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윤선생

by 윤지WORLD

요즘 이곳저곳에서 행복에 대한 정의가 들린다.

법륜스님

"괴롭지 않은 상태가 행복이다."

김상욱 교수님

"행복은 호르몬 수치가 높아진 상태이고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이 말을 전하면서 김상욱 교수님은 과학자 죽어라라고 할지 모를 반응에 대해서도 앞서 염려했다.

행복 경계령이다.

행복이 인생목표가 됐을 때 그 추구과정에서 느낄 괴로움과 허무함에 대한 경계일까?

코스피지수와 금의 시세에는 빠르게 회전하는 명석한 두뇌로

실체가 없는 일시적 기분상태에 인생을 거는 이토록 비합리적이고 낭만적인 행복추구란!

딱히 계산에 능하지 않고 낭만 내지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보다 능하던 나는,

날이 갈수록 명징한 것을 선호하게 됐다.

변화무쌍한 많은 것들이 감당이 잘 안 되는 탓이다.

모호하고 아름답고 그러나 불확실하며 알 수 없는 추상명사들이 점점 어려워 진다.

그래서 뭐시기가 뜻대로 안 될 때면 금을 사러 가고 명확하고 반짝이는 고정불변의 그것에 대고 이렇게 외친다.

에라 모르겠다 금만세.

그럼에도


"일출을 몇번을 보건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근데 그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때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알게 돼요."

라고 한 김영하 작가님의 말이 생각나는 건,

아무렇지 않게 보낸 하루끝에 창문을 밀고 들어온 밤바람 냄새에 싱숭생숭한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한 애매함.

어느 틈엔가 비집고 올라오는 행복, 아름다움, 설렘 등의 추상명사다.

아마 60이 돼도 지독히도 잘 알지 못할 것 같은

행복에 대해서,

나는 그저 세로토닌의 활성화를 불러 일으키는 나의 행위를 조금씩 알아갈 뿐이다.

그리고 쌓아가는 것이다.

그 누척치의 안전지대에서 크로아상에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귀여운 할머니가 추구미인 60의 내가 행복을 다시 논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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