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중일기 15화

"이것 좀 드셔보세요"

나를 지켜준 고마운 사람들

by Philip Lee

“이것 좀 드셔 보세요”


바쁜 저녁 장사 끝나고, 멍 때리고 있을 때 누가 찾아왔다. 상가의 피자집 아주머니. 피자 두 쪽을 갖고 오셨다.

“아이고. 웬 피자에요?”

“주문이 잘못 들어가서. 지금 막 한 거예요. 드셔 보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피자.jpg


피자로 늦은 저녁을 때우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이 삭막한 때, 그래도 정이 있구나...’ 잘못 만드셨으면, 기분이 좋지 않으셨을텐데... 그럼에도 나눠주려는 마음이 고마웠다. 문득 가게를 하면서 만났던 여러 손길들이 생각났다.


고마운 사람들


처음에 가게 오픈할 때, 예쁜 간판을 달아주신 간판집 아저씨. 자기 가게 간판처럼 세심하게 작업하시고, 시트지도 깔끔하게 붙여 주셨다. 그분은 그냥 그 작업만 하셔도 됐는데, 조그마한 문패도 서비스로 주셨다. 그 당시 아저씨에게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조그만 애들용 스티커라도 못 드린 게 마음에 걸린다. 오픈 준비로 경황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문구점 주인인데...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제일 바쁜 시간인 오후 4시쯤. 한 아주머니가 유치원 생일선물을 사고 포장을 부탁하셨다. 무려 다섯 개. 가뜩이나 똥손인데다가 포장을 해 본 적이 없던 나. 가위로 포장지를 난도질하다시피하며 포장을 시작했다. 손님은 계속 오고, 마음은 더 바빠지고, 손은 더 무뎌질 때쯤.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포장이 아직 서투르시네. 같이 쌀까요?”

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예”하고 말하고, 얼른 포장지를 드렸다. 역시 두 명이 하니까 금방 포장이 끝났다. 벌써 5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생각 난다. 특히 선물 포장을 해야 할 때는 더.

물건 위치 가리키고, 물건 값 알려주는 건 외엔 거의 손님이랑 말을 섞지 않는 나. 그래서 아이들이랑도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없다. 그래도 한 명 생각난다. 중학생 여자애. 손님이 좀 뜸한 어스름한 저녁 시간에 가끔씩 와서 먼저 묻지도 않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내일 시험인데요. 공부 거의 안 했어요.”...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늘어놓는다. 살가움과는 거리가 또 먼 나는 “응. 그래” 식으로 대꾸만 하고, 별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어느 날, 그 애가 와서 “저 이사가서 다른 데로 전학가요.”라고 말했다. 그때도 난 새로운 학교 잘 적응하라고 따뜻하게 말하지 못했다. 오늘같이 손님이 없는 공허한 때에는 재잘대던 그 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 외에도 감사한 사람들은 많다. 몇 백원의 거스름돈을 쿨하게 받지 않고 “수고하십쇼”라고 나가신 할아버지. 꼬박꼬박 인사 잘 하는 아이들, 문구점 찾다가 간신히 찾았다면서 “오래도록 문구점 하세요.”라며 덕담해 주신 아주머니. 연휴 끝나고 남은 과일을 싸오신 분...


장사하면서 당장이라도 문 닫고 싶을 때가 있다. 그중 팔 할은 ‘사람’ 때문이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 내가 더러워서 장사 때려친다. 사람이 사람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할퀼 수 있나...


그럼에도 6년째 하고 있다. 이유는, 내가 문 닫지 않고 매일 열고 있는 이유는 역시 ‘사람’ 때문인 것 같다. 사람 때문에 생채기 난 마음을 보듬어 준 건 역시 사람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사람을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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