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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김승주 Aug 03. 2019

목표가 없어도 괜찮은 이유

배를 타고 싶었던 건



나에겐 목표가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책이나 강연을 보면 목표가 있어야 열심히 하게 된다고들 했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나한테 목표 설정은 까다로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어려웠다. 설정했다가 아니면 어떡하지? 나중에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생겼는데 다른 방향이면 어떡하지?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해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마라톤으로 치자면 그들은 출발선을 통과해 달리는 사람이었고 나는 아직도 출발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나보다 한 발 혹은 몇 발 앞서 인생을 살고 있고 나는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더 뒤처지기 전에 일단 달리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전속력으로 달리다 보면 어딘가 도착해 있겠지.


그저 오늘 이 순간, 주어진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기 때문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바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두려고 노력했다.



‘나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



지금의 나의 모토이자 학창시절 항상 마음속에 간직했던 말이다. 고등학생 때는 막연히 남들이 목표로 하는 유망 대학을 바라보며 공부했다. 그 시절 나의 생활은 다섯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학교, 기숙사, 공부, 밥, 잠. 그만큼 3년 내내 공부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결실을 잘 맺어야 하는 수능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고 부산에 남아 있기로 결심했다. 재수는 생각지도 않았다. 한 치의 후회도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다시 도전하더라도 지금껏 했던 만큼 할 수는 없었기에 덤덤히 결과를 받아들였다.


취직이 잘 되는 곳을 찾다보니 간호나 해양, 두 가지 선택지가 나왔고 간호는 성격상 아닌 것 같아서 망설임 없이 해양을 택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최선을 다했다. 시험기간에는 공부에 매진했고 학교 활동이 있으면 뭐든 참여해 이것저것 도전하다 한 대회에서 해양수산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실습항해사로 실제 선사의 배를 경험해보는 기회를 가진 후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배를 타고 싶다!





육중한 배가 조그마한 나로 인해 조종된다는 사실이 멋졌고, 바다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은 물론이었다. 처음엔 해양 대학을 나왔으니 배를 타봐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글로 배운 이론들이 하나씩 실제로 적용될 때마다 배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나는 원래 다수가 가지 않는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성들은 학교 자체에서 뽑는 인원수도 적었을 뿐더러 취업을 할 때 각 회사에서 뽑는 여성 해기사의 수도 적었다. 한 회사에서 1~2명, 많으면 4명. 특히 우리 기수가 취업 준비를 할 때는 한진해운의 쇠퇴로 더더욱 여성 해기사들의 취업이 어려웠다. 나는 여성 해기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나오지 않은 회사에까지 입사지원서를 내밀면서 배 타기를 원했다.


뭐든지 열심히 해온 노력이 만들어낸 결실이었을까. 다행히 바로 해운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고 바라고 바라던 배를 탈 수 있었다.




목표가 없어도, 꿈이 없어도 좋다.


그리고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눈앞에 놓인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이 보였다. 그때 바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배에서 석양이 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금 이 순간이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항해사로 배를 타고 있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는 최선을 다했다. 만족한다. 그리고 계속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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