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과의 인터뷰에서 배운 것
“잠깐 인터뷰 하실 수 있나요?”
오후 5시쯤 되었을까. 문구점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가 잦아들 때쯤 누군가가 불쑥 말을 걸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초등학교 아이였다. A4 종이를 한 장 들고 서 있는. “애들, 다양한 직업인들 인터뷰 하는 게 숙제래요.”옆에 서 있던 아이의 엄마가 설명한다.
“지금은 하교 시간이라 아이들이 많이 다녀서 지금은 좀 어렵겠는데요.”
머리를 긁적이며(최대한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끝마치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니, 문구점에는 나와 아이, 아이의 어머님만 있었다. 아니, 누가 마술이나 부렸나. 머쓱한 표정으로 “예. 빨리 해 주세요.”라고 했다(이럴 거면 처음부터 흔쾌히 한다고 할걸).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물론, 종이를 보고). “안녕하세요. 저는 OO 초등학교 3학년 OOO입니다. 인터뷰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연습했으리라. 그럼에도 떠는 걸 보면, 내가 인터뷰를 하기에 편안한 외모는 아니었나 보다(윽, 자괴감). 본격적인 질문을 한다. 처음 질문은 쉬웠다.
“언제부터 가게를 시작하셨어요?”, “문구점에서 하시는 일은 무언가요?”
“응, 5년. 학생들에게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팔고 있어.”
짧은 대답을 연이어 하고(질문자가 제일 싫어한다는), 깔끔하게 답했다는 성취감으로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빨리 해치우려는 마음?).
“아저씨가 가게를 하면서 제일 힘들 때가 언제인가요? 또, 제일 행복할 때가 언제에요?”
(앗. 질문이 너무 쉽잖아.)
“사지도 않을 거면서 이것저것 만지고 가는 손님, 반말을 막 해대는 ‘개저씨’들을 만날 때 짜증나 죽겠어. 방학 때 뚝 떨어진 매출을 보면 밥맛도 없어. 내 아들보다도 어린 아이들에게 별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낼 때 힘들어. 늦잠을 더 자고 싶은데, 주말에도 어쩔 수 없이 가게 열어야 돼서 힘들어. 점점 좁아지는 자영업자의 입지가...”
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머릿속에는 가게 하면서 힘든 점 99가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내 앞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하고 있는, 아마도 역시 인터뷰를 빨리 마치고자 하는 아이가 있을 뿐. 그에게 이러저러해서 힘들다고 하는 건 의미 없지 않는가.
“응. 아침하고 저녁 때 아이들이 많이 와서 바쁠 때 힘들어.”
이렇게 별 의미 없는 답을 해줄 뿐이었다. 교과서적인 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언제 행복하냐에 대한 답이 남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이 직업이 너무도 행복해.”라는 파랑새 같은 답을 해주진 못했다.
“일할 수 있는 게 행복하지. 일한다는 것 자체가 보람 있어.”
다큐멘터리 <극한직업>에서 몇 번은 들어보았을 답을 해 주었다. 인터뷰는 끝났다.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쭈뼛쭈뼛 인사를 건네며 아이는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아이가 가고, 저녁 장사를 마칠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 나는 언제 행복하지?’
-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 흘리며 장사를 마친 후, 그래도 오늘 하루 잘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 항상 우리 애들 잘 챙겨주셔서(물론, 내가 아닌 아내가 챙겨줬을 것) 고맙다고 과일 몇 개를 가져오신 동네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 학교에서 갑자기 준비물이 생겨 ‘줄을 서시오’ 할 만큼 아이들이 밀려오고, 나중에 확 뛰어오른 매출을 확인할 때.
- 아침 장사 끝나고, 물건을 하러 도매상에 갈 때 라디오에서 내가 좋아하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흘러나와 휘몰아치는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에 전율할 때.
- 얼마 전 생일, 아내와 아이가 깜짝 파티를 해 주었는데,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카드를 받았을 때.
- 도서관에서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났을 때.
쭉 적어보니,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고되고 지난한 현재를 견뎌내고, 다가올 먼 훗날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문구점을 운영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가족들과 오붓하게 살아가는 ‘지금’. 내가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건 오직 지금뿐이다.
아까 인터뷰 때 떠올렸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힘든 점을 생각하면 힘들어지고, 행복한 것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굳이 힘든 점을 생각하지 말자. 그 시간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찾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행복을 만나고 싶다.
휘게는 활기로 가득하다. 휘게에는 매뉴얼이나 진언이 없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지에 관한 규범도 없다.
단지 때때로 삶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서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다.
휘게는 소소한 것, 일상적인 것, 익숙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 독려한다.
매일을 기념하고, 사물보다는 경험을 우선시한다.
-<오늘도 휘게> 샬럿 에이브러햄스 지음
잠깐 인터뷰를 하고 떠난 3학년 아이. 그가 귀중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잊지 말아야겠다. 행복보다 힘든 점이 많다 여겨질 때, 인터뷰를 떠올려봐야겠다. 자, 오늘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