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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uka Azusa Sep 13. 2019

폭풍우가 치는 밤에 #1-04

Chapter 1. 동쪽에서 손이 오면 서쪽에서 귀인이 찾아오고

  현장으로 윤과 화평이 거의 동시에 들이 닥쳤다. 연락이 안 되었던 윤이 현장으로 온 것에 길영이 놀라기도 전에 그가 성큼성큼 준호를 향해 다가갔다. 희생자들을 위한 임종기도를 끝마치고 고 형사와 인사를 막 마친 준호의 뒷목을 콱 잡아 질질 끌고 가는 윤의 모습에 화평과 길영은 그가 자신들의 연락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윤이 준호를 끌고 가다가 두 사람과 마주치면서 이게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뒷목이 잡힌 준호가 마태오 신부님 이거 좀 놓으라고 버둥거리자 윤은 더 세게 준호의 수단 목소매를 붙잡았다. 커다란 신부 둘에 애꾸눈의 남자까지 옥신각신하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윤화평씨가 여기는 왜, 어쩌다..."
  "그러는 신부님 너는 왜 갑자기 다른 신부님을 질질 끌고 가."
  "그야 아가토 신부님께서 사고 치셨으니까 데리러 왔,"
  "아. 그 서울서 왔다는 또라이 구마사제?"

  화평이 전에 윤이 준호에게 또라이라 했던 것을 떠올리고 그대로 말하다 그 또라이 본인 앞인 것을 알고 입을 헙 하고 막았다. 준호가 뭐 임마? 라는 표정으로 화평을 한 번 보고 윤을 흘기며 노려보자 윤이 수단 목소매를 놓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준호가 표정으로만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윤의 발을 지긋이 밟았다. 윤은 아닌 척 꾹 참았지만 길영이 준호가 윤의 발을 밟은 것을 보고서 워커 발로 준호의 정강이를 폭 집어찼고 누가 제 다리를 찬 것인지 모르는 준호의 눈썹이 한 순간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 모든 과정을 보던 화평이 그만 웃음이 터져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숨기려고 제 입을 가린 손을 내리지 못 한 것은 덤이었다.

  "애초에 중요한 의식인 임종기도는 담임 신부님께서 하셔야 할 일인데 왜 아가토 신부님께서 가로 채세요. 지금 담임 신부님께서 형사 과장님 전화 받고 얼마나 놀라신지 아십니까? 당장 아가토 신부님 잡아서 본당으로 데리고 오시랍니다. 그 성격 좋은 담임 신부님께서 '잡아' 오라고 하셨다고요."

  윤이 제 할 말을 다하자 길영과 화평의 눈빛이 변했다. 이미 윤에게서 준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던 화평과 길영의 '저 사고뭉치, 또라이'라는 눈빛을 고스란히 받은 준호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부마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악령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깨어난 영감(靈感) 탓에 악몽을 꾸고 난 이후로 준호는 타고난 민감한 기질이 더 예민하게 되었다. 악몽을 꾸고 나서 길 위에 있던 지번주소 표지판까지 그대로 떠오르는 꿈이 심상치가 않아 기분이 찝찝한 와중에 과장의 전화를 받고 담임 신부에게 전하고자 받아적은 주소지가 제 꿈에 나온 그 곳이라 뒤도 없이 달려온 준호였다.

  "내가 어제 악몽을 꿨는데 그 악몽이랑 관련된 사건인 거 같아서 온 거야. 그냥 온 건 아니라고. 네가 아침에 새벽같이 나가서 말을 못 했는데 본당에 담임 신부님께서는 안 계시지, 전화는 계속 오지. 그러니 어떡해."
  "담임 신부님께서 성체성사 준비 중이신데 어떻게 전화를 받아요!!! 그러니 어떡해, 가 아니라 뭐가 있으면 저한테 그냥 오시면 될 거 아닙니까. 미사 준비 중이라 전화는 못 받아도 새벽부터 계속 준비실에 있었는데."
  "저기, 거 커다란 신부님. 혹시 영안(靈眼)이 있으세요?"
  "영안이요?"
  "귀신 볼 줄 아시냐고요."
  "귀신 볼 줄은 모르는데요."
  "예지몽을 꾸셨다면서요?? 그런데 귀신을 못 봐요??? 야, 최 윤. 이 분 구마 사제 맞아?"

   어이가 사라진 화평이 툭 하니 던진 말에 준호가 멍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자 그에게 질문을 하던 화평이 한숨을 쉬면서 준호를 몰아갔다. 화평에게 몰아 붙여진 준호는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윤을 바라 보았지만 윤은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했다. 화평은 처음 현장에 오는 순간 제가 모시는 해신이 저 안을 바라보며 새끼 범이 있구나, 하는 말을 하기에 그것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런 거였나 싶었다. 진짜 지가 범인줄도 모르는 새끼 범이 와 있네. 영적인 능력은 있지만 자각을 못하니 발현이 엉뚱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번화가로 나올 때만큼은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해서 평범해 보이지만 신기가 들어 날이 바싹 선 무당이 화평이다. 슬쩍 안대를 반만 걷어내고서 희게 변한 눈으로 사건 현장을 둘러보는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몇 번이고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또 둘러보는 화평의 얼굴이 의아함에 물들어 갸웃, 하고 기울었다.

  "여기 좀 이상한데. 아니 저렇게 많은 사람이 끔찍하게 죽었는데 이 근방에 영가가 하나도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요?"
  "응. 아니 뭐 이게 아무 일이 없는 땅이라 해도 보통은 정신줄 놓은 영가 하나 정도는 있거든? 사람이든 뭐 길에서 차에 치인 짐승이건. 터가 양기를 잘 품거나 한 명당이 아니면... 한도 없고 해도 없는 영가가 하나 정도는 떠돌아다니는 게 정상이야. 아파트나 이런데는 워낙 산 사람들이 많아서 잘 안 가기도 하지만."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곳에서, 귀신이 하나 없는 건 이상하다. 이거잖아, 윤화평. 내 말 맞지?"

  나 잘했지? 라는 표정으로 화평을 바라보는 길영의 표정이 살짝 부담스러워 고개를 끄, 끄덕 하고 숙인 화평이 다시 안대를 꼈다. 갑자기 눈을 반짝이는 누님의 눈빛을 외면하고 싶어 화평이 스르륵 고개를 돌렸다. 그런 화평이 슬그머니 윤의 등 뒤로 숨어 가듯이 들어가자 화평의 작은 몸이 쏙 가려졌다. 그런 화평의 모습에 윤이 피식, 하면서 웃는 표정을 준호는 의아하게 보았다. 윤이 웃는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어서였다.

  "이게 누구 소행인가가 문제지. 무엇보다 시신에서 나는 냄새가 많이 이상해. 사람들이 행색이 막 더러운 것도 아닌데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해서 아까 신참이들 거하게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게다가 대체 머리는 왜 저렇게 뭉개 놓은건지. 턱도 날아가서 치아 감정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을거래. 다행인 건 지문이 안 지워져서 성인들은 그나마 빨리 신원파악이 될 거 같아. 어린 애들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지금 같은 계절에 심각하게 썩은 내가 나면 죽은 지 진짜 오래된 거 아니예요?"
  "내 말이. 그런데 그게 아니래. 시신들은 대부분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더라고. 좀 웃긴게 그 냄새 말인데. 너무너무 독했거든? 근데 우리가 왔다갔다 하면서 환기가 되니까 순식간에 덜해졌어."
  "저기 형사님. 혹시 그 냄새 라는 게 생고기가 흐물하게 될 때까지 푹 썩은 냄새가 났었나요?"
  "네. 고기 쉰 내 맞아요. 신부님께서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부마자의 가장 큰 특징... 말로도르."

  준호의 말에 윤이 고개를 번득 들었다. 삿된 것이 씌여 육체가 문드러져 가는 부마자들에게서는 숨을 들이내 쉴 때마다 심한 고기 썩은내가 난다. 숨결 하나하나에 배여버린 그 지독한 냄새를 부르는 말이 '말로도르'다. 준호의 말을 알아들은 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길영이 두 신부의 반응을 보고서 고개를 기웃 거렸다.

  "부마자?"
  "빙의 된 사람이요."
  "야, 그럼 저 많은 사람들이 설마 다,"

  길영이 눈 앞이 캄캄해져 한숨을 쉬면서 눈을 감았다. 왜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화평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은 길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자 그녀는 제 머리를 구겨 잡아 뜯듯이 붙잡으며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길영은 법으로 심판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싫어했다. 어린 아이부터 아이를 가진 여인, 가족 이상으로 아끼는 자신의 가장 친한 선배까지 박일도를 잡으면서 많은 빙의자들을 봐 왔던 그녀이기에 더했다. 그들이 한 것이 아님에도 그들이 처벌을 받아야 받고, 사람의 힘으로 잡을 수 없는 존재에게 크게 다치거나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의 한도 풀어줄 수 없다 생각하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 사람들이 전부 다 부마자였는지, 아닌지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그렇다고 가정합시다. 이미 부마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다 세상을 떠났으니 구마 의식조차도 할 수 없다는 것부터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누구에게 악마가 들어 갔는지도 문제예요. 실마리라도 있어야 찾을 수 있을텐데."
  "야 최 윤. 구마 의식이고 뭐고, 이 사람들 영가조차도 이 곳에는 없어. 그런 놈이 사람이 찾을 수 있는 걸 남겼겠냐? 혹시 모르는 일이긴 해도 무언가 저 사람들을 해친 놈이 삿된 힘을 쓰는 것일 수도 있고."
  "......저기 마태오 신부님. 대체 이 분은 누구세요?"
  "제 친ㄱ, 아니 아는 무속인입니다."
  "헐. 최 윤 거짓말 했어, 너. 네가 감히 나를 이렇게 푸대접 하냐!?!?? 왜 내가 네 친구라고 말을 못 해!!! 어? 무슨 홍길동이도 아니고 친구를 왜 친구라고 못 불러??? 어!?? 최 윤이 윤화평 친구라고 말을 왜 못해!!! 야 너네 하느님은 신부라는 새끼가 같은 신부님한테 거짓말 하라고 가르치시디!?!??"

  화평이 버럭 짜증을 내자 윤이 피식 웃더니 능글 맞은 얼굴로 화평이 서 있는 쪽의 귀를 제 손으로 슬그머니 막았다. 그 모습을 보는 준호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평소에 제가 살살 긁지 않으면 세상 만사에 무관심하니 뾰족하게 가시가 돋은 성격이었던 윤의 저런 반응이 새삼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한 자리에 모인 네 사람이 전부 다른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동상이몽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었다.


 .. . .. . .. . .. .
  일단 길영은 피해자들의 신원이 확보되는 대로 윤과 화평에게 연락을 하겠다 했고 윤은 준호의 목 소매를 다시 잡고 본당으로 끌고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준호는 담임 신부에게 눈물콧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났다. 사제 서품을 받은지가 언제인데 신부라는 자각은 있느냐 부터 시작한 담임 신부의 호통은 준호 뿐만이 아니라 곁다리로 윤에게까지 튀었다. 룸메 관리를 못 해서 혼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하고서 윤은 조용히 신부의 꾸중을 들었다. 하지만 벌로서 참회 기도를 올린 다음 실습중인 부제들이 해야 할 일까지 전부 떠맡은 준호가 눈치를 보면서 볼멘 표정을 짓자 담임 신부의 혈압이 이제 곧 터질듯이 급상승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본당 청소를 하던 준호가 윤에게 마태오야 도와 줘, 하고 붕어입으로 조르자 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성체성사가 끝난 영체를 감실에 모시고 나왔다. 붕어입을 하고서도 빗자루질은 멈추지 않던 준호가 한 마디 대화도 없이 열심히 성체성사 뒷정리를 하는 윤의 뒤통수에다 대고 참지 못 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네가 예전에 구마했다는 악마랑 관계가 있거나 한 건 아니겠지...?"
  "그 악마가 돌아온다면, 이번에야 말로 제가 영원히 소멸시켜 버릴겁니다."
  "소멸이라니. 소환축출 하는 게 아니고? 악마든 뭐든 소멸 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소환축출이라. 설마 악마에게 전부 다 정해진 이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준호의 말에 윤이 화평을 희생시켜야 했던 날의 일이 떠올라 분노를 억누르며 준호를 돌아보았다. 툴툴거리며 짜증을 낼 때와는 다른 독기와 한이 어린 윤의 눈빛에 준호가 손 끝이 떨릴 정도로 굳어버렸다.

  "생치새, 아리나발마, 김사다함. 그리고 박일도."
  "고래(古來)에서부터 악마들의 이름은,"
  "그러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건데요. 김범신 베드로 신부님과 아가토 신부님께서 구마했던 악마에 대한 이야기는 제 스승님께 전해 들었었습니다. 솔로몬의 72악마 중 하나. 검은 갈기의 피투성이 얼굴을 가진 사자. 다행히도 딱 정해진 기록과 이름이 있는 악마더군요. 제가 만약,"

  화가 차올라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가빠오는 숨을 고르고서 윤이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이름을 알았으니 소환축출해서 지옥으로 돌려보내기 쉬우셨겠네요, 라고 하면 기분 나쁘실 거 아닙니까. 어린 학생이 뇌사 상태에 빠지고 계속 피를 토해 치료과정도 순탄하지 못 했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학생분도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정도로 노력하셨을 거고, 두 분 께서도 상상하지 못 할 고행과 희생을 하셨으니 악마를 내몰고 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겠지요."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낮에 만난 윤화평씨는 제 친구가 맞습니다. 모두를 위해서 한 쪽 눈을 잃고 온 몸에 악마를 봉하는 경문을 칼로 새기고서 자기 몸에 그 삿된 것을 담아 자결하려 했었던 제 친구이자 가족입니다. 지난번부터 아까까지 궁금해 하셨던 것은 이제 풀리셨습니까? 그저 뛰어난 영매라는 이유로 이십년도 전에 그 빌어먹을 악마새끼가 그 사람 몸을 뺏으려고 한 수작으로 가족들을 모두 잃었어요. 그 이름조차 확실치 못 한 귀신이 윤화평씨를 구하고자 했던 구마 사제인 우리 형을 잡귀에 빙의시켜 그 손을 빌어 내 가족까지 전부 죽였고 아까 뵈었던 강 형사님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그녀의 어머니까지 죽였습니다. 종래에는 우리 셋 모두를 죽이려고 했어요."

  윤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무력하고도 무력했던 지난 날의 자신이 떠올랐다. 화평의 행방을 찾을 수 없던 때에 길영이 했던 말은 아직도 윤의 가슴 속 깊이 베인 상처였다. 윤화평이가 그랬잖아, 울 엄마가 살려주신 귀한 목숨인 너를 꼭 살려달라고. 네가 이러면 어떡하냐고. 내가, 내가... 엄마랑 윤화평한테 약속하고 너 살린거란 말이야... 길영은 화평의 마지막 의지를 받아들였고 그 약속을 지키고자 마지막의 마지막, 모든 것을 얼릴 듯 차가운 수온에 그녀마저 위험했던 그 순간 단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 목숨을 걸고 시꺼멓고 깊은 밤바다로 헤엄쳐 자신을 구했었다. 그 일이 있었던 것이 이제 겨우 두 해 지났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이름이라도 알아내 뽑아 낼 수 있는 악마였다면... 그랬더라면 하는 그런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악마가 그러더군요. 자기 이름이 이젠 윤화평이라고. 그래서 부정했습니다. 내 온 몸이 부마자의 예언으로 살과 피가 썩으면서 날붙이에 찔려 아물지 못하는 위에 혈관이 터져 피를 토하고...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눈 앞에서 소중한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절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윤의 눈동자가 파랗게 빛나보일 정도로 그는 온 몸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사택에서 그저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던 윤의 절박함은 준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신학교에서도 6년을 함께 있었지만 그 시절에는 제게도, 제 동기들에게도 살가운 말 한 번 붙인 적이 없는 윤이었다. 굳이 준호가 윤의 심기를 벅벅 긁으면 퉁명스럽게 대꾸를 하기는 했지만 그건 반사반응이었을 것이다. 윤과는 반대로 워낙 사고를 쳐서 신학교에서는 친구를 만들기 힘들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사귄 친구들이 많은 준호다. 때때로 말 한 마디 없이 하루를 보내는 윤을 보면서 준호는 저렇게 마음이 메마른 사람이 사제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윤은 과목별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을 받는 모범생이었고 자원해서 사목 일이 힘들다는 시골 교구로 부임을 갔던지라 그저 좀 싸가지는 없는 듯한 깐깐한 꼰대지만 속은 따뜻한 녀석이라 생각했더니 아니었다.

  사제로서 살겠다 다짐한 신을 향하는 구도자의 마음 속에는 차마 씻을 수 없는 깊디 깊은 어두운 한이 넘실대고 있었다. 화평에게만 보였던 그 살가운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아 준호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원래 히든 캐릭터는 좀 사고를 빰빰 쳐야 제 맛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요?



.. .
Written by 桃華 明寿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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