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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유 Oct 13. 2023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겪게 되는 경험 중 하나는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이다. 자신이 알고 있던, 믿고 있던 지식과 신념 체계가 단숨에 붕괴한다. 여기에는 자책도 동반된다. 그때 그러지 말걸,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걸. 연인들이 이별한 뒤 자해하거나 심지어 자살을 택하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신념 체계가 무너지는데 어떻게 이를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신념 체계를 붕괴시킨 주범인 연인은 더 이상 없다. 그렇다면 남은 공범인 '나'라도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쯤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나의 가치관을 무너뜨린 범인은 그 사람도, 나도 아니라는 사실. 테러리스트의 폭파 공작으로 건물이 붕괴했다면 누가 범인인지 명확하다. 하지만 내진설계를 충분히 했음에도 예상치 못한 심각한 지진 때문에 건물이 무너졌다면, 우리는 그저 애도할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면, 뒤따르는 후회나 자책은 그저 가정에 불과할 뿐.  우리의 관계를 무너뜨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진처럼, 해일처럼, 태풍처럼……. 그저 우리의 관계가 무너진 것뿐이다.


 건물이 무너진 자리에도 꽃은 핀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건물이 세워진다. 이정표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 여기에, 그 건물이, 그 관계가 있었다고. 그리고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나의 진실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내가 어떠한 존재였는지, 나의 우선순위는 무엇이었는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 나의 결핍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알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이별 이후의 세계는, 이별 이전의 세계와, 당신을 만나기 전의 세계와 결코 같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색채에 눈을 뜨는 순간과 비슷하다. 같은 색이라고 여겼던 립스틱의 색깔이 실은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자주색과 버건디의 차이를 알게 되는 순간처럼, 다른 많은 사람 가운데 당신만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별이란 무엇일까. 사실은 당신도 수많은 색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다르고, 특별하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들도 다르고 특별하겠지. 당신과 내가 함께 있을 때는 서로가 다르고 특별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둘 다 보통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잔인하고도 괴로운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기가 그토록 힘든 것이겠지. 


 이별은 세계관을 붕괴시킴으로써 우리의 특수한 지위를 박탈하지만, 또한 다시금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게끔 해 준다. 사랑했던 당신과 함께하는 미래 대신,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게 해 준다. 한 사람만이 중요했던, 그 사람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도 않고, 돌아온다 해도 예전과 같진 않을 것이다. 결국 세계관을 처음부터 다시 써 내려가야 한다. 힘들고 괴로운 작업이겠지. 분명 그렇겠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사랑. 그렇게 새로운 세계관을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BingImageCreator #무너진건물_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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