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PPL
2016년 내가 비행을 시작하게 될 학교는 체코의 브루노에 있었다. 프라하에서는 2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로 대학교들이 많이 있어 생활 물가가 저렴했다.
당시 우리 회사는 프라하 직항 편이 없었기 때문에, 비엔나로 가서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브루노로 갔어야 했다. 3월부터 6월까지 오프나 휴가 때에 부지런히 그라운드 레슨을 받고 틈틈이 비행을 했다.
하지만 이 비행이란 것도 기술이라 그런지 며칠 연달아서 하다 보면 조금씩 느는 것 같다가, 오랜만에 조종을 하면 실력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이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이 참 많았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무급휴가를 받는 것을 보고 나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6개월, 1년씩 무급휴가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나는 잠시 주춤했다.
당장 내가 교육에 쓸 수 있는 돈은 2천만 원 정도였는데, 그걸로는 택도 없는 이야기였다.
한국에 있는 은행에서 큰돈을 대출할 수 있는 여력도 없었고, 가족들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온 기회를 그냥 놓쳐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3개월!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는 마음으로 3개월 무급 휴가를 신청했고, 허가를 받았다.
마음은 앞서서 모든 걸 다 한꺼번에 죄다 해내버리고 싶었지만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는 법.
우선 휴가를 받고 브루노로 오니 내가 해야 할 것, 채워 나가야 할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 조종을 하면서는 공항의 관제사들과 출발부터 내리는 순간까지 교신을 한다. 그 교신을 위한 항공 통신 자격증 (Radio telephony license), ICAO English test를 준비했다. Radio telephony license는 발급 후 5년이 유효하고, 그 기간이 다가오기 전에 갱신을 해야 한다. ICAO English level의 첫 번째 성적표는 4급이었다. 4급과 5급은 5년에 한 번씩 재 시험을 쳐야 하고, 6급을 받으면 평생 이 level 6가 면허에 남는다.
비행을 하면서 관제사의 말을 듣고 전달하는 (Read back) 과정이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교관님이 교신과 비행을 함께 하라고 넘겨준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왔지만 다른 친구들 보다는 많이 늦은 편이었고, 내가 교신을 한 날이면 그라운드에서 교관님들의 피드백이 쏟아졌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교신이 늦어져서 라디오 주파수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른 비행기와 관제사의 연락이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와 비행을 자주 했던 교관님의 특별조치가 내려졌다. 일단은 Live ATC라는 어플로 우리 공항의 교신을 자주 들으면서 어떤 말을 하는지 익숙해질 것, 그리고 지도를 펼쳐놓고 루트를 정할 때 어떤 지점에서 교신을 할지 결정,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해서 내뱉어보는 연습을 시키셨다. 그리고 내가 자주 가게 될 모든 공항의 루트를 거쳐서 교신 스크립트를 한 부 내어주셨다. 그 교신 스크립트를 토대로 연습을 하다 보니 비행과 교신을 함께 하는 것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교신과 비행에 자신이 붙기 시작하고 무사히 첫 Solo flight을 마쳤다. 이제 조금씩 마누버를 시작하고 Navigation 비행을 가까운 공항에서 한 곳씩 늘려나갔다. 왜냐하면 PPL 시험 때에는 이 모든 것들을 함께 평가하기 때문이다.
내가 승무원으로 조인하고 몇 년동안의 레이오버를 생각해 보면 구글 맵이 오프라인에서는 작동하는 기능이 없었다. 그래서 리셉션에서 그 도시의 지도를 받아 들고 길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나는 지독하게도 방향을 자주 잃었다.
교신에 자신감을 붙이고 나니 이제 하늘 위에서 길을 찾아야 했다. 비행 전에 내가 갈 길을 정하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몇 분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한 nav log를 참고하며 목적지까지 다녀오는 비행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지도를 보며 숲과 마을 속에 숨겨진 작은 공항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험을 치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내비게이션 비행에서 보기 좋게 Fail을 받았다.
비행의 진행이 더뎌질수록 내 마음은 애타고 동시에 내 돈도 하늘에 더 태워야 했다. 그래서 그냥 내가 길을 잃고 fail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Google Earth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VFR지도를 펼쳐놓고 책상에 앉았다.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 힌트가 될 만한 것들을 종이 지도에서 찾고 구글 어스에서 다시 한번 스캔을 했다. 내가 실제로 하늘에서 보는 것과 비슷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렇게 하늘에서 길을 잃는 횟수를 줄여 내비게이션 비행도 통과할 수 있었다.
석 달의 휴가가 마무리에 다다를 때쯤 나는 자가용면장 PPL 시험을 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혼자서 떠나는 내비게이션 비행도 다녀왔고, 혼자서 채워야 하는 비행시간도 채웠다. 이제 시험을 칠 시험관과의 스케줄을 잡고 비행만 하면 첫 번째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시험 스케줄을 이틀 남기고 내 시험이 취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는 시험을 감독하실 수 있는 분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당분간 시험 감독을 하실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감독 해주실 분을 찾아서 스케줄을 정하는데 약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학교에서 알려주었다. 나의 자신감과 모든 것들은 다 준비가 되었는데 시험 감독하시는 분이 안 계시다니.. 이건 내 예상에 없던 일이라 더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비행 기량이 시험날까지 유지가 될 수 있게 비행을 계속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비행이라는 것이 98프로 내가 준비가 되어도 2%는 가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그 2%는 해결되기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라는 것도.
그리고 일주일 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밀리터리 출신의 감독관과 PPL 시험 비행을 했다. 근엄한 첫인상과는 다르게 비행기 안에서는 인내심 있게 내 비행을 지켜봐 주셨다. 아주 예전에 중국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체코 친구에게서 배웠던 "야셈 그라스나 코레이카 = 나는 예쁜 한국사람입니다." 한 마디 시전으로 얼어있던 분위기를 녹였다. Brno - Kunovice 그리고 마누버를 마치고 행거에 돌아왔을 때, 감독관은 악수를 건네며
"Congrates! You passed!" 라 말씀하셨다.
그 순간 얼마나 기뻤던지.. 어른이 되고 나서 무언가 내내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고 성취한 게 얼마만인지.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었다. 감독관님께 괜찮으면 사진을 찍고 싶다고 여쭤보았다. 흔쾌히 승낙해 주시며승낙해주시며 폴라로이드 한 장, 그리고 비행기가 서 있는 곳 앞에서 한 장을 찍었다.
아직도 내 로그북 첫 페이지에는 그날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