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제가 암에 걸리기 직전이라고요?

2021.03.11

by 느림주의자

‘자궁경부암 직전단계이니 병원에 내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으세요’라는 말을 듣고는 온 세상이 무너져 버렸다.


칠 년 만에 돌아온 학교였다. 모든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뵙는 교수님들도 좋았고 상사로부터 사회생활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게 너무 좋았다. 용돈을 드리지는 못할망정 받고 있는 29살 못난 딸이지만 마음 놓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게 좋았고 비록 학자금 대출을 받아 빚이 생겼지만 남은 학교생활 동안 한 번이라도 장학금을 받는 걸 목표로 삼아 부모님께 자랑거리를 안겨드릴 생각도 하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좋다는 교수님들의 말에 자신감도 생겼고 정말 잘 이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다.


생식기에 문제가 생겨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여성이라면 감기처럼 걸리는 질염이라 생각했다. 옛날 같으면 왠지 모르게 쑥스러워 갈까 말까 망설였던 병원이었는데 삼십 대를 바라보고 있으니 별 느낌도 들지 않았다. 진료를 기다리다 올해는 내가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년도라는 걸 알게 됐고 온 김에 받자는 마음에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받고 3일 뒤 받은 전화에 나의 온 세상이 무너져 버렸다. 아직 20대인데 7년 만에 돌아온 학교에서 어느 정도의 부담감을 안고 재밌게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좋은 시기에 들은 불행한 소식이었다. 멍을 때리다 눈물이 나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직전단계에라도 알아차린 게 다행인 일이니 이제라도 내 몸을 잘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발견된 바이러스는 성관계를 통해서 들어오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하니 더더욱이 이 세상이 무서워졌다. 도대체 어떻게 감염이 된 건지, 몇 번의 조직검사와 깊지 않지만 무서웠던 수술 한 번을 끝냈고 앞으로는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병이라는 게 몸에 생기니 인생이 아쉬워졌고 눈에 밟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몇 개월이었다.


약 2-3년 전 위암 진단을 받았던 아빠에게 ‘아빠가 하도 술, 담배 해서 그래 그냥 아빠 업보야’라고 했던 말이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제야 아빠의 마음을 알아채버렸다. 갑작스럽게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나 많이 생각나는 밤이다.

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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