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가 바라는 것 몇 가지
2019년이 밝았다. 어떻게 보면, 달력 한 장 바뀐 것밖엔 없지만, 부족했던 한해를 결산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물론 20~30대의 철없던 시절처럼 무작정 장밋빛 희망을 품진 않는다. 그럼에도 새해가 밝았다는 것, 1월 1일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다. 설렌다. 새 마음으로 다시 걸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게 좋다. 그게 희망이다.
사실, 올해 2019년도에는 특별한 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네잎클로버 밭을 발견한 것처럼 행운이 줄 서서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빠르면 1월에 나올) 내 책이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국 서점에서 나를 부르고, 알라딘이나 예스24에서 인터뷰 요청을 하진 않을 것이다. 문구점이 대박 나서 <서민 갑부>에서 예능부장이 직접 섭외 전화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며칠 전과 똑같은 일상을 365일 살아갈 것이다. “어디 있어요?”-“그거 저쪽에”, “얼마에요?”- “천 이백 원”의 짧은 대화가 무한대 반복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뿐이다.
바뀌는 것도 있다. 학부형이 된다. 아들이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간다. 작년 말에 취학통지서를 받았다. 기분이 묘했다. 학부형이라는 고작 하나의 타이틀을 얻었지만, 책임감은 결코 작지 않다.
올해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처럼 누구나 우러러보고, “저 사람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인격의 완전체야!”라는 말은 들을 수 없어도, 진짜 조금이라도 작년보다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조금 더 괜찮아진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도 많이 오염되고, 퇴색해져버린 단어이기에 다른 단어로 대체해 본다. 음. '배려한다’ 정도가 좋지 않을까.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 먼저 적용해야겠다. 전에는 아내의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집안일을 했다. 집안일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임을 머리로는 알지만 손과 발이 몰랐다(모른 체 했었나). 이젠 스스로 찾아 해 보리라.
아직 모든 게 서툴고 느린 아들에게도 “왜 이렇게 늦어!”라고 다그치기보다,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고 말없이 기다려 주리라. 나 역시 지금도 여러 면에서 서툴고 부족하지 않나.
‘조금 더’를 조금 더 넓혀 그냥 지나쳤던 사람들에게도 말을 걸어보고 싶다. 여태까지 인사만 드렸던 아파트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이젠 한마디 덧붙이리라. “식사는 하셨어요?” 아주머니가 ‘이 사람이 새해부터 왜 이러지? 밥을 잘못 먹었나?’라고 혼잣말을 할지라도..
가게에 항상 쳐들어오는(진짜 맹렬히 돌진한다) 초딩들에게도 마음 한번 굳게 먹고 말을 걸어 보리라. “오늘 뭐 재미있는 일 있었어?”... 너무 오글거린다면 “이거 신상인데, 한번 써 봐”라는 직업성 멘트라도....
‘조금 더’와 함께 신경 쓸 것이 있다. 바로 ‘조금 덜’. 먼저, 조금 덜 바쁘겠다. 항상 바쁘게 살아왔다. ‘바쁘게’ 살다보니 바빠졌고, 바쁜 삶을 잘 살기 위해 나는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서 안 바쁜 날에도 바쁘게 살았다. 안 바쁜 날에도 스스로 바빴다.
바쁘게 일을 했고, 바쁘게 밥을 먹었고, 바쁘게 사람과 대화했다. 바쁘게 1년을 살아온 것이다. 그래봤자 남은 것은 지친 몸과 마음뿐. 바쁨의 정도만큼 멀어진 건 사람과의 관계였다. 바쁨의 정도만큼 나를 돌아보진 못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급히 가다가도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고 한다. 왜 그럴까? 행여나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란다. 그동안 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이젠 기다려야겠다. 같이 동행해야겠다.
한 가지 더, 조금 덜 화내겠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화를 내왔다. 화를 낼 때 “이번 경우는 화를 내는 게 마땅해!”라며 머리를 굴려 합리화를 한다. 조금 있으면 화를 낸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화를 안 낼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런 일에 화를 냈지...’ 얼굴이 빨개졌다. 화를 내도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뿐.
이해할 수 없는 손님이 내 마음을 뒤흔들 때도, 새로운 진상이 와서 “이 사람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라며 난감할 때도 우선은 화를 내지 않겠다(라고 썼지만, ‘조금만 화를 내겠다’로 바꾼다).
‘조금 더’와 ‘조금 덜’의 균형을 맞추어 올해 살아가겠다. 앗, 두 가지가 섞이면 안 된다. ‘조금 더 화내고, 조금 덜 이해한다면...’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 될 뿐. 내년 초의 계획은 벌써 세웠다. 올해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내후년은 당연히 내년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이렇게 매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된다면 어떨까. 혹시 아는가. 나중에 아들의 아들에게 <큰 바위 얼굴> 동화책을 읽어줄 때, 그놈이 “할아버지 얼굴하고 닮았어요.”라고 이야기할지...(머리 크기만 같다고 한다면 곤란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올해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조금 더 (좋은 책을) 읽고, 조금 더 (정성스럽게) 쓰는 삶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