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31
한참 동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복학생 신분의 3월이 벌써 지나가버렸다. 걱정으로 잔뜩 경직되어있던 내가 집 가는 길 활짝 피어있는 개나리에 벚꽃에 녹았고, 벌써부터 하루하루가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돈을 벌고 옷을 사 입기 시작하면서 교복을 입을 때가 많이 생각났었다. 그때는 걱정 없이 교복만 입고 나가면 됐었는데,, 조금이라도 가지게 되면 사람의 욕구엔 참 끝이라는 게 없고 벌 수 있는 돈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살아가며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걸 깨닫게 된다. 신용카드가 어느 정도 해결해주긴 하지만 결국 그것도 온전한 나의 힘이 아니며 월급날 월급을 순삭 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기에 카드를 자주 사용하는 건 정말 독이 된다. 또 소유욕이 전부가 아니고 모든 것에 있어서의 가능성. 그래서 굳이 옷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복을 입는 학생들에게 어른들이 숱하게 하는 '교복 입을 때가 좋은 거다.'라는 말에 나도 어느샌가 공감을 하고 있었다.
40-50대쯤 흰머리가 희끗희끗할 때 복학해서 세상 살아온 이야기를 작업에 담고 싶었다. 실제로 내가 학교를 다니던 2012-13년도에는 나이가 있으신 학생분들도 계셨고 나는 그들의 용기와 도전이 내 도전정신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엄마의 품에서 막 나온 20살 어린아이가 큰 캔버스를 무슨 방법으로 채워야 할지 몰랐을뿐더러 할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지한 상태에서의 등록금은 정말 아까운 비용이었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때쯤 딱 학교에 가고 싶었다.
휴학을 하고 내 멋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심장이 뛰는 대로 7년을 살아왔다. 7년 중에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행위를 한 기간은 3년? 뿐이 안되고 온통 알바나 직장을 다니기 바빴지만 내가 선택한 거였고 내가 만족하고 내가 행복했기에 그 누구도 내게 뭐라 할 수 없었고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왔다는 사실 자체에 있어서 내 인생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바이러스가 생기고 내 인생에도 혼란의 시기가 찾아왔다. 온전히 그것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80퍼센트 정도의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정말 빌어먹을 바이러스가 맞다. 30대를 맞이하기 직전 워킹홀리데이를 한 번 더 가고 싶기도 했고, 20대 동안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정말 가고 싶었던 어학연수를 가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가족 넷이 미국 여행을 가려고 비행기표를 사고 숙소 예약도 끝난 상태였다. 그와 북유럽 한 달 살기를 계획하기도 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나는 어느 날 갈림길이나 표지판 같은 것이 없는 길 위에 우둑하니 서있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난 복학을 했다.
갈 곳이 없어 방향을 모르겠어서 일단 하게 된 복학은 아니었다. 갈 곳이 없어서 하기엔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면서까지 할 선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를 작업에 넣고 싶었고, 어쩌면 할 말이 제일 많은 지금이 그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