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가방이 좀 더 무거워진다. 건조하고 쌀쌀할수록 느끼는 고통이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입술이 부르트니 립밤을 챙겨야 하고, 손이 거칠어지므로 핸드크림을 챙겨야 한다. 로션과 크림은 특히나 중요해서 가방에 하나씩 구비해 둔다. 집에서는 진하고 끈적한 크림을 두세 개씩 쓴다. 스물여섯을 기점으로 샤워한 뒤에는 꼭 온몸에 바디 로션을 바르게 되었다. 나에게 겨울은, 따가운 계절이다.
그러다 문득 여름에는 핸드크림을 쓰지 않았나, 궁금해졌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로 일주일 중 단 하루도 쓰지 않았나. 하루 정도는 쓰지 않았을까. 확실히 로션을 자주 바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리 습한 계절이었다고 해도 샤워한 뒤에는 몸이 꽤나 건조했을 텐데. 몸이 가렵거나 따가운 적은 한 번도 없었나. 고통을 기준으로 생각하니 어느새 여름은 너무나 먼 계절이 되어 있었다. 그때도 분명 겨울과는 다른 고통이 있었을 텐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겨울이 오니 여름의 고통은 잊힌다. 여름이 오면 다시 겨울의 고통을 잊게 되겠지. 그러므로 시간의 의미를 묻는다면, 고통과 망각 사이라고 대답하리라. 사랑으로 말미암아 큰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다시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영원한 고통도, 영원한 망각도 없다. 오직 그사이의 반복만이 있을 뿐.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겨울의 쓰라림도 어느새 한때의 아픔으로만 남겠지. 그리고 그때쯤엔, 다시 겨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채, 눈이 내리는 우울한 거리에 향수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