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나를 깨닫는 다는 것

21.10.08

by 느림주의자

살갗이 쓸려 쓰라리다. 피도 나지 않고 큰 흉터도 아닌 게 자꾸 신경이 쓰여 힐끔힐끔. 어쩌면 큰 상처들 보다도 작은 상처가 더 쓰라린 건 다칠만하지 않은 곳에서 다쳐서일지 모른다.

여느 여름과 다름없이 태풍이 지나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틀 뒤 개강을 앞두고 나는 어떤 방학을 보냈었는지 되짚다가 이미 지난 시간들인데 이래서 후회하고 저래서 아쉬워하면 뭐할까 싶어 그만두었다. 모든 일에 포기가 쉽게 되지 않았다. 22살 친구들과 학교를 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더 머리가 아팠다.


마음을 다해 보내본 원고가 끌리지 않은 이유가 인스타 팔로워 수가 적어서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차라리 글이 별로라고 했다면 내가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적어도 난 그 글들에 진심이었고 보낸 순간부터 심장이 너무 뛰어 심장박동이 제 자리를 찾기까지 한참이 걸렸기 때문이다. 눈길을 이끄는 주제를 찾고 인스타 팔로워를 찾는 이 시장에서 과연 좋은 글은 무슨 글일까 몇 달을 고민해 보았다. 나만의 색이 묻어나는 글들은 재미가 없고 상품성이 없으니 이제는 그만 써야 할까 라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해결책이 아니었다. 특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덤덤하게 쓰여내려 간 문장한 줄. 그 한 줄 읽고 한참 동안 생각이 많아졌다면, 그 문장이 잠들기 전 떠오르는 문장이 됐다면 그것으로 족했던 과거의 나를 다시 되짚어봤다.

누군가 궁금해하지 않더라도 평범하긴 그른 김에 어쩌면 조금은 특별할지 모를 내 이야기를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의 세상 속에 평범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우연히 내 글을 읽고 용기가 생겼다면 그만큼 가슴 뛰는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며칠 전 아트페어에서 만난 작가님에게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내 그림을 보여주며 작가님 같으면 여기에 어떤 색을 넣을 거냐고 물었는데 본인은 그날의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서 그림을 그리고 내가 아니기 때문에 그건 선뜻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자연의 향수병'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데 인간이 버려놓은 지금의 자연, 그리고 아름다웠던 자연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현재의 시선을 비롯하여 그려낸다. 근데 얼마전부터 그림에 임팩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변화를 주기 위해 작가님에게 질문을 했었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 마려고 했던 나는 작가님과 40여분을 대화를 나눴고 변화가 생겨 마음이 아프고 과거가 그리운데 왜 그림에 변화를 주려고 하냐셨다. 대화를 나누고 보니 그림의 주제는 나와 맞물려있었고 한 단계 한 단계 그려내는 기법까지도 내 작업에 온통 내가 있었다. 대화의 끝엔 그 자체가 나 이기에 변화를 주어서 왜 다른 사람이 되려 하냐는 질문을 들었다.


1학기부터 방학 때까지 그리고 개강을 해서도 내내 내 마음속에 남았던 것들, 아니 어쩌면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림적으로나 글적으로나 크게 고민거리가 되었던 것들이 한 번의 용기로, 40분의 대화로 인해 대부분 해결이 되었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의 그림을 나의 글을 내가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살갗이 쓰라려 아픈 건 계속 신경이 쓰였던 건 나 자신이 깨닫지 못했고 알아주지 못해서였다. 나의 이야기를 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아니까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건 나를 버리는 일이었다.


앞으로 몇 달 안 남은 20대에는 부디 덤덤히, 단단히, 한 단계 한 단계 차곡차곡 쌓아 내 이야기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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