep 02. 2024

불면증 있다면서 왜 커피를 마셔?

늘 따라오는 바로 그 질문

나는 늘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러면서 무슨 불면증이 있댄다.


"그러니까 밤에 잘 못 자지." 


언제나 따라오는 말이다.

뭐 사실 나라도 그렇게 말하겠다.




"커피를 끊어."는 어쩌다 내가 잠을 잘 못 잔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됐을 때 "몸이 덜 피곤해서 그래. 운동 빡세게 해 봐."와 함께 세트로 듣는 조언이다. (자매품: 나가서 비타민D 좀 쫴, 누워서 숏츠 보지 마, 너 회사 관두고 규칙적으로 생활 안 해서 그래)


맞는 말이다. 날 위한 말이었을 거고. 하지만 내가 그런 기본적인 수면위생도 지키지 않고 불면증을 토로하는 사람으로 보였다면 좀 억울하다. 그 정도의 상식도, 의지도 없는 '패션불면증' 혹은 ‘불면증 호소자’는 아니다.


정신과에서 처방해 준 저녁 약은 효과가 꽤 오래간다. 다음 날 오전을 넘어 오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무기력함과 늘어짐을 쫓기 위해 커피부터 마셔야 한다. 의사 선생님이 권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게 커피는 아침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물론 되도록 한 잔만, 오후 12시 전에 마셔야 하지만.


저녁약의 용량을 줄이고 커피를 끊은 적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약 용량을 '조금' 줄이면 수면의 질은 그에 따라 '조금'이 아닌, '큰' 폭으로 떨어졌다. 얕은 잠만이 이어져 1시간 간격으로 깨는, 아예 약을 먹지 않고 자는 날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밤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좀 재미없고, 무엇보다 길다. 대부분 이런 말들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 모두 각기 다른 힘듦을 견디며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데, 그리고 지나가는 말로 '커피 마시지 말라'고 했을 뿐인데. 나 혼자 어디 긁힌 사람마냥 열내면서 해명하면 얼마나 황당할까. 생사를 오가는 치명적인 병도 아니면서.


그래도 그놈의 '커피 금지' 훈수를 들을 때면 푸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설명하기 전부터 나의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받고 싶었다. 의지박약으로, 한심하게 보이는 게 죽기보다 싫은 나는 남이 스치듯 뱉은 한 마디에 억울한 걸 넘어 서럽기까지 했다. 맞다, 과잉해석하고는 혼자 긁혔다. 비몽사몽 약에 취해 헤매던 숱한 아침과 낮들이 생각나 제대로 움푹 긁혔었다. ’니가 나라도 마실걸!‘ 하며.


사실 정말이지 별 일도, 별 말도 아닌데.


여러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들으면 어느 순간부턴 별 일과 별 말이 되곤 한다. 처음 몇 번은 똑같은 말을 듣는 게 지겹고 귀찮은 정도다. 대충 넘길 수 있다. 그러다 점점 횟수가 늘어나면서부턴 ‘어라? 또?’ 하고는 멈칫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집 가는 길 내내 묘~하게 찝찝해서 계속 곱씹어본다. 몇 번은 대충 넘기긴 무슨, 처음부터 의식 뒤켠에 차곡차곡 쌓아뒀었나 보다.


나 혼자 열내면서 몸상태를 다다다 해명하고 싶은 욕구는 어디서 오는 걸까. 피해의식 탓인지도 모른다. 한심해 보이기 죽기보다 싫다면서, 어쩌면 내가 나를 제일 한심하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행여 내가 그런 사람인 걸 들킬까봐 두렵고 초조했다. (중요한 건 아무도 날 한심하다 하지 않았다. 그냥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인정욕 탓도 있겠다. 나를 언제나 따라다니는 그놈의 인정욕. 굳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과 성을 다하는 의지충만 인간’으로 비춰지고 싶은 과욕 말이다. 사실 내게 진심인 몇몇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것을. (중요한 건 아무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냥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피해의식과 인정욕은 소중한 사람들의 값비싼 마음과 사려 깊은 이해심을 잊게 만든다. 그리고는 가깝지도 않은 사람들의 말에 얽매이게 하고, 간혹 억울한 누명까지 씌운다. 그러니 늘 경계해야 한다. 대수롭지 않게 넘겨야 한다. '커피 마시는 불면증 환자'보다 '망상증 환자'가 훨씬 더 한심해 보이니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누가 커피 마시지 말라고 한다면 그냥 커피 마시지 말라는 뜻이라는 거다.



지금 내 모니터 위에는 언니의 유치원 시절 증명사진이 붙어 있다. 또 등 뒤엔 고양이 옹심이가 팔자 좋게 침대에 누워 있고. 둘의 나른한 표정을 자꾸만 보게 된다. 조곤조곤 상냥한 모습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긴 긴 밤들을 설명하고 싶어질 때마다 언니와 옹심이를 떠올리기로 했다. 그러면 왠지 모든 게 대수롭지 않아 진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또 너그러워진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언니의 사진. 늘어져있는 옹심이의 젤리.

있는 그대로다. 이미 충분하고, 다 별거 아니고, 또 그럴 수도 있고. 대충대충. 느긋느긋.


그렇게 별거 아닌 건 그냥 별거 아닌 대로 두는 연습 중이다. 구태여 힘을 들여 설명하기엔 우리 집 옹심이의 변비가 더 급한 일이니까. 단어 하나하나 꼬아서 해석하기엔 당장 내가 오늘 밤 잘 자는 게 더 중한 일이고.


평온하다. 그러면 됐다. 방금은 언니의 사진을 조금 더 오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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