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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Nov 09. 2022

온전한 치유로 나아가는 방법

아픈 이들을 향한 작가의 주문, <눈감지 마라>

재미있는 제목의 연작 소설이다. 작가는 이기호.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등을 통해 짧은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별 볼 일 없는 지방대를 갓 졸업한 청년 둘이 펼치는 다채로운 알바 활극?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내용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동안 유쾌한 소설을 써 왔던 작가였기에 낄낄대며 웃을 수 있길 기대했다. 요즘 유행하는 짧은 소설이니 깊이는 좀 얕아도 괜찮거니 생각했다. 조금 읽어보니 위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짧은 분량에 비해 깊이도 깊었다. 내 예상이 틀렸다.     


정용과 진만은 변변치 않은 지방 대학을 갓 졸업했다. 이들은 출장 뷔페와 고속도로 휴게소, 편의점, 식당 등등 할 수 있는 각종 알바를 전전한다. 당연히 알바는 쉽지 않다. 육체적으로 너무 고되고, 일을 잘 못하는 다른 알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진다. 받지 못한 임금을 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기도 한다. 천신만고 끝에 한 회사에 힘겹게 들어갔지만, 자신이 원치 않는 영업까지도 해야 하는 실정이다.     


고용주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아르바이트생들의 고통은 더 분절된 형태로 오는 것 같았다. 고통도 시급으로 왔다. (214쪽)     


이 시대 많은 젊은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쭉 훑어보는 기분이다. ‘내가 저 나이 때도 저렇게 힘들었을까?’하며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다. 정용과 진만은 이렇게 힘든 알바를 해야 생활비를 벌고, 가까스로 집세를 낼 수 있다. 그 방 역시 변변치 않다. 찾고 찾은 보증금 없는 월세 30만 원짜리가 오죽하겠는가.      


밤마다 웅웅웅 어디선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옆방 남자의 코 고는 소리와 위층 사람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심지어는 누군가의 이 가는 소리까지. 소리는 어두워질수록 더 커졌고, 더 깊어졌다. 정용은 그게 다 가난한 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운데가 텅텅 빈, 합판으로 세운 벽…… (47쪽)     


이 소설은 정용과 진만의 내용으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둘이 처절한 생존기를 몸으로 써 내려가는 동안, 이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공장을 접게 되어 미안한 마음에 출장 뷔페를 불러 직원들에게 밥을 사는 사장님. 자취방에서 혼자 지내며 매일 홀로 술마시는 40대 중반의 기러기 아빠. 통닭집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다가 갈등을 일으키는 노부부. 설거지 일이 영 서툴러 다른 알바에게 민폐를 끼치는 삼계탕집 아주머니. 하루종일 영업용 웃음과 멘트를 장착해 판촉 활동을 펼쳐야 하는 직장인.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아파트 경비원. 아무 데나 들어가 타월이나 면봉 같은 걸 파는 할머니까지.     


작가는 이들의 퍽퍽한 삶을 정용과 진만의 눈을 통해 스케치한다. 이들이 느끼는 현실의 냉혹함을 담담히 전할 뿐이다. 작가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한다.     


진만은 생각했다. 왜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 있는가? 우리가 뭐 뱀인가? (141쪽)     


한편으로는 ‘너무 피상적으로 이 사회를 그려내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저 ‘요즘 젊은이들이 힘들게 살아가는구나’를 새삼 깨닫고, 무난한 내용으로 끝나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소설은 새드 엔딩으로 흐른다.      


멍했다. 왜 이런 엔딩을? 작가가 약간 야속했다. 그래도 소설인데 좀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줄 수는 없었을까. 숱한 역경 속에서도 주인공이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는 흔한 영화들처럼 끝내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속상하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편의점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정용과 진만. 이들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폭설이 내리는 산 정상에 이들만 내려놓고 나 혼자만 하산한 듯 했다. 계속 마음이 헛헛했다.    

  

이런 상념 속에서 다시금 책 표지를 보았다. 『눈감지 마라』. 순간 책 제목이 강렬히 다가온다. 아. 작가는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한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나같이 마음이 헛헛했을 독자에게 단 한 가지 주문하고 있었다. 바로 “눈감지 마라”는 것.     


우리가 현실에서 정용과 진만, 그 외의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가만히 있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순 없더라도,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순 없더라도 최소한 눈이라도 똑바로 떠서 이들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들의 아픔과 안타까움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아직도 온 국민을 아프게 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솔직히 나 역시 바쁜 일상에 함몰되어 이 사건을 제대로 추모하지 못했다. 매일 뉴스를 살펴보긴 했지만, ‘몇 명이 죽었고, 누구에게 제일 큰 잘못이 있는지, 왜 더 큰 참사로 이어졌는지’ 같은 기본적인 정보만 찾기 바빴다. 나는 머리만 사용했고, 마음을 쓰지 못한 것 같다.    

  

참사에서 사랑하는 자녀를 가슴에 묻은 부모님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눈물을 삼킨 구조대원들, 참혹한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렀던 상인들, 그 자리에 있진 않았지만, 내 일처럼 여겨져 한숨을 쉬는 이삼십대 젊은이....     


이들이 있다. 아직 아물지 못한 아픔과 상심을 간직한 채 이들이 있다. 갖은 핑계를 뒤로 하고, 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라볼 때 온전한 추모가, 치유가 시작된다. 이 책의 제목, 작가의 간곡한 당부를 이제는 나의 신념으로 바꾸어 본다.     


“눈감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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