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기꺼이 내어준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동일한 가치, 동일한 종류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꽃’을 선물하지만, 누군가는 ‘직접 만든 향수’를 선물하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이것만은 공통적이다. 그 사람을 위해, 나의 결핍된 부분까지도 기꺼이 내어준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처의 대부분은 나의 결핍으로부터 비롯된다. 결핍은 곧 생존의 문제이므로 한 사람의 삶을, 사랑의 방법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부분으로부터 결핍이 생겨나고, 그것은 역린, 즉 예민한 부분이 된다. 폭력적인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은 연인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만 봐도 상처가 된다. 반면,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의 선물을 하찮아 할 때 정이 떨어진다.
그냥 다른 것뿐이다. 만약 친구나 지인이 그랬더라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겼으리라. 그러나 연인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당신은 나, 나는 당신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 있어? ― 나는 감정표현을 격하게 싫어하는데, 나는 당신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게 참 어려운데 ― 그걸 모르는 거야? 바로 여기서 부딪치고, 갈등이 격화된다.
⚠️진실: 당신의 연인은 그 사실을 정말로 몰랐다.
사실은, 아마 나도 몰랐던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 부분을 몰라주는 게, 연인인 당신이 몰라주는 게 너무나 서럽다. 어느샌가 혼연일체가 된 우리는 우리의 생존과 관련한 결핍을 서로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신도 몰랐다. 나의 결핍도, 당신의 결핍도. 만약 그걸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싸우진 않았을 텐데.
그러니 싸움에서도 우리는 각자 공허한 권리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돈 걱정 없이 자라난 당신은, 당신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감정에 대한 어려움 없이 자라난 나는, 나를 위해 위로와 공감을 해 주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는 당신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게 어려웠다 ― 그 시간에 나는 한 푼이라도 더 벌지 않으면 생존에 대한 불안을 느끼므로. 당신은, 나를 위해 공감해 주는 것이 어려웠다 ― 감정을 숨기고 억압하지 않으면 생존에 대한 불안을 느끼므로.
그렇지만 바로 그 결핍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었다. 나에게 당연한 일이 당신에겐 어려웠고, 당신에게 어려운 일이 나에겐 쉬웠으니까. 우리는 가장 잘하는 일을, 가장 쉬운 일을 서로에게 해 준 것이었다. 당신은 나의 쉬운 사랑으로 인해 충만했고, 나는 당신이 해 준 쉬운 사랑으로 인해 충만했다. 그렇지만 고난과 시련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생존과 관련한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자기가 무엇을 내어주었는지 거칠게 주장했다. 하지만 서로가 보았을 때 그것은 ‘쉬운 사랑’에 불과했다. 사실 각자에게 그것은 ‘어려운 사랑’의 영역이었는데.
어려운 사랑을 끝내 극복하지 못할 때 이별이 찾아온다. 그러나 어려운 사랑을 극복하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어려운 사랑의 영역은 나와 당신에게 각각 결핍된 부분이니까. 어려운 사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있던 쉬운 사랑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랑까지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니까. 나의 어려운 사랑이 당신에겐 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니까.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이 섭섭해할 테니. 이를 극복하지 못한 연인들은 그저 그 사람의 노력과 정성으로만 만족해야만 할 텐데, 과연 그러한 적당한 만족으로 연인을 견딜 수 있겠는가. 연인의 결핍을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결국 끝은 정해져 있으리라.
이렇듯 이기적이고 연약한 두 존재가 서로를 주장하는 게 사랑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어쨌든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서로의 결핍된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 “당신은 내가 원하고 있던 바로 그 사랑을 해 주었어. 그렇지만 이제는……” 아름다운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아름다웠던 사랑은 존재한다. 어려운 사랑의 영역에서 실패한 것은 괜찮다. 그래서 어렵다고 하는 거니까. 다만 언젠가 추억 속에서만 만날 사람과의 특별한 시간이, 나의, 당신의 결핍을 아주 조금이라도 채워주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