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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김승주 Aug 14. 2019

3만 톤의 배를 멈추는 일

All Station Stand By


All Station Stand By


“삐~ 삐~ 삐~ All Station Stand By!

All Station Stand By!

Starboard Side Alongside!

Starboard Side Alongside!

삐~”


약 3만 톤의 컨테이너선 위로 육중한 소리가 퍼질 때마다 그 파동에 배가 떤다. 선내가 엔진의 기계 굉음으로 가득 차면 사람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진다. 승선한 지 2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소리.

밤 9시와 11시, 새벽 1시와 3시. 예고 없이 울려대는 방송에도 놀라거나 서두르지 않을 만큼 이젠 내게도 뱃사람의 여유가 생겼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은 뒤, 기름때 묻은 작업복에 한쪽 다리를 끼우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뒷주머니에 꽂아뒀던 목장갑을 꺼내 손가락이 끝까지 들어가도록 한쪽 끝을 잡아당겨 밀어 넣었다. 방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선박 특유의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다섯 층 내려왔다.

스티커가 부착된 안전모를 쓰고 턱 아래 벨트를 꽉 조여 맨 뒤 안전화로 갈아 신었다. 낡고 헤진 검은 작업화는 내가 몸담고 있는 환경을 대변해준다. 갑판으로 나갈 준비가 끝났다. 묵직한 철문을 열고 나 역시 분주한 대열 속으로 편입되었다.


‘안전! 안전! 이번에도 무사히!’


몇 번의 읊조림 후에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브릿지, 푸푸, 선미 감도 있습니까?”

“푸푸, 감도 좋아요.”

“감도 좋습니다. 우현 접안* 준비하겠습니다.”

(* 배를 육지에 댐)


먼 바다로의 항해를 마치고 드디어 입항이 시작됐다. 3만 톤이 넘는 컨테이너선 2항사로서 입항 시 나의 역할은 배의 선미에서 줄을 내려주는 것이다. 거대한 배를 부두에 붙잡아두는 로프의 두께는 큰 사과만 하다. 이런 줄이 선수와 선미에 각각 다섯 개씩 내려져 배를 붙들어 고정한다. 선장님의 명령에 따라 선수에는 1항사가, 선미에는 2항사가 현장을 지휘해 접안한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자칫하면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염려도 있기 때문이다. 성인 남성 한 명이 들기에도 버거운 줄은 기기를 통해 조절한다. 낚싯대의 릴 형태로 감겨 있는데, 레버를 조절해 줄을 풀거나 감을 수 있다. 입항 시는 대양과 달리 조금만 움직여도 주변의 다른 배나 부두와 충돌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입출항은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4주 동안 열두 개의 항구에 들어가는 우리 배는 적어도 24번의 All Station Stand By 방송과 입출항을 한다. 익숙해졌다고 방심할 때 위험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작지만 중요한 존재


27,799톤의 거대한 배를 부두에 접안시킨 후의 감정은 늘 특별하다. 배의 크기에 비하면 사람은 너무나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이 큰 배를 바로 그 작은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사실.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배 위에서 인간이 이루어놓은 기술에 경이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배 위에 오르면서 이 거대한 선박에 압도 되었던 첫 날을 기억한다. 먼 곳을 향해 떠나는 밤바다 위에 섰던 날의 마음은 복잡했다. 들뜨기도, 두렵기도 했으며 행복하기도, 슬프기도 했다. 어느새 눈가를 적신 눈물의 의미도 모른 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거라면 땅으로는 이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될 텐데. 육지를 완전히 벗어나 온통 물뿐인 대양 한가운데 선 나는 더는 약해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삶의 터전이며 생존을 위한 격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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