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제주도를 원하진 않았는데 퇴사는 고팠어요. 2

2020.09

by 느림주의자

나에게만 이런 시간들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코로나가 정말 싫었다. 내게 중요한 여행을 두 개나 취소를 했고 남자 친구와 몇 개월 동안 만나지도 못했으며 그 간 그 와의 여행은 꿈 도 꾸지 못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도 못하게 하면서 공부 좀 해보겠다고 하는데 별것들이 다 방해를 하고 있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기 전까지 내 시간이 많을 정도로만 알바를 하고 내게 좀 더 집중을 해서 그간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려고 했다. 그건 바로 미술심리치료사.

미술심리치료사는 상처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본인의 상처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데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힘들 때 아무도 내 이야기를 안 들어줬던 때를 기억하며 또 막상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던 나를 기억하며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아주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미술심리치료사가 미술전공인 내가 상처를 들어줄 수 있는 또 그들이 쉽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 공부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이 연관관계를 가지고 나는 퇴사 뒤 공부를 결심했고 그 결심에 또 큰 시련이 올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옛날부터 자신에게 상처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싶어 했다. 내 기억에 나는 밝지만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왔는데 상처를 감추려 강해 보이려 노력해왔고 항상 괜찮다고 했다. 내게 있는 흠집들을 합리화하며 항상 지워내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굳세어라 하니처럼 넘어져도 계속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해온 그런 행동들은 내게 더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달았고 써 내려가는 글들로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나와 소통하는 완벽한 방법을 찾아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거 같았다. 알고 보니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내 이야기로 인해 누군가가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서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던 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상처 받은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봐주며 '누군가 너의 꿈을 가로막는다면 나 하나쯤은 반드시 너의 편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 여권 속 카드처럼, 한마디의 소중함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알수록 재밌고 알수록 궁금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시작하는 부지런한 빵집에서의 하루도 마음에 들었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더더욱 좋았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날들을 일주일쯤 보냈을까 강의도 많이 들었고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증 외에 어떤 것들을 취득하면 내게 좋을지 찾아보다가 미술심리치료사 자체가 민간자격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정을 바라고 한 공부는 아니지만 나는 조금 더 전문적이길 바랬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누군가의 의견을 보곤 더 빠르게 검색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만큼 전문적이길 원한다면 국가시험을 치러서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그 자격증을 따려면 심리 쪽의 학위가 필요했고 당장 내년에 복학을 마음먹은 내가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만족스러운 공부에 대한 나의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거품 빠진 맥주처럼 그렇게 가라앉아버렸다. 학점은행제를 사용한다는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했지만 한 학점당 몇만 원의 금액을 지불하고 꽤 많은 학점의 수업을 이수해야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데 엄마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릴 자신도 없었고 당장 그만한 시간도 도움을 요청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난 며칠 동안 이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붙들고 끙끙 앓았고, 아빠와의 저녁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꿈을 좇다가 결국엔 사회에서 쫓겨나는 걸까' 참고)


마음을 비우고 나니 머리가 가벼워졌다. 인생엔 참 알게 모르게 선택의 기로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에 가기 위해 퇴사와 돈 사이에서 그렇게 버텨냈는데 결국 망할 코로나 때문에 그런 고민들이 큰 의미가 없어졌고 공부를 하느냐 마느냐 아빠와 밥을 먹으며 울어대고 걱정까지 끼치며 고민을 했지만 결국엔 나에게 작은 지식 하나 생겼을 뿐이었다.

오늘 저녁 열심히 운동을 했고 저칼로리 식단을 지켰지만 며칠 내내 먹을까 말까 고민하던 치킨을 야식으로 시켜버린 것에 별 죄책감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들은 아무리 고민해봤자 내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게 될 거고 이미 결정해버린이상 후회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거고 그렇기 때문에 큰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제주도로 떠나기 전 복학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 숙제 같은 고민의 시간들도 참 별 탈 없이 지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북유럽을 원해서 퇴사를 버텨냈지만 결국엔 퇴사를 해버렸고 생뚱맞게 북유럽 한 달 여행이 제주도 한 달 살기로 바뀌어버렸다. 북유럽여행에 관한 글을 쓰려했던 이 이야기들이 내 일상의 이야기가 돼버렸고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내 여행 목적지에 대한 설명이 돼버렸다.

그래도 우리 북유럽에 언젠가 가겠지 정말.

keyword
이전 18화17. 제주도를 원하진 않았는데 퇴사는 고팠어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