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산다는 것?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10시 넘을 때까지 가게 문을 열었다. 1년 중, 제일 바쁜 시기. 학기가 시작되어 각종 준비물을 사러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들이닥쳤다. 매년 하는 것임에도 녹록치 않다. 장사가 잘 되어 기분은 좋지만, 골병 들기 딱 좋다. 이럴 때면 손님이 하나도 없어 하릴없이 손님을 기다리던 방학 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참 철부지 같다.
다행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대목은 끝났다. 고작 일주일. 남은 1년동안 지금보다 바쁜 날은 찾기 힘들 것이다. 그때는 또 정신없이 바빴던 3월 초를 그리워하겠지. (인간이란 게 원래 그렇다.)
문구점을 연 지 5년이 되었다. 그 말은 올 여름에 재계약을 한다는 말이다. 계약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기적처럼 5년을 생존했지만(근처 문구점이 네 곳이 문을 닫았다), 재계약해서 다시 한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점점 떨어지는 매출, 각종 스트레스와 일에 치이는 삶, 휴일이 없는 삶....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첩첩산중으로, 가게 근처에 큰 문구점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휴... 가뜩이나 가까운 마트와 저가 생활용품점으로 손님들의 발길은 옮겨가는데... 아예 다른 일을 해볼까? 역시 두렵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모든 걸 받아주고, 용납해주던 유치원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선생님 말은 잘 들을까? 아이들과 잘 어울릴까? 학교밥은 입에 맞을까? 가게에 있으면 갖가지 걱정이 들이닥친다. 이게 학부형의 마음인가.
올해 초, 책이 나왔다. 감사하게도 지인들은 책을 샀고, 어떻게 책을 쓰게 되었냐며 칭찬도 해 주었다. 나도 스스로 대단하다 여겼다.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바쁜 상황에서 책을 냈다는 것이 대견했다. 겉으로는 겸손한 표정으로 “운이 좋았어요.” 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반대였다. “내가 바빴지만, 그 와중에 책까지 썼습니다.” 틈이 나면 내 책을 인터넷 사이트에 검색해 보고, 판매지수 등을 확인했다.
‘나중엔 더 좋은 출판사에서 내야지. 다음에는 이런 책을 내면 어떨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상상은 자유니까).
그러다보니 가게에서 멍 때릴 때가 많았다. 바쁘지 않은 방학이라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정작 다음 책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있던 것. 글을 쓰지 않았다. 본업인 문구점 일도 등한시했다. 빠진 물건을 채워 놓고, 진열하고 팔았다. 문구점 돌아가는 최소한의 일만 한 것이다.
두어 달 동안 나는 병에 걸렸다. 작가병. 작가가 되었다는 것에 ‘자뻑’하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이랄까. 내가 작가라는 사실만 생각해도 좋았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던 목동 나르시스처럼... 나중에 A급 작가가 되면 지금의 지난한 생활도 다 지나갈 것 같았다.
내 책 제목은 『나답게 산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오히려 책을 내고 나서 나답게 살지 못했다. 이상에 빠져 허우적댔다.
문구점이 위치한 상가의 빵집이 문을 닫았다. 십여 년 이상 한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평소에 교류는 없어 자세한 상황은 듣지 못했지만, 다른 곳에서 가게를 하려는 모양이다.
밤 10시에 가게 문을 닫고, 빵집을 지나치는데, 그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제빵 기계들을 거의 뺀 상황에서 아저씨 혼자 앉아 손님을 맞고 계셨다. 나중에 아내 말을 들어보니, 종일 가게에 앉아 손님을 맞이했다고 한다. 가게 오픈을 생각만 해도 정신이 없었을 텐데...
짧지 않은 시간, 자리를 지켜온 빵집. 그 감사와 아쉬움을 손님들은 표현했을 것이고, 아저씨는 그동안 먹고 살게 해 주었던 손님들에게 끝까지 감사를 표현했으리라...
왠지 찡했다. 문구점을 마치는 날.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쁜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만 가득 차 있진 않을까. 아니면 빵집 아저씨처럼 마지막 날까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물건을 팔까.
주저하지 말고 경험에 뛰어들라. 문제에 대한 해답을 타인에게서
빌리려 하지 말고 그 문제를 살아야 한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이다.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예전에 봤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가게 운영,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 앞으로의 진로, 40대의 불확실성... 이 문제들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나... 그저 빨리 문제가 해결되길(나의 의지가 아니라 저절로) 바라고 있진 않을까...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겪은 문제들이 결국엔 내 생활의 자양분이 되었다. 풀기 어려운 문제로 진이 빠진 적도 숱하지만, 결국 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내가 더 자라난 것은 덤이었다. 문제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신비였다.
비록 당장은 힘들고 피하고도 싶지만, 내게 주어진 문제를 겸허히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곧 나답게 산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맞닥뜨릴 문제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